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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웹은 여성주의에 어떤 미래를 보여주는가
2. 웹 환경 개선 운동: 접속의 조건 만들기
3.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곳, 여성주의 웹진
4. 웹에서 이루어낸 여성주의 공동체: ‘언니네’를 중심으로
5. 웹에서의 여성주의 담론 1/2
6. 웹을 여성에게 향하게 하라, 그리고 여성주의적 소통으로 흐르게 하라
웹은 여성주의에 어떻게 공헌했는가? 혹은 여성주의는 웹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했는가? 그리고 웹에서의 소통 방식 혹은 웹 자체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여기에서는 웹이 훌륭한 대화의 창구, 공론화의 장, 그리고 아젠다 확산의 발판으로 사용되었으며, 새로운 여성주의적 소통방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사례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1) 호주제 폐지운동: 그 기나긴 역사
2005년 3월 2일 호주제폐지민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호주제는 역사 속의 제도가 되어버렸다. 그 자체로 성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인 제도로서 또 다른 성차별적이며 반인권적인 인식을 생산해내던 호주제의 폐지는 끈질긴 운동이 낳은, 놀랍지만 당연한 결과였다.
호주제 폐지를 이끌어낸 여성운동의 역사는 무려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YWCA는 8개 단체와 연합하여 친족상속법을 중심으로 한 민법 제정에 관한 건의서를 제출하였으며, 그 안에는 호주권을 포함한 재산상속문제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공청회 참여 및 국회 호소문과 개정안 제출 등의 운동을 통해 1958년에는 친족상속법을 중심으로 한 1차 신민법이 제정되었다. 1975년에는 ‘YWCA 가족법 개정의 해’ 제정을 통한 적극적 운동을 통해 1977년 2차 가족법 개정을 맞이하였지만 호주제 폐지는 포함되지 못하였다. 그 후 1980년대까지 가족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 및 순회강연, 공개토론회 등을 통한 운동을 전개해왔다. 그 후 마침내 1998년 11월 4일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이 결성되었고, 2001년 9월 9일에는 12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가 조직되었으며, 연이어 헌법재판소에 호주제 위헌소송도 제기되었다.
웹-아젠다 확산의 일등 공신
1990년대 후반, 호주제 폐지운동은 좀 더 조직적인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조직의 기반에는 인터넷이 있었다.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호주제폐지운동본부(www.no-hoju.or.kr) 등의 홈페이지가 그것이다. 또한, 여성단체의 홈페이지 혹은 여성주의적 성향의 홈페이지에서도 독자적으로 호주제 폐지 운동을 위한 게시판을 달았다. 1998년부터 인터넷 통신을 통해 호주제 폐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논객으로서 활동하던 고은광순은 ‘호주제 폐지의 일등공신은 인터넷이다. 물론 ‘사이버 마초’들을 양산하긴 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토론도 하고 힘을 모을 수 있었다1)’고 말한다.
집단에 뿌리 깊게 내린 편견, 익숙함,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절대 의심하지 않는 관성, 이것들은 언제나 여성주의 혹은 소수자가 싸울 문제 혹은 대상들의 공통된 성질이다. 그 거대함과 싸워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웹은 전쟁터이며 광장이다. 즉, 앞에서 말한 공공영역이라는 말로 포괄할 수 있겠다. 80년대까지의 호주제폐지 운동에서 볼 수 있는 오프라인의 ‘서명운동 및 순회강연, 공개토론회’의 방식은 홍보와 대중의 참여에서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비용과 시간의 제약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주체 역시 오롯이 활동가 집단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참여를 이끌어내기까지가 더디고, 참여를 이끌어낸다고 해도 취합하는 게 쉽지 않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호주제 폐지에 대한 여론을 끌어내는 것은 머나먼 일이었다.
