많은 사람들이 박근혜씨가 대선에 출마한 것에 대해 여성운동 진영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 이유는 한 가지이다. 한국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주의적으로 의미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적 여성운동 단체들은 70,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설립되었다. 그러니 여성운동 진영에서는 유신독재정권의 유산을 바탕으로 정치적 힘을 키워온 보수정당의 후보가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이 상황이 반가울 리 없다.
그럼에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대표성이 낮은 우리 현실에서 여성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는 상당한 것이어서, 박근혜씨의 출마를 여성의 대표성과 관련시키는 논의를 피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 시작을 알리듯 올 초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나란히 박근혜씨 지지자들이 밝히는 지지 이유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박씨를 지지하는 이유로 가장 많은 응답자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 가능성(조선 17.5%, 중앙 11.5%)’을 꼽았다. 그다음이 ‘청렴하다(조선 10.5%, 11.5%)’, 세 번째 이유가 ‘아버지의 영향(조선 10.5%, 중앙 8.6%)’이었다.
여성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기대 때문에 박근혜씨를 지지한다? 지금까지 박근혜씨의 지지기반이 박정희 전 대통령 지지세력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여론조사 결과는 좀 의외이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 같은 조사 결과가 액면 그대로 박근혜씨가 여성이기 때문에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박근혜씨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던진 질문이기 때문에 박씨를 다른 정치인들과 구분되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을 꼽았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이를테면 여성 대통령 가능성 때문에 박씨를 지지한다고 답한 사람들이 한명숙씨와 같은 다른 여성 정치인이 후보로 나왔을 때도 한 표를 던질 지는 미지수이다. 전통적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입에서 ‘이제 여자 대통령이 나올 때가 되었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근래 들어 수시로 접하고 있다.
어찌되었건 박근혜씨와 야당 후보와의 대선 경쟁에서 박씨가 여성이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까지의 정치 경력을 보았을 때 ‘5공 인물’이라는 낡은 이미지가 씌워질 만도 한데, ‘여성’이라는 점은 희소성과 더불어 신선하다는 이미지까지 갖게 해주는 요소이다.
게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민간의 재산을 빼앗아 일가의 부를 축적한 정수장학회 건을 보면, 박근혜씨를 ‘청렴’이라는 이미지와 연결시킨다는 것도 무리가 따른다. 기업인 故김지태씨가 5·16 쿠데타 직후 강압에 의해 토지와 주식을 넘겨줬고, 그 재산으로 정수장학회(당시 5·16장학회)가 설립되었다는 것은 이미 사실로 밝혀졌다. 정수장학회 조성 과정은 국가권력의 범죄 행위에 해당하고 그 재산은 응당 반환해야 함에도, 박근혜씨는 과오를 인정한 바도 없고 2005년에 이사장 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문제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요구는 재단이 <부산일보>라는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부산일보> 노동조합을 비롯해 故김지태씨 유족과 시민사회의 항의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지만, 박근혜씨는 지금까지 정치활동을 하는 데 별 타격을 입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 ‘청렴’한 정치인 이미지까지 확보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심각하게 불거져 나온 새누리당 비례대표 공천헌금 논란과 관련해서도, 박근혜씨는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야당의 압박을 받았지만, 지지율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책임을 피해나가고 있다.
생물학적 결정론의 위험성
청렴, 도덕성과 관련한 정치인의 이미지 역시 성별과 무관하지 않다.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여성운동 진영에서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청렴하고 윤리적이며, 독단적이지 않고,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며, 순수하고 자기희생적인 면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해왔다. 이는 주로 여성할당제와 관련한 논의에서 제기되곤 했는데,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는 바로 이러한 ‘여성성의 정치’이기 때문에 여성 정치인에게 기회를 열어주어야 한다는 요지이다.
여성은 이러하고 남성은 저러하다는 규정을 생물학적 결정론이라고 하는데, 보통 이렇듯 이분법적으로 성별을 구분하여 성향이나 특성을 다르게 규정하는 ‘성별 분리’는 여성주의에서 적극적으로 경계해오고 있는 통념들이다. 그러나 또한 여성주의는 역사 속의 뿌리깊은 성차별의 결과로 여성과 남성이 서로 달리 키워졌으며, 다른 문화를 형성해왔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한다. 이때의 여성성, 남성성이란 생물학적 개념이 아닌 사회문화적 개념이다.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힘을 인정하려는 것이지,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두 종류로 분류해 어떤 성질을 갖는다고 규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꾀한다며 정치의 영역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을 논하는 건 생물학적 결정론에 빠질 위험이 크다. 여성할당제와 같은 제도적 장치는 여성들에게 정당정치가 너무 문턱이 높기 때문에, 여성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차별시정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유권자가 남성후보든 여성후보든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여성후보군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요구인 것이다.
