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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웹은 여성주의에 어떤 미래를 보여주는가
2. 웹 환경 개선 운동: 접속의 조건 만들기 2/3
3.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곳, 여성주의 웹진
4. 웹에서 이루어낸 여성주의 공동체: ‘언니네’를 중심으로
5. 웹에서의 여성주의 담론
6. 웹을 여성에게 향하게 하라, 그리고 여성주의적 소통으로 흐르게 하라
3) 여성주의적 온라인 환경 개선 활동 평가: 미디어 개입의 측면에서
정보접근권: 여성 정보화 정책
▸성 주류화 전략: 1970년대에서 80년대까지 남녀 간 평등과 차이를 둘러싼 논쟁과 이에 근거한 여성 해방과 성 평등 전략은 연속적으로 실패하였다. 여성들을 위해 시행된 각종 특별 사업들은 여전히 여성들을 주변부에 위치하게 만들었다. 여성의 관점을 정책 개발 및 실행 과정에 반영시키도록 했지만, 여성의 관점은 항상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이 탄생한다. 기존의 개발 의제가 여성을 정책 속에 통합시키려 했다면, 성 주류화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여성 및 남성 모두의 욕구를 반영하기 위해 의제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다. 성 주류화는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양성 평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 볼 수 있다.
성 주류화 개념이 국제 사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5년 나이로비 UN 3차 세계여성대회에서이다. 그리고 1995년 북경 제4차 세계여성대회에서 행동강령으로 채택되었다. 행동강령은 정책 및 프로그램 개발과 같은 행위가 계획되기 이전에 남성은 물론 여성이 처한 환경과 조건에 근거를 두어야 할 것을 천명했다.1)
우리나라는 문민정부 시절인 1995년 12월 30일에 제정된 <여성발전기본법>을 시작으로 성 주류화를 여성 발전 전략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이는 당시 UN 차별철폐협약과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행동강령 등 국제적 압력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1998)와 여성부(2001)를 설립함과 동시에 <제1차 여성정책기본계획>(1998~2002)을 시행했다. 또한, 여성정책의 주류화를 위해 5개 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을 두면서, 여성정책에 처음으로 성인지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러나 정책의 현실성 부족으로 ‘돈 안 드는 여성정책’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었다. 참여정부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성인지 예산제도’를 도입하였고, 그 결과 ‘성 주류화 전략’은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선정한 참여정부 4대 여성정책 성과에 포함되었다.
여성 정보화는 인터넷 보급이 확산된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성 주류화 전략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여성정보화촉진기본계획>을 시행하였고, 이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여성정보화추진분과위원회>가 2002년 6월 10일 신설됐다. 2003년부터 시작되어 올해 완료가 되는 <제2차 여성정책기본계획>에서도 여성 정보화는 지식기반경제 사회에 유효적절한 전략으로 <여성정보화전략계획(ISP, Information Strategy Planning)>을 수립, 추진 중이다. 공통적인 정책 목표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지식․정보 인프라의 구축’을 통한 ‘전문여성인력 양성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제고’2)이다.
▸여성 정보화 정책의 덫: 각종 여성 정보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인터넷 접근성은 남성에 비해 위축된 편이다. 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06년 하반기 정보화 실태조사에 의하면, 2006년 12월, 남성과 여성의 인터넷 이용률은 각각 80.7%(1,850만 명), 68.9%(1,562만 명)로 여전히 성별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이용자들의 성별 구성 비율도 남성이 54.2%, 여성은 45.8%였다. 물론 여성과 남성의 인터넷 이용률의 차이는 점차적으로 좁혀져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동률의 인구 구성이 여성들의 실질적인 인터넷 접근권을 담보한다고 말할 수는 있을까?