호주제 폐지의 목소리를 내라/ 들어라
많은 여성주의적 이슈들이 그렇듯, 호주제 폐지 문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소수자와 약자를 포함한 계층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만을 위한 이기주의적 발상”이라는 공격을 받아왔다. 호주제의 경우에도, 가부장적이며 성별에 따른 차별,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이 이뤄지고, 국가가 과도한 개인 신상을 집적하여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호주제 폐지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홈페이지들은 이러한 공격들에 대응할 수 있는 지식을 축적하고 있어, 호주제에 대한 좁은 편견을 깰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웹은 주류 미디어가 지속적으로 주목하거나,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이며, 호주제 운동에 있어서 대안미디어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범위를 넓히지 못하던 호주제 폐지 운동의 급속하고 폭발적인 확장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다. 호주제 폐지를 목적으로 한 사이트들은 호주제 관련 자료나 조사결과 등을 자료실에 게재함으로써 호주제의 부당성에 대해 홍보하였다. 또한 실제 호주제에 대한 문의나, 호주제로 피해를 본 사람들의 상담을 해 주었다. 이렇게 활동가 혹은 전문가가 만드는 게시물과 일반 시민들의 게시물이 어우러진 홈페이지는 호주제 폐지 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순회강연이나 공개토론회 자체의 의미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공간과 시간의 한계를 넘어선 ‘순회강연’과 ‘공개토론회’의 역할을 웹이 충실히 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2003년 11월에는, 인터넷 중앙일보의 중개로 지은희 여성부장관과 네티즌의 ‘호주제에 관한 온라인 토론’이 진행되기도 했다.
▶다리**: 호주제 폐지를 해야 만 여성의 권위가 올라가는지요. 또한 만약에 폐지가 된 후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한다면 추후에도 그 책임을 질 수 있는지요. 입법들은 잘하는데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어서 남발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서요(뭐 인기 좀 끌려고) ▶지은희 장관: 우선, 호주제 폐지가 여성의 권익향상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호주제로 인해 우리 사회 주변에서 겪고 있는 불합리한 폐해들을 함께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호주제 관련 위헌법률 심판 제청건만도 9건이나 될 정도로 현실에서 고통을 받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절손을 막기 위해 아들을 낳으려고 여아들을 끊임없이 낙태하고 있습니다. 할머니가 2살 난 손자의 보호 아래 놓여 있는 것은 오히려 현실의 가족질서를 반영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략- ▶덕***: 이미 재산상속을 받고 연세 드신 양친을 모시고 살던 부부가 갑자기 남편이 사망하고 여자가 재산과 자녀를 데리고 재혼하여 자녀의 성까지 바꾸고, 시부모를 방치할 경우, 후손도 잃어버린 이 시부모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지요? ▶지은희: 노인 방치 등의 문제는 현행 호주제 하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는 호주제를 유지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는 변화하는 우리의 실정을 반영하는 노인복지정책을 수립하고 가족의 참모습을 구현하는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여 위기의 가정을 안정시키려고 합니다. ▶*4****: 호주제 폐지라는 것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역사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단일민족으로 수천 년을 살아온 우리 민족의 생명은 근친문제의 철저한 관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생부의 성을 따른다는 것은 민족 구성원간의 너와 나의 구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만. 근친문제의 보완책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국민 대다수가 법이 개정이 되어도 생부의 성을 따를 것이라고 하는데 굳이 국민 대다수가 싫어하는 법을 개정한다는 게 민주주의 나라에서 가능한 건지 궁금합니다. ▶지은희: 우선 호주제 폐지와 근친혼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혼부부라 하더라도 자녀와의 관계까지 단절되는 것은 아니며, 새로 마련되는 신분등록부에 생부, 생모가 함께 등재되므로 성이 바뀌더라도 형제, 자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근친혼에 대한 우려는 새로운 신분등록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오해라고 보여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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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지은희 장관과 네티즌이 웹에서 벌인 토론의 한 토막이다. 인터넷 중앙일보 주최로 이루어졌던 이 토론의 내용은, 호주제 폐지 사이트에서 자주 등장하는 질문들과 유사하다. 사실을 기반으로 공감할 수 있는 신뢰감 있는 답변은 호주제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깨뜨리는 도구다. 그 토론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토론의 내용을 읽을 수 있게 한다면, 웹에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그 영향력은 얼마든지 미칠 수 있다.