여성의 정치세력화에서 중요한 것은 남성 정치인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보다 우월하며 정치적인 능력이 뛰어나다는 가부장적 통념을 깨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여성 정치인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보다 정치를 더 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면 매우 곤란하다.
여성 정치인이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독선적일 때조차 배려한다는 평가를 받고, 호전적인 정책을 지지할 때조차 평화지향적이라고 평가 받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다. 단지 여성 정치인이란 이유로 그의 정치력이 여성들의 이해관계와 별 관련이 없음에도 여성성의 이미지를 업고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전체 여성들에게 손실이고,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역행하는 것이 된다. 돈과 인사 비리가 없고, 여성과 소수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활동을 한 정치인이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정치와 무관하게 평가된다면 이 역시 불공정한 일이다. 여성정치란, 어떤 여성이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여성에게 공정한 정치, 여성들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치인인가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정치인인가’이다. 박근혜씨를 비롯한 대선 주자들을 바라보고 평가할 때 사회 양극화와 갈등 해소, 한반도의 평화,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의 차별 시정, 소수자의 인권, 보편적 사회안전망 마련, 경쟁으로 치닫는 교육시스템의 변화, 다음 세대를 위한 생태정치 등을 기준으로 삼으면 여성들을 위한 정치인가 아닌가의 여부를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주자가 여성인가 남성인가 하는 생물학적 구분을 잣대로 삼는다는 것은, 정치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이야기나 다름 없다.
박근혜씨는 정치 경력이 짧지 않은 관계로, 이미 어떤 정치를 해왔는가를 평가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다. 그동안 여성들을 위해 어떤 정책을 펴왔는가 하는 간단한 질문만 던져보아도 박씨를 선뜻 여성정치와 관련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씨는 정치인의 생명만 유지한 채 소신을 밝히는 일이 없다며 ‘수첩공주’라 불리기도 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그가 정치적 능력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를 폄하하는 발언이다. 박씨는 선거 때마다 전국의 보수세력을 집결시키며 보수정당의 입지를 굳건히 해온 역할을 했고 이번 4·11 총선을 지휘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새누리당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선 주자로 떠올랐다. 박근혜씨의 정치적 능력은 바로 그 점에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여성 정치인이 가뭄에 콩 나듯 하던 국회에 일찍이 입성한 여성 정치인인 박근혜씨의 정치적 힘이 유권자 여성들이 아닌, 아버지(그리고 어머니)의 후광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의 정치적 기반은 대구·경북 지역 전통적인 보수층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언제나 보수당에 표를 행사해왔다. 혹자는 박씨의 행보에 우리 현대사가 거론되는 것에 대해 아버지의 죄를 딸에게 지우려는 것 아니냐는 이른바 연좌죄 논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정치와 단절은커녕 계승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것은 그의 딸 박근혜씨 본인이다.
2002년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였던 박근혜씨는 6·13 지방선거 정당연설회에서 자신이 정치를 시작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피눈물 흘리면서 배고픔을 해결한 아버지의 위업을 계승하고 아버지가 이룬 경제부흥을 내가 직접 정치를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생각이 들어 정치를 시작했다.”(<오마이뉴스> 보도)
박근혜씨가 한나라당 부총재 시절이던 2001년 당시 이회창 총재와 갈등을 빚었는데, 다름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문제였다. 박씨는 이 총재에게 “지난해 의원연찬회가 열렸을 때 아버지 기념관을 둘러보라고 건의했는데 李총재는 보지 않고 갔다. 동작동 국립현충원 참배 때 단 한차례도 아버지 묘소를 찾지 않았고, 5·16 기념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중앙일보> 보도)며 “선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입장을 밝히라”고 다그쳤다.
박근혜씨가 아버지의 정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인지는 최근 또다시 확인되었다. 5·16 군사쿠데타를 ‘불가피한 선택’이라 말하며 ‘혁명이라고 배운 사람들도 있다’고 발언한 것이다. 박씨는 유신독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새누리당 내에서도 비판을 받자 ‘과거에 살고 계시네요’, ‘나라가 분열된다’ 등의 발언으로 응수했는데, 이러한 화법이야말로 그가 어떤 역사관과 정치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지 재확인시켜줄 따름이다.
