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보인권 활동가로서 참여정부를 평가하면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참여정부에게 있어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화는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고 행정의 효율성을 꾀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만 주목받았을 뿐, 그로 인해 정보인권이나 우리사회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가에 대한 토론과 성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를 둘러싼 정보인권 논쟁이 불붙더니 최근까지 정부의 정보화 정책에 대하여 비슷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전자정부가 급속도로 추진되는 와중에도 정보인권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입법 조치라 할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은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전자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여러 논의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전자매체를 이용하여 행정과 정치과정에 국민의 참여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이는 현대 대의제 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으로부터 시작된다. 국민이 대표자를 뽑아 그 대표자가 국가를 운영하도록 한 것은, 국민의 직접적이고 다양한 의사를 정치 과정에 반영하는 데 부족할뿐더러, 이 과정에서 국민의 의사가 왜곡되거나 정치 참여가 제한되면서 정치적 냉소주의와 무관심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대의제 정치가 한계에 봉착해 있다는 비판 속에 등장한 정보화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원격 민주주의론(teledemocracy)은 인터넷과 같은 정보화가 대의제를 기술적으로 보완하거나, 직접 민주 정치를 기술적으로 실현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선 대의제 정치 하에서 정보화는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가 정치적 정보와 의견에 접근하고 참여하는 행위를 촉진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정치인들이 국민 또는 지역구 주민들에게 인터넷 홈페이지나 이메일을 이용해 과거보다 손쉬우면서도 폭넓게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유권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인터넷 방송 등 과거보다 늘어난 매체 환경에서 정치 정보 역시 양적으로 풍부하고 다양하게 생산되어 유권자들이 정치인이나 정책에 대해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유권자들의 의견 또한 인터넷을 통해 정치인에게 전달된다. 여론조사나 전자투표를 통해, 혹은 직접적인 서술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피력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정보화로 직접 민주주의적인 요소가 확대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여론조사나 투표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토플러, 네이스빗 등 미래학자들은 낙관적으로 보았다. 다수의 국민이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데 발생하는 시간적, 공간적 어려움이 기술적으로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직접 민주 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가정에서 전자적으로 공동체 정책에 대해 직접 토론하고 국민발의와 국민투표를 치룰 수 있다. 의사결정권을 국회와 같은 대의 기관에 위임하지 않고 직접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정보화의 기술적 측면이 민주주의를 실현시킬 것이라고 전제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기술결정론적이라는 것이다. 정보화가 정치인과 유권자의 직접적인 접촉을 증가시키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국민의 권력이 자동적으로 증대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시도된 원격민주주의 실험들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전자 의회 같은 원격민주주의의 성패는 사용된 기술에 의해서가 아니라 담당 공무원들의 가치관과 참여관에 따라 좌우되었다. 즉 기술이 정치적 변화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와 조직상의 선택이 정보화의 정치적 영향력을 결정한다. 무엇보다 정치적 권리가 인터넷에서의 투표나 토론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투표의 대상을 누가 정하는가? 의제는 누가 정하는가? 민주주의는 국민이 실제 정치에 참여하고 권력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참된 의미가 있다.
정보화로 인해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 관료에 의한 정보 조작과 왜곡의 위험성이 늘어난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아테네와 같은 직접 민주 정치에서는 면대면으로 직접 접촉하여 토론하였다. 그러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전자적으로, 즉 비대면으로 참가하면, 이면에 있는 정치 관료들이 권력을 쥐고 정보를 조작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정보화를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좇는 정책의 집행에 이용하거나 통제의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원격으로 이루어지는 정치 과정에서 사람들의 개인정보, 의견이나 성향이 수집되면서 그에 따른 전제 정치가 등장할 위험성도 존재한다. 정부나 정치 관료에 의한 감시와 차별이 교묘하게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정보 불평등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개인간의 정보 격차는 물론 일반인과 기업 및 국가간의 정보 격차가 정치적 영향력의 불평등을 가져올 것이다. 