여성들은 컴퓨터가 주로 남성이 지배하는 영역이라는 생각 때문에 컴퓨터를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할 용기를 잃는다. “남자아이에게는 변신 로보트를, 여자어린이에게 ‘(수학을 싫어하는) 바비 인형’을 선물 하는 유아교육의 형태를 고려한다면”3) 이런 반응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수잔 헤링(Susan C. Herring)의 연구(1996)에 따르면 “컴퓨터 기술에 대해 얼마나 편안히 여기고 활용 능력을 발휘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여성 응답자들은 남성 이용자들과 같은 횟수의 사용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컴퓨터 사용에 대해 자신 없어 했다.4) ‘기술의 발전’이나 ‘인프라 구축’을 통한 편의성 증대가 여성들의 기술에 대한 접근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는 없다. 과학기술을 남성의 영역으로 여기는 고착화된 성역할 이미지가 여성과 남성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인터넷은 그 공간을 구성하는 기술에 있어서 결코 성과 무관할 수 없다.
한국여성개발원이 2001년 발표한 <21세기 성 주류화를 위한 국민여론 및 전문가 의견조사>는 수잔 헤링의 질문에 의미 있는 참고자료가 된다. 당시 여성의 컴퓨터 사용(47%)은 남성(66%)보다 낮았는데, 미사용으로 인한 불편함을 묻는 질문에서 여성 응답자의 59%가 ‘없다’라는 대답을 했다. 1999년 국내에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인터넷 이용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시점에서 여성들의 이러한 무관심은 인터넷이란 여전히 남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지배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보화에 대한 두려움도 무관심만큼 높았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여성 54%가 정보화를 두려워하고 있으며, 고졸이상 여성이 고졸 미만 여성보다 더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시대 변화를 감지하지만, 그 흐름에 적응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됨을 암시한다고 보고서는 설명한다. 또한, 정보화를 두려워하는 이유에 대해서 여성이 남성보다 대응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더 중요하게 지적한 것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전반적으로 정보화 시대에서 여성의 위치는 성과 무관하게 80%의 응답자가 여성이 남성보다 뒤떨어졌다고 보았다. 그 이유로 1순위는 교육 부족을 꼽았으며(58%), 여성 스스로 정보화 흐름을 타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대답(42%)도 많았다. 그리고 이 대답들이 이후 정부의 여성정보화 정책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정보화에 대한 여성의 공포감만 없애면 된다는 해법은 여성의 인터넷 접근성 향상이라는 문제 해결에 옳은 방향을 짚어준 것이었을까? 정부가 추진하는 여성 정보화 정책의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보통신부가 주도한 <주부 인터넷 교실>은 여성의 기술적 접근성 향상 정책들이 오히려 기존의 성역할을 강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2000년 3월 2일부터 2001년 8월말까지 100만 명의 가정주부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주부 인터넷 교실>은 명칭에서부터 ‘여성’이나 ‘기혼여성’ 대신 ‘주부’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여성을 육아와 가사라는 가부장적 성역할에 묶어두고 있다. 강의 내용을 살펴보면 인터넷 주식거래 방법/철도․항공 승차권 예매/경품응모․미용/취미와 자녀교육을 위한 정보 검색/음란물 차단법/홈쇼핑/전자우편 등으로 정보화 촉진 대신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 정책을 집행했던 정보통신부도 이를 숨기고 있지 않다.
