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와 교육청의 정책사업과 목적사업을 줄여야 한다.”(곽노현 서울교육감)
“대학입시 제도를 개선해 초‧중등교육을 정상화하고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장만채 전남교육감)
현직 교육감들이 오는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를 150여 일 앞두고 꼭 해결해야 할 교육과제를 제안해 눈길을 끈다. 지역 풀뿌리 교육운동체인 교육희망네트워크가 21일 오후 충남 보령 서울시학생교육원 대천임해교육원에서 진행한 ‘2013년 교육희망을 말하다’ 토크콘서트 자리에서다.
이날 콘서트 자리에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김승환 전북도교육감, 민병희 강원도교육감, 장만채 전남도교육감,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등 6개 시‧도교육감이 참석했다. 진보교육감으로 불리는 이들이 모두 참석한 것이다. 대선이 본격 시작되는 국면에서 현직 교육감이 직접 교육과제를 제시한 것은 이례적이다.
‘2013년 교육희망을 위해 대선에서 꼭 해결해야 할 교육과제 한 가지를 선정해 달라’는 사회자 노정렬 씨(개그맨)의 물음에 선글라스를 끼고 꽃무늬 셔츠를 입고 온 곽 서울교육감은 ‘진짜’ 교육자율성을 강조했다.
6명의 진보교육감이 교육희망네트워크가 21일 충남 보령 서울시학생교육원 대천임해교육원에서 진행한 ‘2013년 교육희망을 말하다’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대선 교육과제를 제시했다. 김혜연 기자 |
김승환 교육감 “어려운 교과서 이유는…”
곽 교육감은 “교육현장이 위만 쳐다보는 경향이 있다. 교과부와 교육청이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지금 교과부의 학교 자율성은 저급한 가짜 자율성”이라며 “교과부와 교육청이 정책사업과 목적사업을 줄여야 한다. 각종 공모제의 병폐를 없애야 한다. 이 사업들을 줄여서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곳에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교과서의 난이도를 낮추자는 과제를 내놓았다. 김 교육감은 “(세계적으로) 대한민국 교과서만 난이도가 엄청 어려워졌다. 이게 좋은 게 아니다. 왜 어렵나. 아이들을 줄 세우려는 의도다. 부모의 경제력으로 변별력을 삼겠다는 것”이라며 “교과부 관료들을 주축으로 기득권 정체세력들이 한 짓이다. 이들 하수인 노릇을 대학교수들이 했다. 교수들도 양심선언하고 반성해야 한다. 교과서 수준을 국제 수준으로 낮추는 운동을 시작하자”고 말해 참가한 200여 명의 교사와 학부모 등에게 환호를 받았다.
장휘국 광주교육감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육예산 6% 확보를 제시했다. 이 과제는 그동안 교육계가 꾸준히 요구해 온 내용이기도 하다. 장 교육감은 “지금보다 더 많은 예산을 투여해야 한다. 지금까지 대선 후보들이 교육예산을 GDP 대비 6%로 하겠다고 했는데 말에 그쳤다”면서 “반값등록금과 학급당 학생 수 감축, 교원 수 확대 등을 위해서도 이번 대선에서는 실현하는 공약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만채 전남교육감은 농산어촌교육 특별법을 제정하고 대학입시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했다. “입술이 없으면 잇몸이 시리다. 농촌이 무너지면 도시가 안전할 수 없다”는 것과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의 파행 주범은 대학입시다”라는 것이 장만채 교육감이 과제를 제시한 이유다.
김상곤 경기교육감은 국가교육위원회 구성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김 교육감은 “교과부의 일방적인 정책과 권위주의, 관료주의 등을 견제하고 해소하기 위해서도 이 기구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 인권법 제정도 덧붙였다. “학생인권조례에서 나아가 공교육을 올곧게 세워 학교가 아이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이 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 교육감의 판단이다.
