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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웹은 여성주의에 어떤 미래를 보여주는가
2. 웹 환경 개선 운동: 접속의 조건 만들기 3/3
3.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곳, 여성주의 웹진
4. 웹에서 이루어낸 여성주의 공동체: ‘언니네’를 중심으로
5. 웹에서의 여성주의 담론
6. 웹을 여성에게 향하게 하라, 그리고 여성주의적 소통으로 흐르게 하라
4) 여성주의적 온라인 환경 개선 활동 전망: 미디어 활용의 측면에서
새로운 정보 공유 방식, 1인 미디어
인터넷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웹의 전반적인 구조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타임(Time)지가 2007년 ‘올해의 인물’로 평범한 ‘당신(You)’을 택하게 했던 그 변화를 흔히 ‘웹 2.0’이라고 부른다. 그 속에서 지금까지 사소한 것으로 여겨졌던 개인의 앎이 나름의 가치를 지니면서 대중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웹 2.0이라는 용어는 2004년 미국에서 열린 ‘웹 2.0 컨퍼런스’에서 팀 오렐리(Tim O’Reilly)가 명명한 데서 비롯됐다. 과거 인터넷 서비스, 즉 웹 1.0과 차원이 다른 새로운 버전이란 의미지만, ‘웹 2.0은 이런 것이다’라고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힘들다. 웹 2.0은 그 자체로 정의되는 개념이 아니라, 과거의 인터넷과 비교를 통해 정의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브리태니커 온라인 백과사전(Britannica Online)이 웹 1.0이라면, 위키피디아(Wikipiedia)1)는 웹 2.0이다.’, ‘엠피쓰리닷컴(MP3.com)이 웹 1.0이라면, 냅스터(Napster)는 웹 2.0이다.’, ‘개인 홈페이지가 웹 1.0이라면 블로그(Blog)는 웹 2.0이다.’, ‘사람이 광고를 눌러서 자기가 관심을 갖는 광고를 찾아가면 웹 1.0이고, 컴퓨터가 알아서 구독자가 관심을 갖는 광고를 제공하면 웹 2.0이다.’라는 식이다.”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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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웹에서 유통되는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은 집단적이었다. 대형 포털을 중심으로 정보가 축적되고, 정보의 소통 역시 포털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현재 웹의 활용방식은 어떠한가? 팀 오렐리가 웹2.0이라 명명하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은 포털을 통하지 않고, 1대 1로 통한다. 정보 생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 정보를 누구에게나 개방함으로써, 독점이 아닌 공유를 실현한다.
웹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이 변화하는 상황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바로 담화구조의 변동이다. 이는 흔히 웹 2.0 흐름에서 전통적인 시장 구조의 전복을 뜻하는 ‘롱테일(Long Tail) 법칙’과도 맥이 닿아 있다.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이 창안한 이 개념은 보통 상위 20%의 제품이 전체 매출의 80%를 점하는 ‘20대 80의 법칙’이 웹에서는 전복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즉, ‘긴 꼬리(long tail)’에 해당하는 하위 80%가 전체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면서, ‘거대한 머리(big head)’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다.
웹의 개인화 흐름은 정보를 공유하고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꼬리의 반란’을 가능하게 한다. 지금까지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소수자들이 중앙 집중적인 소통 구조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미디어를 가지고 발언력을 높이게 되었다. 이 때 사용되는 대표적 미디어는 바로 ‘블로그’이다.