한편, 호주제 폐지 운동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개개인의 피해 사례에 관한 상담내용은 대중에게 지식을 실생활에 대입해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다. 호주제의 폐해를 나의 생활과 동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느끼게 해,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공감대까지 형성할 수 있게 한다. 지금까지도 접속이 가능한 호주제폐지운동본부(www.no-hoju.or.kr) 사이트를 들여다보자. 호주제 폐지에 관한 기사문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호주제 폐지 홍보대사의 동영상을 볼 수도 있고, 호주제 폐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릴레이를 볼 수도 있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동영상으로 알아볼 수 있다. 또한 방문자가 좀 더 적극성을 가질 수 있는 “호주제 폐지로 오행시 짓기”나 “국회의원에게 호주제 폐지를 촉구하는 E-card 보내기”의 메뉴도 있다.
웹을 넘어, 승리는 오프라인까지!
여성연합은 보다 많은 네티즌이 동참할 수 있도록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아직도 호주제가 있다고요?’, ‘성씨 선택할 자유를 달라!’, ‘호주제 폐지 이후 신분등록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등의 주제로 토론방을 개설하는 등의 활동도 전개했다. 2004년에는, 당시 12월 대선까지 온라인에서 호주제 폐지를 홍보하는 역할을 위해, 오프라인에서 서포터즈를 모았다. 온라인의 힘을 더욱 더 적극적이고, 조직적으로 활용하게 된 것이다.
호주제 운동의 주체들은 웹의 힘으로 운동의 결과물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다시 오프라인으로 가져가는 데에 성공했다. 웹이 운동에 기여한 만큼, 그 안에서 인신공격적인 루머가 웹을 통해 퍼지거나, 사이버 성폭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것은 웹에서 상대가 여성으로 인식된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나 맞닥뜨릴 수 있는 위험이기도 하다.
그러나 호주제 폐지 운동은 점점 더 확산되었고, 더욱 더 많은 대중들이 사안에 동조하였다. 법조계, 문화계 등이 운동에 지지를 보냈고, 활동의 주체로 더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캠페인, 문화 활동을 통한 홍보 등과 함께 호주제 위헌단은 결국 2005년 3월 위헌 판결을 받아냈고, 호주제는 역사 속의 제도가 되었다.
나가며
호주제가 폐지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호주제를 대체할 다른 신분등록법안은 여전히 공백 상태로 남아있다. 언니네트워크를 포함, 소수자들과 연대한 여성단체들은 호주제 대안으로 목적별 신분등록제를 주장하고, 이 법의 입법을 위해 운동하고 있다.2) 호주제 폐지의 원래 목적을 살리려면, 그 폐지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법이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을까? 호주제의 핵심 문제였던 가부장적 가족주의, 과다한 개인정보 집적 문제를 해체할 수 있는 법으로서 목적별 신분등록제가 자리를 잡을 수 있어야겠다. 호주제 폐지운동이 펼쳐진 시점보다 웹의 가능성을 더욱 많이 발견한 지금, 목적별 신분등록제를 웹에서의 새로운 아젠다로 세우지 못한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
2) ‘도마 위의 예비역’과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 군대문화와 사이버 공간에서의 여성주의
1999년 12월 23일 위헌판결을 받은 군가산점제는 웹상에서 일어난 다양한 논란 중에서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극명하게 여성과 남성으로 나뉘어 끊임없이 문제제기 되고 논란이 되는 주제이다. 1999년부터 군가산점제 위헌 판결을 둘러싸고 인터넷 공간은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판결에 대한 타당성 혹은 부당성에 대한 쌍방향적인 논쟁, 그리고 그 논쟁을 위한 근거들은 결국 소송을 제기했던 청구인들(당시 군가산점제 위헌 소송에는 연세대 재학 중이던 남성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이 졸업 혹은 재학했던 이화여대 홈페이지 게시판과 군가산점제에 대해 언급했던 여러 여성 사이트들에 글을 올리는 여성들에 대한 사이버 마초들의 위협과 폭력 등으로 묻혀버렸다. 군가산점제 폐지에 대한 여성들의 합리적인 논리와 근거는 단순하게도 ‘출산’ 혹은 ‘여성의 군대 징병제’ 등으로 비하되며, 남성들의 무차별적이며, 폭력적인 글로 훼손된 것이다.
