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자율학습을 위해 늦도록 불을 켠 학교의 모습.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살아남으라고 외치던 나, 과연 어떤 교사로 살아온 걸까? |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또 교단에 선 날부터는 교실에서 만나온 제자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그런데 올해 스승의 날엔 또 다른 이들 생각도 많이 났다. 교직 10년 만의 휴직 상태에서 맞이한 스승의 날이기 때문일까. 학부모님과 선배의 아버님, 영화 속 주인공 등 언뜻 보기에 ‘스승’과 무관한 이들이 떠올랐다. 그들로 하여금 ‘교사’의 의미를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이 지난 지 벌써 며칠이지만 5월이 가기 전에 그들의 얘기를 해보고 싶다.
작년 우리반 아이들은 한결같이 착한 마음과 재능을 지닌 보석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한 녀석의 재능은 다소 특이했다. 녀석의 재능엔 ‘극과극’ 또는 ‘완벽한 문과형’이란 수식어가 딱이었다. 그건 녀석이 인문사회, 어학과 같은 문과 영역에선 상당한 능력을 갖춘 반면 수학 같은 이과 영역에선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회과를 담당하는 나는 녀석의 인문사회적 지식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수업 중 역사적 사건을 예로 들 때면 녀석은 해당 사건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더 깊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서 녀석의 별명은 ‘사회천재’, ‘역사천재’였다. 역사 등 인문사회 관련 독서량이 상당할 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로 여행을 많이 다닌 탓인 듯 했다.
지식뿐 아니라 사회과학에 필수적인 문제의식과 비판적 사고력에 있어서도 녀석은 남달랐다. ‘법과사회’ 과목의 ‘학교생활과 법’ 단원에서 가르쳐야 할 내용 중엔 ‘학교에서의 징계’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 징계의 유형과 절차를 설명하는 수업을 마친 뒤 녀석이 찾아왔다.
“선생님, 그러면 모든 징계는 징계위원회를 거쳐야 한다는 건가요?”
“그렇지. 초중등교육법에 그렇게 나와 있으니까.”
“그런데 왜 우리 학교에선 벌점을 부과할 때 학부모님과 학생이 참석해 최후진술기회를 갖는 징계위원회가 소집되지 않는 거죠?”
예상치 못한 질문에 “그럴 리가... 니가 뭔가 착각한 거 같은데...”라며 말꼬리를 흐리는데 녀석이 특유의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징계위원회 없이 또 최후진술기회 없이 부과된 징계는 모두 무효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특히 작년에 그런 식으로 벌점과 징계를 받아왔어요. 그건 잘못된 것 아닌가요?”
나는 녀석을 교실로 돌려보낸 뒤 우리학교 교칙을 꼼꼼히 살펴봤다. 그런데 정말 녀석의 말대로 우리학교 교칙엔 징계위원회와 최후진술기회가 필수로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학생부 담당 선생님께 문의하자 교육청에서 교칙을 승인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해당 법령에 징계위원회가 분명히 명시돼 있고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사항이니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은 이해되지 않았다. 고민에 빠진 나는 이번엔 교육청과 교과부에 차례로 문의를 했다. 그러자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그 학교 어디라고요? 야아, 학생이 아주 똑똑하네요. 그 학생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회의를 소집한 뒤 다시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교육청의 징계 담당 장학사의 답변을 들으며 나는 가슴이 뛰었다. 학창시절의 나는 교칙으로 정해진 건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처럼 비판적으로 교칙을 뜯어보고 문제제기할 줄 아는 고등학생이라니, 이 녀석은 당시의 나보다 몇 배는 뛰어났다. 또 녀석이 문제의식을 넘어 학생회장이라는 책임감에서 이런 문제제기를 했다는 부분도 감탄스러웠다. 녀석의 행동은 친구들을 위해 ‘무조건 순응하는 착한 학생’의 옷을 벗어던지는 용기에서 비롯되었으니 말이다. 한편 교육청이 그런 아이를 인정해주고 회의를 열어 진지하게 검토해주는 모습도 오래전 내가 학교 다닐 때와는 많이 다른 사회적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며칠 뒤 교육청은 벌점은 징계가 아니니 위원회를 소집하지 않아도 되지만 벌점 누적에 따른 징계를 부여할 때만큼은 반드시 위원회 소집과 학생, 학부모의 최후진술기회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왔다. 우리 학교 징계에 관해 녀석이 문제를 제기했단 사실은 이미 학교에 퍼져 아이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수업시간을 통해 각 반마다 공문에 대해 알려주자 아이들은 환호했다.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구나’, ‘우리가 학교의 주체구나’하는 것들을 느끼는 듯 했다.