웹의 남성 중심적 담화구조에서 억압받아온 여성들에게 ‘블로그(blog)’3)라는 1인 미디어는 ‘인터넷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다. 블로그에서 여성들은 개인적 경험을 통해 얻은 자신만의 정보를 자신만의 대화 방식으로 풀어낸다. 사소한 것으로 치부된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목받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꼬리의 반란: <자기만의 방>과 <진보 불로그>
웹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이 변화한 상황은 여성에게 어떤 의미일까? 여성의 사회적 접근권을 보장하고, 인터넷 폭력의 해소에 기여할 수 있을까? 1인 미디어를 대표하는 키워드인 블로그는 대화의 심화를 통해 공공영역 형성에서 배제되어왔던 여성들의 사적인 이야기가 주목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네이버 ‘지식in’에서 “여성부는 왜 생겨났나요?”라는 질문에서 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은 이렇다. “여성들의 이기심이 어쩌고 저쩌고….”4) 또한, 지식in에서는 콘돔의 사용법에 대한 궁금증을 쉽게 풀 수는 없다. 검색을 하려면 우선 성인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성인인증을 받았다하더라도, 음란사이트에 들어오는 여성은 성폭력을 해도 된다는 통념이 존재하는 상황5)에서 성적인 이슈에 대한 질문을 풀어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포털을 중심으로 한 집단적인 소통 체계에서 여성들의 자유로운 정보 공유는 제약 받았다. 정보화의 물결 속에서도 여성이 알아야 할 것은 제한적이었으며, 여성들을 위한 지식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누구도 이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웹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인터넷 창을 여는 모든 여성들에게는 절체절명의 과제였지만 여성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하는, 말 그대로 사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하지만, 블로그의 1인 미디어적 특징과 트랙백을 통한 자유로운 소통은 그것이 몰성적인 사안이거나 개인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님을 알려준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운영하는 <진보 불로그>(http://blog.jinbo.net)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곳은 남성도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지만, 여성들이 생산하고, 여성들을 위한 정보들이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 월경과 대안생리대 이야기를 여성과 남성 이용자들이 함께 이야기 한다. 운동권 내부의 성폭력 고발에 수많은 이용자들이 지지의사를 표명하며 트랙백6)으로 연대하기도 했다. 또한 2~30대 비혼 여성들이 중심이 되는 <자기만의 방>과는 달리, 주부들의 육아 노동에 대한 이야기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자기만의 방>과 <진보 불로그>에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가능케 하는 익명성이 보장된다. 때문에 이 공간의 여성들에게 웹은 더 이상 홀로 서 있기에 두려운 공간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수동적인 정보 습득자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전통적인 지식 분류법에서 비전문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온 일상의 경험을 블로그라는 공간을 활용해 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퍼뜨린다.
‘말할 거리’가 있는 그녀들
<자기만의 방>과 <진보 불로그>가 아닌 곳에서도 여성에게 웹2.0은 가능성이 될 수 있을까?
네이버의 지식in도 분명히 웹2.0이라 불리지만, 여성들이 이용할만한 지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범람하고 있는 UCC(User Creative Contents)에는 여성 비하적 내용들이 부지기수이다. 웹 공간에서 개인의 활용 능력 향상이 여성 친화적 성격을 담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한, 도토리를 받고 판매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콘텐츠는 여성들에게 웹2.0의 첫인상을 백화점의 모습으로 그려놓았다. 과거 여성주의자들이 포털에 가졌던 기대가 결국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백화점과 월간 여성잡지를 그대로 사이버 상에 올려놓은 작업에 그쳐버리게 된’7) 경험이 재현되고 있다.
그럼에도 웹2.0이라는 개인화 흐름을 여성주의자들이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존재한다. 개인화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규정하려는 노력이며, 이는 여성해방운동의 오랜 주제이다. 굳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여성들은 일상에서 여성이기에 차별받고 억압받은 경험들을 공유한다. 가부장제에서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자신에게 부여된 성적 정체성을 벗어나려고 하며, 가부장제의 구성원이 아닌 새로운 개인으로 태어나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한다. 때문에 개인적인 앎과 경험이 주요한 정보가 되는 현재 웹의 흐름은 여성주의 공공영역 구축의 가능성이다.
