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제도로 포장된 굴욕 협상

한미FTA 저작권 협상의 내용과 문제점

2006년 한미FTA 1차 협상이 끝난 후 한국정부는 ‘한미 FTA 저작권 협상 전망과 대책’이라는 문건을 통해서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일시적 저장, 접근통제 기술적 보호조치, 온라인 서비스제공자의 책임, 비친고죄 도입 등 미국의 요구에 대해서 불수용 또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국정부도 미국의 요구가 과도하고, 한국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이미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협상결과는 매우 달랐다.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것이다.

이제 와서 한국정부는 ‘선진제도의 도입’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평가를 한다. 한국정부가 강조한 선진제도라는 것은 미국이 지난 수년 동안 계속해서 통상 압력으로 요구해 온 내용이다. 그 안에는 주한 미상공회의소 등 미국 기업의 지적재산권 강화라는 요구가 그대로 반영되었다. 2006년 주한 미상공회의소가 발표한 한미FTA 정책보고서에서 밝힌 지적재산권에 대한 요구사항이 최종 협상 결과에 사실상 그대로 반영되었다. 한국 정부의 ‘선진제도 도입’이라는 표현은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기 위한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저작권이라는 제도는 궁극적으로 문화의 발전을 그 목적으로 하는데, 이번 협상은 오로지 미국의 거대 문화미디어 기업들의 독점 이윤을 강화하는 내용만으로 채워졌으며, 국민의 정보접근권이나 공공영역을 보장하기 위한 내용은 전혀 찾을 수 없다. 5월 25일 협상문 전문이 공개되자,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난 4월 정부가 협상 결과에서 밝히지 않은 저작권 분야의 독소조항들이 드러난 것이다. 미국이 그동안 체결한 그 어떠한 FTA 협정문보다도 강도 높은 조항들이 숨겨져 있었다.

저작권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와 새로운 권리의 부여

저작권 제도의 핵심은 권리 보호와 이용 간의 균형이며, 이를 위한 대표적인 제도가 보호기간의 제한이다. 그러나 한미FTA는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20년 더 연장함으로써, 사실상 보호기간을 영구화했다.(제18.4조 제4항) 연장된 기간 동안 이용자들의 권리는 제한되고, 연장되지 않았을 때 얻을 수 있는 공익적 가치가 사장될 것이다. 출판물 대부분은 출판된 지 10년이면 절판되고, 경제적인 가치가 거의 종료된다. 또한 소프트웨어는 수년이면 새로운 버전이 나오기 때문에, 이전 버전은 거의 가치가 없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보호기간 연장은 사실상 미키마우스와 같은 소수 문화기업의 인기 있는 캐릭터에 대한 로열티 회수기간을 연장하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이는 공공영역을 축소하고, 경제적 가치는 별로 없지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저작물의 공공 이용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저작권자들은 이번 한미FTA를 통해서 이용자를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것은 바로 저작물에 대한 접근권이다. 현행 저작권법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려고 접근하는 행위는 통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한미FTA는 볼 권리, 읽을 권리에 대한 배타적인 접근권을 부여하였다. 이를 위해서 ‘일시적 저장에 대한 복제권 인정’(제18.4조 제1항)과 ‘접근통제 기술적 보호조치’(제18.4조 제7항)가 도입되었다. 일시적 저장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하여 저작물에 접근할 때 필수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다. 이에 대해서 복제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결국 저작물에 접근하려면 언제나 저작권자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접근통제 기술적 보호조치의 도입 역시,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아도 저작물에 접근하려고 기술적 보호조치를 우회하면 처벌한다는 점에서 저작권자에게 접근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인터넷을 통한 검색이나 웹서핑 등 일상적인 행위들마저 이제는 모두 저작권자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 저작권법에 ‘독서권’ ‘음악/영화 감상권’이라는 권리를 부여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출처 : 한미FTA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


포털 등 모든 인터넷 사이트가 폐쇄 대상

숨겨져 있었던 독소조항의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사이트 폐쇄와 관련된 내용이다. 양국은 부속 서한을 통해서 ‘무단 복제 또는 전송을 허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서 폐쇄 명령을 내리는데 합의했다. 협정문은 포털사이트를 비롯하여 이메일, 블로그, 미니홈피, 동영상UCC 사이트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무단 복제와 전송이 일어나면 정부가 폐쇄할 수 있도록 했다. 불법 여부와는 별개로 허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폐쇄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더군다나 이 서한에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양보한 조치도 있다. 특별히 폐쇄 대상으로 지목된 P2P와 웹하드 서비스나 합동조사팀 구성, 그리고 강력한 단속 시행 등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이 체결한 그 어떠한 FTA보다도 불평등한 협상이다.