지난해 위원회나 최후진술기회 없이 징계를 받은 아이들은 “그럼 지난해 우리가 받은 것은 무효 아닌가요?”라며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선생님들의 실수’를 이해하며 앞으로 제대로 진행될 징계 절차를 믿어주는 넉넉한 마음씀씀을 보여줬다.
녀석은 이처럼 인문사회적 지식과 문제의식에 있어 ‘뛰어난 인재’였다. 당연히 녀석의 사회, 국사, 세계사 등의 점수는 늘 최고였다. 또 언어(국어)와 외국어(영어) 시험에서도 만점을 받거나 실수로 한 문제를 틀리거나 했다. 하지만 수학에 있어서는 달랐다. 모의고사 수학 점수가 1학년 때부터 줄기차게 40점대이니 현실적인 입시지도의 책임을 가진 나로서는 녀석에게 잔소리를 해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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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얼렀고 다음엔 혼찌검을 냈다. 어느 면담 시간엔 녀석이 제 수학 점수가 낮은 이유를 어찌나 체계적으로 설명하던지 깜빡 넘어갈 뻔 했다. 역시나 말 하나는 엄청나게 잘 하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닥치고 수학”을 외쳤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런데 그 면담 이후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고 나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녀석의 수학점수는 30점대였다. 수학공부에 최선을 다한다더니, 걱정하지 말라더니! 다짜고짜 녀석을 불러내 얘기를 들어봤다. 그러자 녀석의 입에선 기절초풍할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솔직히 공부 못했습니다. 아니 안했습니다. 제가 학생회장이기에 이번 축제와 관련해 신경써야 할 것이 많습니다. 또 우리 학교 교칙을 찾아보니 징계만이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초중등교육법을 모두 출력해 하나씩 대조하며 문제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학교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아...”
“야!!”
나는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학생회장 좋다. 교칙에 대한 문제제기 좋다. 하지만 그런일 하느라고 안 그래도 바닥인 수학점수를 더 떨어뜨리는 게 말이 되냐, 추락하는 너의 수학 점수가 그렇게도 아름다워 보이더냐, 대학 갈 생각을 하긴 하는 거냐, 기타 등등 나는 아예 책상까지 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녀석은 반성의 기미는 커녕 자신이 해야할 일인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굽히질 않았다.
결국 나는 녀석을 협박해 억지로 ‘반성문’을 쓰게 한 뒤 녀석의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녀석의 낮은 수학점수와 관련해 긴급 면담을 요청드렸다.
부모님께서 의자에 앉자마자 나는 녀석의 모의고사 성적 분석표를 보여드렸다.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의 성적들을 그래프로 그려놓은 분석표였다.
“정말 일관성 있지 않나요? 언어와 외국어는 계속 최고에요. 그런데 수학이 이 모양이에요. 학기 초부터 수학만 올리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고 알아들었다 생각했는데 이 녀석이 오히려 점수를 더 떨어뜨렸어요. 그게 세상에 학생회 일 때문이라고 하는데 저는 왜 저렇게 자기 점수 챙길 생각은 안하고 저러고만 다니는지 화가 나 죽겠어요. 마침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으니 전 이 녀석이 방학 동안 학교 밖에서 수학 과외를 집중적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방학 때 수학만 제대로 잡으면 이 녀석 못 갈 대학이 없어요. 제발 좀 부탁드려요.”
나보다 나이 많은 학부모님들께 예의 없지는 않을까 걱정됐지만 그래도 두 분이 동의하실거라 믿었다. 하지만 어렵사리 말문을 연 아버님의 답변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선생님은 좋은 대학 나오셔서 행복하신가요? 아니, 좋은 대학 가면 행복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네에?”
나는 아이들이 쪽잠을 자는 쉬는시간에도 불시에 출연해 등짝을 후려치며 공부하라고 외치곤 했다. |
내 두 눈이 동그래지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자 녀석의 어머님이 아버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하지만 녀석의 굽힐 줄 모르는 성격은 아버님을 닮은 것이었나보다. 아버님은 말씀을 계속하셨다.
“저희 부부 모두 의대를 나왔고 또 의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대 나오고 의사를 해서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좋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애는 꼭 좋은 대학 가겠다는 생각도 없고 역사를 연구하며 살거나 사진기 들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다큐 만들며 살고 싶다고도 합니다.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게 행복 아닐까요?