결국 전자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행정의 비대면화, 원격화는 오히려 기득권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또다른 비판은 ‘민주주의’에 대하여 너무 협소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과 투표 중심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정권은 좁은 의미의 정치적 권리일 뿐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적 권리는 단순한 투표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넓은 의미의 정치적 권리는 참정권 외에도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나 정당을 결성하고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할 권리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결국 전자민주주의는 단순히 행정을 정보화한다는 것 뿐 아니라 국민의 정치적 활동이 얼마나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를 위해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권, 그리고 공정하게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정보 인권이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참여정부의 정보화 정책을 분야별로 비판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권리와 표현의 자유 위축
참여정부의 가장 대표적인 인터넷 정책은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이다.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2004년 도입된 선거시기 인터넷실명제(선거법 제82조의6)로 선거운동기간 중에는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실명이 확인된 사람만이 인터넷언론사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2007년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의 개정으로 주요 포털 사이트와 인터넷언론 사이트는 실명이 확인된 사람만이 이용할 수 있다.(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5)
그러나 인터넷 실명제는 모든 국민을 허위정보·비방 유포자로 전제하는 명백한 사전검열이자 익명성에 바탕한 인터넷 상의 표현의 자유와 여론형성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명제의 핵심은 국가 권력으로 하여금 당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원할 때 누군가를 손쉽게 추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인터넷 실명제인 것이다. 따라서 실명제는 인터넷 이용자가 표현 행위를 하기 전에, 감시의 시선부터 느끼게 한다. 포스팅을 할 때, 댓글을 달 때, 채팅을 할 때, 글을 퍼갈 때, ‘민증부터 까도록’ 하는 것. 그래서 비판적인 의견을 올릴 때 위축되고 망설이게 하는 것. 이것이 실명제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라면 선거시기에 국민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후보자나 정당에 대한 매서운 비판도 포함될 수 있다. 유권자가 형사처벌이 무서워서 글 올릴 때마다 전전긍긍해야 한다면, 민주주의는 요원해지고 국민은 정치인의 들러리로 전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터넷 실명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졸속 입법이다. 국민마다 매겨진 주민등록번호가 있기 때문에 손쉽게 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민등록번호와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서 주민등록번호 수집과 이용과 유통을 강권하다니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선거법의 문제점은 실명제 뿐만이 아니다.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인터넷이 조용하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자주 보이던 재기발랄한 패러디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다. 소문이 무성했던 UCC 도 만날 수 없다. 인터넷 뉴스에선 댓글 토론이 사라지고, 포털 사이트에선 아예 댓글 게시판이 통째로 사라지기도 했다. 대체 왜? 지금 선거 공간이 ‘침묵’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때문이다.
본래 공직선거법은 선거에 나서는 정치인들을 규제하기 위한 법으로 만들어졌다. 금권, 관권의 개입을 막아 공정한 선거를 치루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거일전 180일 전부터 후보자등록이 마감되기 전까지(올해는 11월 26일까지) 아무도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하였다. 문제는 인터넷에서 선거에 대해 언급하는 글이나 그림, 영상물이 모두 ‘선거운동’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정당이나 후보에 대해 지지하거나 추천하거나 반대하거나 해선 안 되고, 선거에 영향을 미쳐서도 안 된다.(선거법 제93조)
선관위와 경찰, 검찰은 인터넷상의 유권자 발언을 선거운동으로 간주하고 단속해 왔다. 10월 30일을 기준으로 선관위가 인터넷의 글 삭제를 요청한 건수는 5만5842건에 이르고, 그 중에서 대선관련 글이나 동영상이 선거법을 위반해 수사 대상에 오른 경우는 561건(618명)으로 전체 선거법 위반 사건(827건)의 68%에 해당한다. 선거 시기에 정치에 대한 글, 그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수많은 국민이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태는 90년대 중반 PC통신과 인터넷이 등장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선거시기만 되면 반복되어 왔고 갈수록 그 숫자가 늘고 있다. 과연 유권자가 문제일까, 아니면 선거법이 문제일까?
선거시기 마땅히 활발해야 할 국민의 다양한 의견 발표와 상호 토론이 크게 위축되어 있는 사태에 대하여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특히 선거시기에 실명제가 도입되면서 정치적 발언이 급격히 사라져 갔다.
참여정부에 개정된 정보통신망법 또한 실명제 외에도 수많은 독소조항을 가지고 있다. 최근 많은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은 ‘임시조치’이다.(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2, 제44조의3) 8월 14일에는 다음과 네이버 등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이랜드 파업 관련 게시물 수십 건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블로그에 올려두었던 포스팅도, 인터넷 뉴스에서 퍼온 기사도, 아고라 광장 토론글도, 이랜드 파업과 관련한 것이라면 모조리 사라졌다. (주)이랜드월드가 회사의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하자, 포털 사이트에서 이랜드 파업 관련 인터넷 게시물을 모두 ‘임시조치’한 것이다. 말이 ‘임시조치’일 뿐이지, 사실상 ‘게시물 삭제’다.