“주요 소비자층인 주부의 전자상거래 이용이 활성화됨으로써 관련 산업의 촉진 및 온라인 구매에 따르는 비용, 시간 절감으로 국가사회의 전반적인 경쟁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예상됩니다.”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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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정보격차 해소 정책은 경제적 이윤창출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여성을 상대로 하는 잡지와 상업 사이트와 마찬가지로 여성을 ‘돌봄’이라는 성역할에 묶어두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창의적인 인터넷 활용이 아니라 여성을 가사노동에 종속시키는 정책은 당시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여성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00년 5월에 실시된 <주부 인터넷 교육 실태조사> 결과, 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49.9%로 절반을 넘지 못했다. 여성의 인터넷 활용 욕구에 대한 인식 없이 물질적 보조만을 목표로 한 시혜적 접근과,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한 기술적 접근 향상에만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6)
교육 과정이 존재하고 여성 스스로의 노력으로 인터넷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도, 여성을 기존의 성역할 구도 속에 놓는 시선이 존재하는 한,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기술은 남성중심적인 사회적 기준에 따라 이전보다 여성을 더욱 견고하게 가정에 묶어둘 수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지식․정보 인프라의 구축’을 통한 ‘전문여성인력 양성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제고’라는 정부의 두 가지 정책 목표는 이를 간과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인터넷 실명제
▸표현의 자유냐? 프라이버시냐?: 사이버 민주주의의 역사는 현실 세계의 역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민주주의 공화국의 역사가 개인의 자유권7) 확보에서 비롯되었듯이, 인터넷에서 공공영역 확보를 위한 논의의 시발점도 개인의 자유권 확보 여부였다. 그러나 현실세계와 다른 점이 있다면, 유럽 시민혁명의 결과 나타난 공화국이 자본주의 경제제도를 택하면서 개인의 자유권 중 특히 사유재산권 보호를 강조했다면, 인터넷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보호가 으뜸가는 가치였다는 것이다. 이는 인터넷의 탄생 자체가 사상과 정보의 공유를 기반으로 한 자유로운 소통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즉, 신문과 방송 같은 기존의 미디어가 위정자들의 담론만을 담아내는 시기에 대안미디어로 나타난 인터넷은 가진 것이라고는 ‘말’뿐인 사람들에게 대항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때문에 인터넷에서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이를 지켜주는 프라이버시, 구체적으로 익명성은 반드시 보호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참다운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는 일직선의 논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졌다. 발로우의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문도 이러한 맥락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웹이 소개된 이후 인터넷에 접속하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현실 세계의 폭력들이 그대로 재현 또는 심화되면서 이와 같은 단순명료한 논리는 깨지기 시작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정부는 이를 규제하기 위해 나섰으며, 한국에서는 1995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설립됐다. 위원회는 ‘익명성’을 인터넷 역기능의 근원으로 지적했다. 특히 웹을 이용하는 여성들에게 비일비재한 ‘인터넷 성폭력’은 익명성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부의 주된 규제 근거가 되었다. 그 결과 사이버 세계의 이념적 주춧돌인 프라이버시권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인터넷 실명제’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효과적인 인터넷 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터넷 성폭력 문제와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여성주의자들은 과연 어떤 해답을 제시해야 했을까? 프라이버시 보호가 표현의 자유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깨져버린 상황에서 여성들은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다.