집에 오면 학생회 얘기를 참 많이 합니다. 요즘은 축제 준비 때문에 저희가 보기에도 정신이 없고요. 그런 것도 다아 나중에 다큐 만들고 이럴 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수학 공부에 너무 연연하는 것보다...”
아버님은 그 정도에서 말씀을 멈추셨다. 뒤늦게 내 생각에 동의하셔서가 아니라 어머님이 아까보다 더 강하게 옆구리를 치셨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학생이면 일단 공부를 해야 하고, 얘가 지금 수학만 집중적으로 하면 얼마든지 좋은 대학 갈 수 있는데 저는 아버님 말씀이 이해가 안가요.”
“네 선생님. 저희가 잘 얘기할게요. 그리고 방학 때 수학 과외 시키는 거 고려하도록 할게요.”
아버님의 말문을 막고 어머님은 그렇게 얘기를 마무리 해주셨다. 어찌됐든 ‘수학과외’라는 나의 대안을 수용해주신 거였다. 그런데 두 분이 그렇게 면담을 마치고 교무실을 나가신 뒤 나는 텅빈 교무실에 늦도록 홀로 앉아 있었다. 무언가 많은 생각이 밀려오고 무언가 울컥거리는데 그게 뭔지 정체를 알 수 없어 그저 가만히 천장만 바라볼 뿐이었다.
여름방학 동안 녀석은 수학과외를 받았다. 매일같이 몇 시간씩 수학 과외를 받고 매일같이 그 과외지도에 대한 복습을 했다. 하지만 2학기에도 녀석의 수학점수는 기대와 달리 조금도 오르지 않았다. 이제 고3이 된 녀석이 가끔 카톡으로 안부를 물을 때에도 나에겐 늘 녀석의 수학점수가 최대 관심사이지만 역시 별반 변화가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녀석의 수학점수가 변동없는 것과 달리 내겐 작은 변동이 일었다. 그것은 녀석의 아버님이 당시 하신 말씀에 대한 생각의 변동이었다. “좋은 대학이 행복의 조건은 아니”라던, 또 “그것이 무엇이든 내 아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던 말씀. 그 말씀이 아버님을 뵌 뒤 몇 번씩 되살아나며 곱씹어졌다.
처음엔 ‘정말 현실을 모르고 하는 순진한 생각’이라고만 여겨졌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건 순진한 생각이 아니라 바른 생각이고, 그 바른 생각을 무시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학교와 사회 현실이 가슴 아프단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휴직을 하고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는 입장이 되니 내가 속해 있는 학교와 교육이 새로이 보이면서 오싹함까지 몰려왔다.
‘나는. 대체. 녀석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제가 좋아하는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문제의식을 갖고 주변을 돌아볼 줄 알며, 친구들을 위해 용기를 낼 줄도 희생할 줄도 아는 녀석. 그 녀석이 수학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이 과연 나한테 욕을 들어먹을 정도로 잘못한 일이었을까? 더군다나 억지로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수학 공부만 해서 점수를 올리겠습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반성문을 강요했으니 나는 대체 녀석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아, 나는. 대체. 어떤 교사로 살아온 것일까!
물론 변명은 가능하다. 우리 입시 제도가 아무리 문과적 인재라 해도 수학을 못하면 그 역량을 높게 평가해주지 않도록 되어 있고, 우리 사회가 명문대를 나오지 않으면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게 되어 있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지만 성공은 대부분 성적순인 게 엄연한 현실 아니냐고 나는 백가지도 넘게 논거를 들이대며 변명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고백할 수밖에 없다. 수학 점수로 설명할 수 없는 녀석의 능력, 대학 서열로 설명할 수 없는 녀석의 행복. 그 앞에서 내 변명이 참으로 구차하단 사실을 말이다. 또 “남들 잘 때 공부하면 성공한다”는 틈새의 전략을 역설하며 쉬는시간과 점심시간에조차 불시로 교실에 출몰해 자는 아이들 등짝을 때려대며 공부시키던 지난날의 내가 사실은 너무도 부끄러운 교사였다는 사실을.
‘스승의 날’이 하루 지난 날 나는 한 친구에게 녀석과 녀석의 아버님 얘기를 했다. 그러자 친구는 “야아, 정말 멋진 분이네. 그 분과 술 한잔 하고 싶다.”고 했다.
친구의 말이 맞다. 그 분은 참으로 멋진, 그리고 참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아이를 성장시키고 계신 학부모님이다. 그걸 모른척하고 ‘수학 점수’에만 열을 올렸던 지난해의 내 모습이 ‘진짜 교사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아프게 다가온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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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