군가산점제 위헌 판결을 둘러싸고 인터넷 공간에서 보였던 이런 폭력성이 2001년 4월 25일 ‘도마 위의 예비역’이라는 기획 기사를 통해 대학 내 예비역 문화에 대해 비판을 제기했던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에서 재현되었다. <여성의 목소리여! 치마를 걷어 부치고 가부장제의 담을 뛰어넘자!>를 모토로 여성주의 언론의 필요성과 여성들의 시각으로 이루어진 웹진을 만들고자 했던 <월장>은 창간호의 기획을 예비역 남학생들의 음담패설과 매매춘 문화, 내리까시(얼차레), 술자리에서의 성희롱 등을 문제 삼은 ‘도마 위의 예비역’으로 오픈하였다. “예비역 선배들의 권위적인 모습들로 인해 그 앞에서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문화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 월장이 가진 문제의식의 발단이었다.3)
당일 월장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500여개 이상의 글이 폭주하였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쏟아지면서 오픈한지 불과 3일 만에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월장 커뮤니티의 여성전용게시판 글들이 타 게시판에 유출되는 등 피해상황이 커지면서 ‘월장관련사이버성폭력 대책위’를 부산대학교 총여학생회, 부산성폭력상담소와 함께 구성, ‘월장관련사이버성폭력 대책위’ 기자회견 및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4) 오픈 후부터 시작된 예비역들의 협박과 욕설 등 무차별적인 사이버 폭력에 고군분투하게 된다.
이 사태는 여성들과 예비역들 간의 열띤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고, 결국 서로가 제시하는 논리를 떠나 상대방을 공격하는 인식공격형 글과 성폭력사태에 이르게 되었으며, 이런 <월장>사태에서 보인 일련의 흐름들은 군가산점제 폐지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흐름과 흡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웹상에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의견의 제시와 서로의 논리가 오가야 하는 건설적인 논쟁의 장이 이렇게 사이버폭력으로 변질된 것은 비단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는 군대 문화를 주제로 웹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논쟁을 벌였던 월장 사태에서 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대한 남성들과의 논쟁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이 사태가 과연 남성과 관련된 군대 문화이기에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 것일까? 군대라는 민감한(?) 주제는 비단 월장에서 다룬 예비역 문화에서만 드러난 것은 아니다. 군가산점 폐지와 관련해서도 얼마나 많은 여성사이트들이 사이버테러와 폭력에 노출되었으며, 스스로의 게시판을 폐쇄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는가.
사이버 공간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는 의사소통의 쌍방향성이 가능하며, 익명성으로 효과적인 여론수렴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5) 이를 위한 기본적인 요건으로 사이버 공간에서의 여성에 대한 성적비하와 언어폭력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6)
1990년대 들어 인터넷이 등장하고 확산되기까지 사이버 공간은 현실과는 달리 여성들에게도 평등하게 게시판을 통해 의견을 밝힐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불평등과 차별, 억압적인 압력과 폭력적인 행태는 사이버 공간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논리적인 토론을 추구하고자 했던 여성들의 글은 사이버 마초들의 폭력적인 댓글로 인해 훼손되기 일쑤였지만, 폭력적이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에도 굴하지 않고 여성들은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자신의 입장에 대해 대화하고자 하였다. <월장> 사태는 바로 논쟁의 장을 제시하고자 했던 여성들의 제안이었다.