▸표현의 ‘자유’와 표현의 ‘폭력’: 세계인권선언 19장에서 표현의 자유란 “간섭을 받지 않고 의견을 지닐 자유와 국경에 관계없이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도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고 또 전달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된다”라고 규정한다. 즉 표현의 자유란 ‘표현’ 행위 그 자체 뿐 아니라 표현의 수단인 ‘매체’에서의 자유로운 표현의 유통까지 총체적으로 보장하는 개념이다. 표현의 자유를 인터넷에서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핵심으로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02년 6월 27일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제1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우리 재판소는, 민주주의에서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를 국가가 1차적으로 재단하여서는 아니 되고 시민사회의 자기교정기능, 사상과 의견의 경쟁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고 확인한 바 있음을 환기하여 둔다.…(중략)…인터넷은 공중파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이다. 인터넷은 진입장벽이 낮고, 표현의 쌍방향성이 보장되며, 그 이용에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특성을 지닌다. 오늘날 가장 거대하고, 주요한 표현매체의 하나로 자리를 굳힌 인터넷상의 표현에 대하여 질서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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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헌법재판소의 단호한 판결과는 달리 여성주의자들은 웹 공간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선뜻 손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은 항상 남성들의 전유물이 되고, 여성들이 직면하는 구체적인 현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극단적이면서도, 일상적인 사례가 바로 인터넷 성폭력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실시한 <사이버 성폭력의 실태와 대책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높은 비율로 일어났다. 이를테면, 남성 응답자들 중에서 성적 표현이나 사이버 섹스 요구 등을 경험한 비율은 15.6%와 18.1%에 그쳤지만, 여성 응답자들의 경우 33.9%와 41.6%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인터넷 성폭력에 대한 느낌의 성별 차이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주 피해자인 여성들은 모욕감과 위협을 느끼고 심지어 접속 자체를 꺼리게 되는 등 부담을 느낀다는 반응이 70.6%였다. 반면 남성 응답자들은 오히려 호감을 느낀다는 대답이 55.2%를 차지했다.9)
이처럼 인터넷 성폭력 문제에서도 표현에 대한 성별 인식이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의 자기교정기능, 사상과 의견의 경쟁메커니즘’에 표현의 허용과 유통 여부를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에 여성주의자들은 선뜻 동의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의 거리낌 없는 표현의 자유가 그녀에게 표현의 폭력이 되는 상황이 초래하는 문제는 일상적인 인터넷 사용에서 간접적으로 여성들의 표현을 억압한다. 남성이 독점하는 표현의 공간 속에서, 남성의 언어가 지배하는 표현은 여성들이 남성의 시선으로 자신의 표현을 검열하도록 한다. 즉 ‘자기 검열’의 억압이 발생한다.
수잔 헤링은 여성들이 인터넷에서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는 이유로 두 가지를 지적한다. 그 첫 번째는 우선, 인터넷에서 위협적인 전술로 담화를 지배하고 통제하면서 여성들의 참여를 무시하는 남성 이용자의 존재이다. 두 번째는 여성이 적게 말하고 적게 논쟁하고 단정적이지 않은 태도를 유지하라는 내면화된 문화적 기대를 암암리에 습득하고 있기 때문이다.10) 결국 온라인이 사회적 지위에 구애 없이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가능한 영역이라는 말도 남성에게만 통용되는 수사일 뿐, 여성들은 남성들의 폭력적 표현이 난무하는 인터넷 환경과 내면화된 성 정체성으로 인터넷에서 더욱 위축된다.
<사이버 성폭력의 실태와 대책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대화방을 방문하는 여성들은 여성아이디로 접속하면 행동이 무척 조심스러워진다고 한다. 반면에, 동일한 여성이 남성아이디로 접속할 경우, 여성아이디로 대화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대우받는 것을 발견한다고 했다. 때문에 표현에 있어서 훨씬 더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녀들은 여성에게 프로포즈를 하기도 하며, 거리낌 없이 자신이 원하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했다.11)
저널리스트 마이크 홀더니스(Mike C. Holderness)의 표현처럼 인터넷 성폭력이 ‘접속된 폭력’이라면 해결책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의 접속을 끊는 것이고, 하나는 폭력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편견과 폭력을 사라지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전자는 권력에게 미디어의 규제를 장악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하여 인터넷 성폭력 문제는 정부가 인터넷을 규제할 수 있는 근거를 준 ‘빈 틈’으로 작용하게 된다.
▸프라이버시의 파괴, 인터넷 실명제: 인터넷 실명제 도입 논란은 2003년 3월 28일 진대제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이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인터넷 역기능 해소방안으로 공공기관의 인터넷 게시판부터 단계적으로 실명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대는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2005년에 통칭 ‘개똥녀 사건’ 등이 사회문제화 되면서, 실명제 도입에 대한 여론은 급반전한다. 또한, 정부의 지속적인 캠페인 결과, 2005년 11월 24일 국정 홍보처와 정보통신부가 공동으로 진행한 <사이버폭력 실태조사>에서 국민의 80%가 제한적 인터넷 실명제 도입에 찬성하였다.