앞으로 포털 등 인터넷 사업자들은 자신들의 웹사이트가 폐쇄당하지 않도록 인터넷 이용자들이 주고받는 모든 정보에 대해 사전에 검열해야 할지도 모른다. 복제와 전송을 허용하는 이메일이나 메신저 서비스와 같은 사적 통신도 검열 대상이 될 수 있다. 이것은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자 인터넷 문화의 가능성에 종말을 고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대학가 서적 복사집에 대한 단속 강화

부속 서한은 대학가 서적 복제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이는 미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FTA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내용이다. 특히 한국 정부는 대학 구내에서, 서적에 대한 불법 복제와 배포를 단속하는 집행 활동과 공공 캠페인 등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는 저작권법이 허용한 정당한 이용, 예를 들어 개인들의 비영리적인 이용을 위한 복제나 도서관에서의 복제까지 위축시킬 우려가 있으며, 학문의 발전을 저해할 위험도 매우 크다.

영화관에 캠코더 가져가면 미수범으로 처벌

협정문 제18.10조 제29항은 영화관에서 캠코더와 같은 녹화장치를 사용하거나, 사용하려고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조차 미수범으로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 저작권법은 영화관에서 개봉 영화를 촬영하는 것 자체를 불법행위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거나 CD로 구워서 팔 경우 저작권법 위반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촬영을 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영화관에서 단지 캠코더 등을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처벌될 수 있다. 이는 관람객의 개인적인 행동까지도 일일이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과도한 조치이다.

헌법 질서 훼손

한미FTA 지적재산권 협정문은 우리 헌법이 보장한 권력 분립을 정면으로 훼손한다. 예를 들어 제18.10조 지적재산권 집행의 제27항은 “장래의 침해를 억제하기에 충분한 벌금형뿐만 아니라 징역형 선고를 포함하는 형벌을 규정한다”고 했는데, 이는 입법권자인 국회가 갖는 형사처벌에 관한 입법의 재량까지도 침해하면서 형벌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며, 사법부가 가지는 ‘양형에 대한 재량’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규정이다. 즉, 헌법이 부여한 입법권과 사법권에 대한 권한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저작물 이용자들에 대한 과도한 입증 책임

현행 저작권 침해 관련 소송 절차에서는 권리자라고 주장하는 원고가 자신들의 권리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협정문 제18.10조 제3항은 저작권자의 표시만 있으면 그 대상물에 권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면서 이를 민사, 행정 절차뿐 아니라 형사 절차에도 적용한다. 이렇게 권리에 대한 추정 규정이 있으면, 저작권 침해의 혐의자인 피고가 해당 저작물에 대한 권리가 없음을 거꾸로 입증해야 한다. 피고가 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는 것이다. 또한, 이는 모든 입증책임을 검사에게 돌리도록 요구하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명백히 위반되는 부당한 규정이다.

물론 이미 현행 저작권법은 창작과 동시에 저작권을 부여한다. 그러나 창작자 중에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저작권자들도 많다. 디지털 사진이나 동영상 UCC 등 일반인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저작물들은 저작권에 대한 보호를 주장하기보다 자신의 창작물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즐기기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저작물이라 하더라도 모두 권리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저작권 보호를 받으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창작성이 있어야 하고,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럼에도 일방적으로 이용자의 입증 책임을 높이는 것은 지나친 권리 보호가 아닐까. 지식 검색의 추천 답변이나 미니홈피의 사진을 단순히 스크랩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모두 사전 허락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 텐데, 이용자들이 일방적인 입증책임의 부담까지 안게 되면, 사실상 별 문제없는 일상적인 디지털 이용행위조차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다.

부지불식간 제공되는 블로거들의 개인정보

협정문 제18.10조 제30항 11목에는 저작권자가 저작권 침해 혐의자를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정보를 요청할 경우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가 이를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는 행정 또는 사법 절차를 수립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저작권자가 요구하면 블로그, 미니홈피, 카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들이 이용자들의 회원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인터넷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가 권리자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 협정문은 행정 또는 사법 절차를 수립한다고 규정했지만, 그것이 꼭 법원의 영장을 요구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며, 행정 절차를 통해서 간단히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다.

저작권 침해 혐의가 있다는 것만으로 권리자에게 개인정보가 제공되면, 인터넷 이용자들의 프라이버시가 심각하게 침해될 가능성이 높다. 법원의 영장 없이도 저작권자의 사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특히 올해 7월부터 공공기관의 홈페이지와 일일 평균 이용자 수 10만 이상의 사이트에 대해서 인터넷 실명제가 시행되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더욱 쉽게 파악하고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개인정보 침해 논란을 가중시킬 것이다.

저작권 강화와 끔찍한 인터넷 세상

한미FTA 저작권 협상은 미국의 요구를 모두 수용한 굴욕적 항복 선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협상은 미국 거대 기업의 독점권을 강화하는 대신, 한국 환경에 부합하는 저작권 제도를 구축하기 위한 공공 정책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뿐만 아니다. 인터넷 사이트들은 언제나 폐쇄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걱정해야 한다. 개개인의 이용자들은 부지불식간 발생할 수 있는 자신들의 무단 ‘접근’ 행위를 조심해야 하며, 거금의 소송 비용을 마련해야 할지도 모른다. 끔찍한 인터넷 세상이 떠오르는 것이 노파심만은 아닌 듯하다.


출처: 웹진ActOn
덧붙이는 말

파차 :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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