민병희 교육감 “교육은 대통령을 사람으로 만든다”
토큰콘서트에 참가한 200여명의 교사와 학부모들(아래)이 6명의 교육감이 이야기하는 2년간의 임기 술회와 한국 교육방향 등을 듣고 있다. 김혜연 기자 |
민병희 강원교육감은 교육의 중요성으로 ‘선거’ 자체를 강조했다. 민 교육감은 “교육은 사람을 검사로 만든다기보다는 검사를 사람으로 만든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교육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든다기보다는 대통령을 사람으로 만든다”면서 “한마디로 선거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감들은 임기 2년을 맞아 그동안의 성과와 어려움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이들 어려움의 공통분모는 역시 ‘교과부의 간섭’이었다.
김승환 교육감은 “지방교육자치는 직접 결정하고 그 결정을 따른다. 교과부가 시키는 것을 따르는 자리가 아니다. 주민들이 직접 선출한 교육감과 대통령이 앉힌 장관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나”면서 “그런데도 교과부가 내린 공문을 그대로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으로 생각하는 교육감들이 있는데 그 공문이 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했는가 안 했는가를 따져서 해야 한다. 교과부와 누군가는 충돌해야 한다. 진정한 지방교육자치를 위해서다. 확실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장휘국 교육감 역시 “교과부가 긴장 관계를 유발하고 있다. 지역적인 특성에 맞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제약을 하고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해고 난감한 지경에 빠졌다”고 털어놨다.
민병희 교육감은 최근 교과부가 발표한 시‧도교육청 평가를 지적했다. 교과부는 평가에서 서울과 경기를 ‘매우 미흡’, 광주‧강원‧전남‧전북을 ‘미흡’ 등급으로 정한 바 있다.
민 교육감은 “미흡이란 아름다울 미(美), 호흡할 흡(吸)이다. 즉, 학생과 선생님, 학부모들이 아름답게 호흡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고 웃으며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요구를 보지도 듣지도 않는 교과부는 매우 미흡”이라고 했다.
교과부를 칭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곽노현 교육감은 “교과부가 부당하게 간섭하고 탄압하지만 우리 교육청을 얼마나 연구하고 베끼는지 모른다. 장애학생 취업 프로그램이라든지, 특성화고 졸업생 채용 등의 사례를 전국화하고 있다. 너무 미워하지 말자”고 말해 참가자들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교육감의 시 낭송, 노래 뽐내기
진보교육감 지역에서 추진되는 혁신학교에 대해서는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장만채 교육감은 “전남에서는 무지개학교라고 부른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조화를 이루는 학교이고 학생들이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 학교이기 때문”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혁신학교를 제일 먼저 만든 김상곤 교육감은 “혁신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학교에서 친구들과 노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하더라. 이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토크콘서트라는 형식에 맞게 교육감들은 장기와 재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곽노현‧김승환 교육감은 나란히 정호승 시인의 시를 암송했고 장휘국 교육감은 안도현 시인의 시 한 구절을 참가자들에게 들려줬다.
특히 민병희 교육감은 민중가요 가운데 한 곡인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로 노래 실력을 뽐내더니 자신의 영문 앞글자인 MBH로 삼행시를 MB Hwak(확)을 지어내 뛰어난 순발력을 선보여 큰 환호를 받았다.
교육감들은 콘서트 마지막에 “분노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범죄행위다. 지금은 의로운 분노, 법적인 분노를 해야 할 때다.(김승환) 분노를 넘어 행동하자.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 될 수 있다.(장만채) 계급계층을 이기는 공교육을 만들자, 교육의 본질로 과감하게 진보하자.(곽노현) 교육의 체제를 바꾸자.(김상곤)”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토크콘서트 자리를 마련한 교육희망네트워크는 200여 명의 회원과 함께 ‘2013교육희망 선언문’을 채택해 “국가 교육정책의 전면 전환을 위해 2013년 교육 체제 개혁을 요구하는 활동을 지역사회에서 풀뿌리의 요구를 모아내는 활동을 전개한다”고 결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