결국 2006년 12월 22일 포털사이트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제한적 본인 확인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정부는 2007년 7월 27일부터 하루 평균 이용자 수가 30만 명이 넘는 16개 포털사이트와 20만 명이 넘는 인터넷 언론은 의무적으로 본인확인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인터넷 활동이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고려하면 사실상 전체 인터넷을 강제적으로 실명화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의 실효성과 정당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먼저 그 실효성에 대해 따져본다면 실명제는 인터넷 폭력을 해소시키지 못한다. 인터넷보다 훨씬 더 강력한 실명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던 PC 통신에서도 욕설과, 명예훼손 등의 사이버폭력이 비일비재했다. 현재 가장 완벽한 실명제 공간인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에서는 인터넷 폭력이 사라지기보다는, 오히려 더 적나라한 형태로 드러난다. 가수 강원래 씨의 미니홈피에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온갖 표현들이 이용자들의 이름 석 자와 함께 버젓이 올라왔다.
인터넷 실명제가 가해자의 책임 의식을 높여주지 못했다면, 피해자의 피해를 최소화시키기는 했는가? 인터넷 실명제 도입 논의를 촉발시킨 개똥녀 사건은 역설적이게도 실명이 초래하는 사태의 심각함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 당시 사건 당사자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켰던 것은 익명의 욕설이 아니라, 그의 모든 신상명세가 인터넷에 공개되었던 상황, 즉 프라이버시의 완벽한 파괴였다.
또한, 익명성은 단순히 프라이버시 보호만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 증진이라는 정치적․사회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여성들이 인터넷에서 익명을 더 선호하는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익명성은 힘없는 개인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공공기관의 홈페이지 대부분이 실명제로 전환하면서 네티즌의 참여율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 실명제가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증거이다.12)
이상의 논의를 살펴보면, 인터넷에서 새로운 공공성으로 떠오른 실명제는 인터넷 성폭력 문제에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다는 명목에서 나왔지만, 실은 오히려 인터넷 공간에서 여성을 더욱 배제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인터넷 실명제의 무용성과 그 폐해가 확실함에도 여성단체와 여성주의자들은 적극적 찬성 혹은 판단 유보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성폭력 상담소는 2001년 <사이버 성폭력의 실태와 대책에 관한 연구>에서 실명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정보통신망의 발전, 즉 무선통신이 가능해지는 기술력의 발전으로 2년 안에 실명제가 자연스럽게 되면 실명제 논의는 무용지물이 된다. 즉 실명제의 찬반으로 어떤 정책을 추구할 것이냐 보다는 실명제를 전제로 네티즌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중략)…가해자의 이야기를 염두에 둘 때 실명이라는 것은 성폭력 예방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을 전제할 수 있고, 자율적으로 실명을 유보할 때 마지막까지 실명을 관철하지 않는 몇몇의 사이트로의 가해자 이동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한 사이트가 살아남을지 아닐지의 문제는 네티즌들이 판단할 수 있으리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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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서는 익명성의 유용함을 인정하면서도, 표현의 폭력을 야기하는 원인으로 본다.
“현재 정부의 인터넷 실명제 도입에 반대해 온 사회단체들은 국가에 의해 강제되는 실명제가 민주주의를 위축시키고 비판과 약자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없앨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익명권’을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논의에서 표현의 폭력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익명권’이라는 단어에서 내가 가장 먼저 연상하게 되는 것은 그 익명성에 숨어서 가해지는 남성 폭력인 걸 어쩌랴.”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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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남성보다 익명을 더 선호한다. 인터넷은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로 성에 무관한 공간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처럼 자신이 여성임을 숨길 수 없는 공간은 아니다. 익명이라는 수단을 통해, 성적인 차별과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로 인해 사회에서 정형화된 여성성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성주의자들은 인터넷에서 만연한 ‘표현의 폭력’ 때문에 익명성이 부여하는 자유로움에 대해 회의한다. 남성들이 가하는 거침없는 표현은 익명성으로 인해 나타난 방종이라는 생각은 여성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대다수 네티즌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이와 함께 자유가 일정부분 제한당하더라도 폭력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게 됐다.