“디지털 시대의 독해력은 크게 세 차원으로 나누어서 다루게 되는데, 첫 번째가 기술적 접근을 위한 숙련이라면, 두 번째는 콘텐츠 활용능력, 세 번째는 공동체 형성 능력이다. 일단 기술적 액세스 단계를 거치고 나면 정보해석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높여가야 하는 것이다. 이때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를 생산해낼 수 있는 사람들, ‘말할 거리’가 있는 사람의 시대가 열린다.…(중략)…인터넷 시대에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동안 여자들이 여성해방운동을 통하여 ‘정체성의 정치’라는 영역을 넓혀나간 경험과 관계가 있다. 복합적인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인터넷 시대는 새로운 정체성의 확립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농경적인 남녀유별의 시대를 거쳐 남녀평등의 시대를 갈구해온 여성들은 근대화 과정을 통해 남성들에 비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만들어낸 집단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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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06년 하반기 정보화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의 블로그 이용률(48.9%) 및 운영률(40.2%) 모두 남성(각각 46.2%, 39.1%)보다 높게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남성의 인터넷 이용률이 더 높은 상황에서, 웹의 초창기와는 달리 여성들이 남성보다 블로그로 대표되는 이 새로운 흐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 있는 통계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5) 맺음말: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기술적 접근이 보장되어도 여성들이 여전히 인터넷 창을 열기 어려웠던 이유, 웹 공간에 들어서도 여성들이 여전히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웹이라는 기술과 공간이 여성에게 즐겁지 못한 곳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어려워 보이기만 하고, 공간은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의 해방을 꿈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성들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조건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간과되었던 것은 ‘어떻게 활용하느냐’라는 질문이었다. 인터넷이 이용자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속에 흐르는 정보 때문인데, 그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때문에 여성들은 주체적인 인터넷 활용에서 배제 당했고, 그렇기에 그곳은 즐겁지 못했다. 하지만, 웹2.0이라는 흐름은 활용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했다. 그것도 각각의 개인들에게서 말이다.
여성들이 생산하는, 여성들을 위한 정보의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웹2.0은 인터넷을 여성주의 공공영역으로 변화시킬 매개체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성들의 적극적인 활용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법제도적 개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남성들보다 소극적인 여성의 인터넷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인터넷에서 여성의 프라이버시, 즉 익명성을 보호함으로써,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물론 남성들이 여성에게 가하는 표현의 폭력 문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는 인터넷 공간의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악습의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여성들의 개인적 경험과 앎이 대중적 소통 구조에서 공유되면서 공적인 의제로 소통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흐름은 또한 여성들의 독창적이고 다양한 실험을 이끌어낸다. 누가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여성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글과 그림과 영상들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터넷을 즐겁게 활용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인터넷을 여성주의 공공영역으로 만드는 정치적 행동이다. 인터넷에서도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 된다.
동일성과 보편성이라는 기존의 공공영역 개념에 대항해서 차이와 다양성의 존재를 말하는 여성주의 운동은 인터넷이 본래 꿈꾸었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현재의 인터넷은 여성에게 이를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각주>
1)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쓰고 편집할 수 있는 사용자 참여의 온라인 백과사전. 이미 세계최대라고 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정보를 3배 이상 뛰어넘었다.
2) 지음(2005), <웹 2.0이란 무엇인가?>, 네트워커 30호, pp. 15~17
3) 웹(web)과 항해 일지를 뜻하는 로그(log)의 합성어, 개인, 즉 블로거(blogger)가 자신의 일상 이야기나 사회적 이슈에 관해 글과, 그림 동영상 등을 통해 표현하는 인터넷 1인 미디어라 볼 수 있다.
4) 땐싸(2004), <마녀와 옥수수>, 네트워커 9호, p. 29
5) 심영희(2001), 앞의 글
6)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은 글을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도 알릴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7) 조한혜정(2000), <내가 만들고 싶은 사이버 공화국>, 연세여성연구 제6호, 연세대학교여성연구소, 평민사
8) 조한혜정(2000), pp. 14~15.
출처: 웹진ActOn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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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은 :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