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국민보도연맹 명단 작성이 1950년 한국전쟁과 더불어 30만명의 집단학살로 변했으며 이후 가족 수백만명이 연좌제 인권침해의 근거가 되었다. 4·19때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들에 대한 명단이 5·16군사쿠데타 때 수천명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고 감옥에 가두는 인권침해의 수단이 되었다. 30년 전에는 노동조합활동 때문에 블랙리스트가 작성되어 수천명의 재취직을 방해하였다. 적법한 명단 작성마저도 잘못 사용되면 이처럼 많은 폐해를 낳는다. 현재는 범죄경력 조회를 하면 조회자의 명단과 조회내역이 컴퓨터에 남아 비로소 폐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초중고등학생의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기재하라고 지침을 내리고 교육청, 각급 학교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대학입시 등에 이용할 거란다. 폭력사실 기재 및 공개와 관련된 기본권은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일반적 인격권, 헌법 제17조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헌법 제11조 평등권 등에 해당한다. 국가권력이 기본권을 제한(침해라고 하면 이미 불법적이라는 내용을 포함)할 경우에는 헌법과 법률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사실 기재 자체는 국민의 기본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공개만이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기재사항이 5~10년간 보존되면서 대학입시, 상급학교 진학, 명단 기입 후 전학 등으로 기재사항이 공개될 개연성이 너무나 크므로 영향을 끼치느냐 마느냐 논의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사실 기재가 적법하기 위한 요건이 무엇인가. 우선 헌법 제37조 제2항을 보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먼저 법률로써 제한을 하는지부터가 문제다. 교과부 장관의 지침에 의하여 기재가 강요되는 것은 분명하나 법률에 근거한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초중등교육법 어디에도 폭력학생의 행동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입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교과부의 위 지침은 교육감에게 교육자치권를 부여한 지방자치제도를 제한하고 교육감의 권한을 침해하고 있다.
둘째는 제한의 필요성과 제한의 정도를 따지는 것이다. 판단 기준이 비례의 원칙 즉 제한 목적의 정당성, 제한 수단의 적정성, 제한되는 기본권과 제한이익의 비교형량이라는 3단계로 판단한다. 학생부 기재로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은 학교폭력의 추방, 가해학생에 대한 교육 등일 것이다. 목적은 어느 정도 정당하다고 할 수도 있다.
수단의 적정성을 보면 학교폭력을 추방하기 위하여 학교폭력 관련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기록 보존하는 것이 폭력예방과 교육에 적절한 방식인가의 문제이다. 기재는 교육 부분을 포기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즉 기본권이 침해될 가능성에 대한 엄포를 놓으면 학교폭력이 사라질 수 있는가이다. 이런 발상은 지극히 단세포적인데 학교폭력의 원인을 가해학생 개인에게서만 찾고 사회와 국가 전체의 문제와는 분리해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재가 겁을 주어 폭력행사를 어느 정도 예방한다고 볼 수도 있다. 결국 기재된 학생이 받는 피해와 그 효과의 이익을 서로 비교한다면 폭력행위가 한번 기재된 학생은 그 내용이 공개되면 우리의 경험으로는 평생을 3등 국민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매우 놓다. 이에 비하여 기재로 거둘 폭력예방의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은 너무나 미미하다.
따라서 명단 기재 지침은 위헌이다. 마지막에서 위헌을 선언하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교육적으로 자라야 할 청소년의 교육을 포기하고 사회에서 내몰아버리는 비교육적 방식은 그 자체로 근본적으로 위헌적인 것이다. 나아가 청소년범죄의 전과기록 처리, 일반성인의 전과기록 처리의 엄밀성에 훨씬 못 미치는 관리도 평등권의 문제를 야기한다.
위법하게 행사된 국가권력은 국가폭력에 지나지 않으며 국민의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