그 결과 현실 세계에서 남성이라는 지배 권력에 의한 집단적 폭력이 사이버 세계에서 인터넷 폭력으로 재현되었다는 사실은 익명이냐, 실명이냐의 논의 속에서 잊혀지고 있다. 그리고 오프라인의 표현 수단인 집회와 시위가 과도한 자유라는 이유로 경찰의 진압봉에 억압당하듯,14) 인터넷에서 익명성은 폭력의 씨앗 취급을 당하며 실명제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개입에 대한 평가: 전제와 질문의 재구성
여성들이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문을 거쳐야 한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창을 여는 것이 바로 첫 번째 관문이고, 그 공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두 번째 관문이다. 인터넷에서 여성주의적 개입은 이 두 단계에서 이뤄졌다. 첫 번째 관문을 낮추기 위해서 여성정보화 정책들이 여성단체들의 지지 속에 이뤄졌다. 두 번째 관문을 해소하기 위해서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두 가지 정책들은 기존의 공공영역 담론이 그러하듯이 여성의 구체적 현실을 배제하고 있다.
여성정보화 정책은 기술적 접근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인터넷이라는 기술과 공간의 여성 배제적 성격을 외면하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는 여성들이 처한 폭력적 현실에 집중하는 듯 보이지만, 여성의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간과하고 있다.
▸전제의 재구성: 접근권은 기본권이다. 기술적 접근과 교육으로 양분된 영역에서 기초적인 전제조건만을 마련해 온 여성정보화 정책은 인터넷에 접속한 이후에 여성이 직면하는 문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양적으로 여성의 인터넷 이용인구가 증가하고, 역량이 키워졌어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공간이 전환되는 순간 여성들의 모습은 다시 왜소해진다.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온라인에서도 여전히 커뮤니케이션은 남성 중심적이다. 이와 함께 여성들에게 내면화된 사회적 기대라는 또 다른 억압이 존재한다. 때문에 인터넷에서 여성은 증가된 인구와 역량만큼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인터넷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의 문제가 남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접근권 논의는 이러한 전제를 세우지 않았다.
여성들의 접근권은 지금까지 강조된 기술적 접근(technical access) 수준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회적 접근(social access), 다시 말해 인터넷 활용의 문제까지 반영하는 수준으로 발전해야 한다. 정책의 기조 또한, 인적․물적 지원을 통한 시혜적 배려를 넘어서 소외 계층인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에 대해 인식하고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건 조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15) 즉, 접근권은 사회권적 기본권16)으로 설정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정보 격차의 실질적이고 자율적인 해소를 꾀해야 한다.
접근의 문제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맥이 닿지 않는다면, 앞서 지적했듯이 인터넷에 접속해서 그녀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남성들이 지배하는 폭력적 현실일 뿐이다.
▸질문의 재구성: 익명성과 폭력의 상관성. 인터넷 초창기에 기대됐던, 프라이버시(익명성)에서 표현의 자유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깨져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표현의 자유와 익명성은 서로의 가치를 갉아먹는 대립적인 관계인가?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비판에서 그 해답을 유추할 수 있으리라 본다. 현실 세계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해 프라이버시 보호가 당연하듯이, 인터넷에서도 두 권리가 상호모순적인 개념일 수는 없다. 때문에 표현의 폭력이 익명성에 기인한다는 전제로 한 질문에 오류는 없는지 재고해 봐야한다.
인터넷 성폭력이라는 ‘접속된 폭력’의 문제를 다룰 때 이 질문은 폭력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사회구조적인 폭력을 풀어나갈 때 느껴지는 난망함과 정부의 통제 위주 정책이 조응한 결과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앞두고 여성주의자들이 딜레마적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정부는 폭력의 문제를 폭력 자체의 해소가 아니라, 접속의 차단으로 해결하려고 했고, 이 좁은 사고의 틀 안에 갇혀 버린 여성주의자들은 그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여성주의자들 스스로도 인터넷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현실세계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현상으로 간주하면서도, 인터넷 내부의 담론 논의에만 치중하고 외부의 일상적인 문제로 논의를 확장시키지 못했다.