(중략) 여성주의 언론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국정교과서의 남성우월적 시각을 용인하고, 여성정치인은 희귀한 ‘남성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의 시각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발 디딜 틈을 만들고, 앉을 자리를 만들고, 다리 뻗을 자리를 만들어 결국에는 진정하게 남녀가 동등한 인격체로서, 성별로 인한 어떠한 구애도 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만들어 가고자 함이다. (중략)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즐거워지자. (중략) ―월장 소개글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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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의 시각을 가지고 현실의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동등한 인격체로 나아가고자 했던 <월장> 창간호의 ‘예비역’들과의 대화는 오프라인상의 토론회에 대한 불참과 <안티월장커뮤니티>의 폐쇄로 단절되었다.
<월장>에 대한 무참한 사이버 테러가 <월장>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언니네’와의 인터뷰에서 <월장>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월장을 둘러싼 예비역 사태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언니네: 그 이후로 변화한 것이 있나요? 게시판 분위기에서나 편집방향에서나.. 월장: 요즘도 방명록이나 게시판에서 가끔 횡포를 부리거나 예비역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사람이 있긴 해요. 편집방향에서 바뀐 것은 없지만, 자기검열이 좀 많아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2호에서 교수들의 성폭력이나 수업시간의 성희롱을 가지고 가상 인터뷰를 꾸몄는데, 실제 신분이 드러나는 부분들은 다 뺄 수밖에 없게 되더군요. (중략) 언니네: 하지만 싸우면서 얻은 것도 있었을 텐데? 월장: 얻은 것? ‘맷집’이요! 처음에는 귀가 얇아서 옆에서 비판하면 ‘내가 잘못했나?’ 고민도 했는데, 말도 안 되는 비판을 들으면서 오히려 단련이 되었어요. 그리고 처음에 워낙 크게 싸웠기 때문에 다음 주제에 대한 두려움이 없죠. (웃음) ‘남자’들과의 싸움에서 얻게 된 성과예요. 언니네: 지금은 게시판은 닫고 커뮤니티에서만 소통을 하잖아요. 그건 어쩌면 월장의 문제의식에 동의한다는 것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폐쇄적이라는 느낌도 드는데..? 월장: 회원제이긴 하지만, 월장에 동의하지 않아도 가입시켜주고 있어요. 하지만 여성인 척하는 사람에게는 가입허가를 주지 않죠. 여성은 정회원, 남성은 준회원인데, 이런 단순한 구분에 무리가 있다는 건 알지만, 여성전용게시판 운영을 위해선 지금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 언니네 30호, 여성주의의 지역주의, 월장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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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월장> 사태는 편집진에게 자기검열과 폐쇄성을 띤 운영 경향으로 가게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게시판의 폐쇄와 커뮤니티에서만의 소통, 회원제에서의 여성과 남성회원에 대한 구분으로 여성전용게시판을 운영하는 한계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월장> 커뮤니티의 회원들 중 7명의 정보가 공개되고 이 중 4명의 회원들이 ‘폰섹스’ 요청 전화를 받았던 점 등을 고려해 볼 때 <월장>이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사태의 흐름상 당연한 결과였다고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월장>의 편집진과 회원들에 대한 사이버성폭력 사태가 불러일으킨 고통과 고난의 경험이<월장> 혹은 관련 주제를 다루었던 다른 여성주의 사이트의 게시판에 폐쇄성이라는 경향을 가져왔다고만 보기엔 <월장>이 얻었던 경험은 그 과정상의 소득이 많았다고 평가해볼 수도 있다. 