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의 [학습과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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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그의 블로그 집 문에 쓰여 있는 글이다.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으로 학(學)과 사(思)를 두루 독려하고 있다. ‘소통하고 그로 인해 풍부해지기를 기대하며’ 블로그에 지은 집의 이름인 [학습과 사색(學習과 思索)]이 저 문장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그의 집을 둘러보면 참 적절한 이름이지 싶다.

문을 열고 그의 집에 들어서면 세 개의 방이 있다. 학습과 사색 그리고 소통의 방. 이 세 개의 방은 각각 가지를 치며 수십의 방으로 분화하기도 하고, 서로 부딪히고 스며들어 하나의 집이 되기도 한다.

학습의 방. 문을 연다. 그가 전공한 옛 그림들이 걸려 있고 문헌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다. 이 방에서 귀한 그림을 보고 제발의 해석을 들으며 맡은 적 없는 옛 향취를 음미하곤 한다. 비 맞은 대나무도 임웅의 자화상도 물론 좋지만 그 그림들 속에서 하나를 골라 취하라면 ‘슬픈 금빛 원숭이’를 꼽겠다. 언뜻 나와 닮았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정체도 모르고 지향도 없는 쓸쓸함, 거기에 가늘게 빛나는 금빛... 사실, 그런 애상(哀想)에 온통 어두운 먹색이란... 촌스러울 따름이다’라고 언급한 그의 풀이가 매력적인 때문이기도 하다.


사색의 방에 들어선다. ‘관용과 성찰을 가장 소중한 가치관’으로 삼으며, 올곧은 정체성의 전제로 두고 있는 그의 사색은 스스로 ‘상고(尙古)취향이 강하다’고 밝혔듯이 옛 사람들의 글과 가까이 있다.(내가 옛글을 뒤적이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그 덕분이다) 그렇다고 옛것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 ‘강의실보다는 거리와 술집과 돌벤치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그래도 이 세상 무언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누군가의 말에 ‘파장’을 얻었던 저력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좁은 울타리의 사치적인 허영에 그치지 않도록’ 애쓰며 지금, 여기에서 자신과 사회를 성찰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학습과 사색의 방에서 탁마했더라도 이 방이 없었더라면 그의 집이 일면 싱거웠을지도 모를 소통의 방을 둘러본다. 그는 여기서 가깝게는 지인들과 넓게는 이 사회와 그 속의 사람들과 관계 맺고 있다. 파병을 반대하고 대추리에 연대의 뜻을 전하기도 한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과 무엇보다 지금, 여기의 광기’를 걱정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해 이 땅의 비주류들을 잊지 않으려 애쓰며 ‘궁극적으로 그 누구의 노동도 다른 이의 노동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낡은 신념 같은(?) 겸손함’을 가지고 ‘어두운 세상을 꿰뚫어보면서도 그 세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의 집에는 세 개의 방 외에 또 다른 공간들이 있다. 우선 베란다에 들러 그가 옛 글들과 김수영 등의 시를 읊으며 술 한 잔 기울이던 여운을 맡아본 후, 자책과 한숨과 넋두리를 풀어놓기도 하는, 그러나 그곳에 몸을 담그지 않고 석연찮더라도 손을 씻고 나오곤 하는 화장실에서 나도 손을 씻고 마당으로 나선다.

이 작은 마당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은 그의 가족과 지인들이 둘러앉아 진지하고도 유쾌하게 마음을 나누는 곳이다. ‘남겨두면 되돌아 와서 다시 밟아야 하는 게 길’이라며 그의 ‘느린 걸음’을 조용하고 은근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지켜봄과 동시에 당신의 마음밭을 정갈하게 일구는 ‘엄마’와, ‘인문대생 뺨치는 공대생’인 형과 미디어를 들고 세상의 파란 속으로 뛰어들어 행동하고 있는 동생이 있다. 그리고 근사하고 건강한 친구와 이웃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그를 통해 이 중 몇 분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는데 그에게서 그랬던 것처럼 배우고 깨우치며 정(情)이 들어가고 있다) 마당의 면면을 보니 그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집 [학습과 사색]을 나선다. 나는 블로그를 통해 유용한 온라인상의 정보를 얻는 데 흥미가 없는 편이다. 그저 사람들의 일상을 보고 삶을 대하는 건강한 태도와 곧은 시선을 배우고 공감하며 내 자신에게 묻고 답함으로써 스스로를 들여다보려 한다. 그런 나에게 그의 집은 꽤나 만족스러운 곳이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삶이란 게 결국 걸어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던가? 느리더라도 꾸준한 ‘학습과 사색’을 통해 비우고 채우며, 스스로 체득한 자신의 속도로 꼭꼭 밟고 가기를 원하는 그에게 응원을 보낸다. 가깝게는 어렴풋이 계획하고 있는 알찬 전시기획의 결과물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넓게는 그가 말했듯 한 세상 ‘폼나게 살’기를 바란다. 그에게는 ‘폼’날 수 있는 바탕이 든든하니 가능할 것이다.

그가 좋아한다는 소주에 삼겹살 또는 정종에 꼬치나 맥주에 소시지를 곁들여 술 한 잔 하고 싶다. 이웃들이 함께여도 좋겠고..... 아, 까치내에서라면 더욱 좋겠다.




출처: 웹진ActOn
덧붙이는 말

yaalll : 미술가. http://www.yaal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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