최근 들어, 익명성과 표현의 자유의 대립구도를 벗어나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악플과 같은 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은 익명성이 아니라 ‘비대면성’, ‘집단성’, ‘대화의 단절’이기 때문에, 인터넷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의 문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익명성보다는 ‘비대면성’과 ‘집단성’이 악플이 만연화 되는 결정적인 계기인 셈이다. 악플에 대한 논란은 ‘실명제’와 맞닿아 있다. 익명성이 악플을 양산시키는 원인이며, 이를 근절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실명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실명제가 악플의 근본적인 대책이 되는 것일까? 실명제만으로 악플을 근절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악플은 사실상 우리의 토론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현실공간에서 ‘자기표현’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은 세대들, 그리고 탈문자세대들이 맞닥뜨리면서 악플은 더욱 활성화되는 경향을 보여준다.…(중략)…인터넷에서 악플을 발생시키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러한 대화의 단절에 있다고 볼 수 있다.”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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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접근 방식은 여성주의자들에게 ‘표현의 자유냐, 프라이버시냐’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빠져나갈 여지를 준다. 익명성은 표현의 자유를 왜곡시키지 않으며, 여성이라는 소수자 입장에서 표현의 자유는 남성들보다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에, 인터넷에서 익명성으로 대변되는 프라이버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여성들이 인터넷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논의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웹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심도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부차적이면서 사적 영역으로 취급된 여성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역할을 할 것이다.
<각주>
1) 여성부(2004), <외국의 성 주류화 동향과 여성정책기본계획>
2) 여성부(2002.12.), <제2차 여성정책기본계획>, pp.19~20.
3) Lesile Regan Shade(1993),
4) Susan C. Herring(1996),
5) 정보통신부(2000), <“주부 인터넷 교육” 정책 보고 자료>
6) 조지영(2001), <여성정책으로서의 디지털 디바이드 해소정책에 대한 고찰: “주부 인터넷 교실”을 중심으로>, 서강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학위논문
7) 자유권적 기본권. 개인의 자유로운 영역에서 국가 권력의 간섭이나 침해를 배제할 수 있는 권리. 표현의 자유나 사생활 비밀과 자유, 통신의 자유 등이 이에 속한다.
8) 헌법재판소(2002), 99헌마480, 판례집 제14권 1집, pp.616~643.
9) 심영희(2001), <사이버 성폭력 어디까지 왔나?>. 2001 사이버 성폭력 세미나 자료집
10) Susan C. Herring(1996), pp.476~489.
11) 이미정(2001), <사이버 성폭력 어떻게 생각하나?>. 2001 사이버 성폭력 세미나 자료집
12) 민경배(2005), <사이버폭력의 원인과 인터넷 실명제의 폐단과 대책>. 2005 인터넷실명제 심층진단 토론회 자료집
13) 시타(2004),
14)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 제21조에서 보장된 기본권이며, 헌법 제10조에서 국가가 최대한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 불가침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2006년 9월 17일 경찰청은 <집회시위 현장대응 강화지침>을 통해 “교통체증이 우려되는 도심 집회에 대해 적극적으로 금지 통고할 것이고 기자회견이나 문화제에 대해서도 불법집회로 판단되면 현장검거를 강화하겠다.”라고 발표했다. 또한, 복면을 쓰고 집회나 시위에 참가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006년 10월 국회에 제출, 현재 계류 중이다.
15) 황주성․이민영(2004), <차별 없는 정보접근보장을 위한 법제개편방향>,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이슈 리포트(2004. 12.), pp.12~15
16) 사회권적 기본권은 국가권력이 국민생활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는 것으로, 국가권력을 통제함으로써 보장되는 자유권적 기본권과 구별된다. 권력분립은 자유권적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17) 김양은(2007), <키보드 워리워와의 사투(死鬪)>, 따뜻한 디지털 세상 118호, pp. 18~21
출처: 웹진ActOn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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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은 :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