대학 내에서 ‘예비역’들에 대해 여성이 느끼는 부당함과 비합리적인 문화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는 그리고, 이를 여성만이 아닌 남성과의 토론을 통해 ‘공론화할 수 있는 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남성들에게 있어 ‘성역’이라 칭해지는 군 문화에 대한 주제를 시발로 하여 여성들이 일상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여성주의적 관점을 견지해 나갔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주의 웹진들의 한계라 지적되고 있는 여성주의적 담론의 오프라인상에서의 이슈화를 끌어내는 작업을 <월장>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논쟁을 뛰어넘어 ‘월장 관련 사이버성폭력 토론회’ 및 ‘월장토론회’를 개최하고, 조직화를 통한 사이버폭력의 근절을 꾀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라고 평가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 개인 스스로에 대한 임파워먼트는 바로 일상에서의 다양한 경험들을 함께 나누며, 소통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 부산여대 웹진 ‘월장’의 예비역 사태는 그 과정 자체가 일상적으로 만연해 있는 군사주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만큼, 군대의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리고 그 결과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나타나는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는 여성주의자들이 사이버상에서 어떻게 싸웠는가, 그리고 살아남았는가에 대한 중요한 사례이기도 하다.7)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은 현재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 창간호에서부터 집단적인 사이버 테러를 경험했던 <월장>의 활동이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지지 않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이버성폭력에 굳건하게 맞서며 웹이라는 공간과 매체, 오프라인상의 토론회를 활용하여 예비역 남학생들의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논리에 여성 자신의 입장을 견지해가며 담론의 형성을 유도했던 <월장>의 새로운 활동과 부활을 기원한다.
<각주>
1) 주간동아 2003년 9월 11일자 인터뷰
2) 목적별 신분등록제 운동이 활발하지 못했던 이유로, 호주제 폐지 운동의 핵심내용이 결국 소수자의 입장보다는 이혼 가족/혹은 재혼 가족의 자녀가 성별 문제로 겪는 ‘정상가족 진입의 어려움’ 같은, 결국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내용에만 치중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서는 운동 자체에 대한 평가와 분석은 하지 않기로 한다.
3) 조이여울(2001) “건드리지 마! 다쳐―예비역은 성역 ―웹진 ‘월장’ 사이버테러 봉변”, 여성신문 기사, http://www.jabo.co.kr/59th/59_hot_main_right.htm
4) zoze(2001), “여성주의의 지역주의―월장”, 언니네 웹진 특집 30호. 월장사태 간략한 일지(2001년 8월, 여성연대 한판 토론회 ‘월장의 예비역 사태를 돌아보며 사이버상의 투쟁을 생각하다’에서 발췌)
2001년
4월 25일월장 1호 ‘도마 위의 예비역’ 오픈. 당일 월장 홈게시판에 500여개 이상의 글 폭주. 사이버 성폭력, 특히 실명이 공개된 월장의 편집위원에게 협박 시작. 4월 28~30일 월장 커뮤니티(http://www.freechal.com/wallzzang)의 회원정보가 공개되고 이것이 폰섹스 게시판에 오르면서 피해상황이 커짐. 첫 번째 입장 글과 문제가 된 글 ‘예비역이 싫은 몇 가지 이유’의 필자 사과문 게시. 5월 1~7일 월장 홈의 게시판 폐쇄. 프리챌에 ‘안티월장’ 커뮤니티 개설됨. 월장 커뮤니티의 여성전용게시판 글이 타 게시판에 유출되는 등 피해상황 커지면서 ‘월장 관련 사이버성폭력 대책위’를 부산대 총여학생회와 부산성폭력상담소가 구성. 5월 28일 ‘월장 관련 사이버성폭력 대책위’ 기자회견. 6월 4일 월장 관련 사이버성폭력 토론회 개최. 6월 23일 월장 토론회 개최(안티월장의 불참으로 월장의 리나와 가루, 진중권 씨, 부산대 여학생인 이성희 씨가 패널로 참가함.)
5) 윤영민(2000), 한정자 外(2002), <여성단체의 사이버 공간을 활용한 여성운동 활성화방안 연구>,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재인용
6) 한정자 外(2002), 앞의 글
7) zoze(2001), “여성주의의 지역주의―월장”, <언니네> 웹진 특집 30호
출처: 웹진ActOn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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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 : 전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박명희 : 전 <미디액트>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