헌법체계를 무시하고 군대를 끌고서 정권을 장악한 군사쿠데타를 미화시키는 정치인이 차기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그런데 그 정치인의 성별이 여성이라고 해서 평화적이다, 밀어붙이지 않고 소통을 잘할 것이다 등의 여성성의 이미지를 부여한다면 과연 정당한 일인가? 독재라는 극단의 ‘가부장’ 정치를 해온 ‘아버지’의 유산으로 보수정당의 대선 후보가 된 정치인에게 ‘여성’으로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박근혜씨와 새누리당이 얻는 불로소득이자 전체 여성들의 이해관계에서의 크나큰 손실이다.
박근혜는 여성의 역할모델인가
박근혜씨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떠나서,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잘하든 못하든 찍겠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이들은 여성 대통령이 그 자체로 상징성을 가지며, 여성들에게 역할모델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에 여성지위 향상에 기여한다고 보고 있다. 이른바 역할모델론이다. 역사와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 중에는, 말 그대로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상징성과 희소성 때문에 박근혜씨를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
여성 대통령, 1인자, 여성리더가 과연 여성들에게 역할모델이 되어주고 여성들을 대표하는가의 문제 역시 섬세한 고민이 필요하다. 여성의 사회적 성취와 노동시장에서의 승진이 왜 늦는지를 분석하며, 생물학과 경제학, 심리학, 사회학, 문화학적 연구를 통해 자료를 구축해 온 미국의 인지과학자 버지니아 밸리언 교수가 역할모델에 대해 밝힌 연구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할모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개념은, 엘리노어 루즈벨트처럼 다른 사람들이 모방해야 하는 아주 이상적인 인물이다. 그런 이상형과 똑같이 높은 성취를 이룩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그녀가 행동한 것과 똑같이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개념에 있어서의 문제점은, 그렇게 높은 위치에 있는 극소수의 여성들은 대표성이 적고 예외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아주 유능하고 근면할 뿐만 아니라, 그중 많은 수는 대부분의 여성이 누릴 수 없는 특별한 이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므로 성공적인 여성이 다른 사람에게 역할모델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은 속임수에 불과하며, 많은 여성들은 그런 모델을 따라갈 수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열등감을 느끼게 될 뿐이다.”
버지니아 밸리언 교수가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여성주의가 추구하고 있는 것과 맞닿아 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역할모델이 아니라, 정보와 기회에 동등하게 접할 수 있고 동등하게 인정 받는 것이다. 사람들은 공정성을 원한다. 공정성이란, 평균적인 여성이 평균적인 남성과 동등한 성공의 가능성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독재정권 하에서 대통령인 아버지에게서 정치를 배웠고 이를 토대로 정치기반과 경력을 쌓아온 여성 정치인이, 분배보다 성장을 앞세우고 기득권의 이해관계를 지지하는 보수정당의 대선 후보가 되어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것은 여성인 나에게 혹은 나의 딸에게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녀’가 가능한 일일 뿐이다.
대한민국 남자에게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생물학적 결정론의 함정에서 꺼내오자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닌 여성에게 공정한 정치를 만드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면서도 이것만큼은 지적을 해야겠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찍겠다는 다소 무지해 보이는 발언이 충분히 나올 만한 원인을 제공하는 환경이 있다는 사실이다.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가 새누리당 경선과정에서 빠진 비박계의 이재오 의원은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분단국가이고 북한은 호전적인 지도자가 통치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여성 리더십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발언했다. 이 남성 정치인의 시대착오적인 발언은 친박계로부터 ‘남녀 성별을 가지고 지도자 자격 운운하냐’는 페미니스트적 비판을 불러왔다.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나선 문재인씨는 특전사 군복을 입고 나와서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하는가 하면, 대선 슬로건으로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가족보다 나라를 먼저/ 자신에게는 무엇보다 소홀해야 남자다/ 대한민국 남자, 문재인”이라는 문구를 쓰려고 했다가 네티즌들의 반대에 부딪혀 그만두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니? 문재인씨는 박근혜 후보의 대항마로 나서면서 본인이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것밖에 내세울 게 없는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과 세력화 논의가 성숙하지 못한 채 아직도 생물학의 덫에 걸려 걸음마 수준인 것은 대한민국이 남성공화국임을 당당히 선포하는 이들 남성 정치인들에게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출처: [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