임시조치는 누구든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하면 포털 사이트가 관련 게시물을 삭제하도록 한 제도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액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원래 이 법은 인터넷에서 명예훼손의 피해를 입은 네티즌이 신속하게 자신에 관한 게시물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도록 도입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기업들이 자사에 비판적인 인터넷 글을 삭제하는데 악용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다음에 개설된 ‘삼성코레노 민주노조추진위원회’ 카페가 삼성코레노 회사의 요구에 의해 폐쇄되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도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한 게시물을 지워달라는 사측의 요구를 자주 받는다. 기업의 상품에 대해 비판한 글들도 마찬가지이다. 라면이나 분유에서 이물질이 나왔다거나, 쇼핑몰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거나, 공연이 재미없었다거나, 병원 진료에 문제가 있었다거나...라고 올리면 대번에 삭제된다. 이것이 검열이 아니면 무엇인가?
또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정보통신부 장관의 삭제명령권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본래 이 논란은 북한 게시물 허용 여부를 둘러싼 사상 논쟁으로 알려져 있지만, 논쟁의 본질은 법원에서 그 위법성이 확정되지 않은 죄를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도록 한 정보통신망법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것이다.
지난 9월 18일, 정보통신부에서 민주노총 등 13개 민중사회단체 홈페이지 게시판에 있는 북한 게시물을 삭제할 것을 명령하였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새 정보통신망법이 발효하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삭제 요구가 잇따르더니 마침내 정보통신부 장관이 친히 삭제 명령을 내리기에 이른 것이다. 이 삭제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시정요구와 정보통신부 장관의 이번 삭제 명령은 경찰청, 국가정보원과 같은 수사기관의 요청을 받아 이루어지는 사실상의 검열이자 사찰이다. 그런데 법원의 판결도 없이 무조건 삭제해야 한다. 유신시대 긴급조치의 망령이 인터넷에 되살아났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밖에도 인터넷 라디오와 방송에 대한 사전심의 등 수많은 논란이 잠재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표현의 자유와 그에 기초한 정치적 권리에 관한 한, 참여정부의 인터넷 정책은 통제 중심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감시의 확대와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위협
프라이버시권이 처한 현실 또한 심각하다. 본래 프라이버시권이란 ‘사생활의 권리’ 즉 은닉할 수 있는 권리로 알려져 있지만, 정보사회의 등장과 더불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당사자인 정보주체의 동의나 인지 없이는 그 누구도, 정부나 기업조차도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 행위에는 입법조치가 반드시 갖추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전자정부의 일환으로 추진된 교육정보화의 경우 NEIS의 추진 초부터 논란을 빚었다. 정보주체인 교사와 학부모, 학생의 동의를 받지 않았음은 물론 근거 법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범죄 예방이란 명분으로 강남구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설치하고 경찰에서 관리, 운영하고 있는 CCTV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어디에, 얼마나 설치하고 어떤 각도로 어떻게 촬영할 것인지는 물론 촬영본을 누가 관리하고 언제 폐기할 것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법률적 기준이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반복적인 입법 권고를 통해 겨우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에 CCTV에 대한 규제 내용이 담겼고 2007년 11월 18일에 이르러서야 발효되었다.
그러나 이 공공기관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 보호에 방점을 두고 있다기 보다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이용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CCTV의 경우 그 정보 수집과 관리 운영, 그리고 이용에 있어 다른나라에 비해 매우 부실한 입법조항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개인정보 보호 원칙 중 매우 중요한 것이 ‘목적 외 사용 금지’ 원칙인데, 이 법에서는 공공기관 개인정보보호심의위원회의 형식적인 심의를 거치면 정부기관 간에 국민의 개인정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공공기관개인정보보호법 제10조) 이런 배경 속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이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를 무단 조회한 것으로 드러나 최근 논란을 빚었고, 정부기관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대통령 후보의 부동산과 주민등록정보를 조회하고 유출하기도 하였다.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해 우리는 손 놓고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좀 더 최신보안기술로 무장하고 유출자를 잡아들이면 진정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개인정보가 대규모로 수집되었기 때문이다. 디지털로 수집되는 개인정보는 대규모로 집적·처리하기가 쉽고 그만큼 대규모로 유출하기도 쉽다. 아무리 엄벌에 처한다 하여도 수백만 명의 개인정보가 순식간에 유출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술적인 보안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지문 정보나 홍채 정보와 같은 생체정보를 대량으로 수집하는 것은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 개인정보 수집은 수집당하는 사람에 대해 권력을 발휘하는 행위이며, 기업과 국가가 각종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이용할 때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감시도 늘어갈 것이다. 이는 결국 지금까지 인정되어 왔던 인권 전반을 잠식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내가 보고 쓴 모든 기록이 상시 보관된다고 하면 어느 누가 민감한 의견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최근에는 영남대 병원 등 노동 현장에서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킬 의도가 다분한 CCTV를 설치하려 하여 논란을 빚고 있다.
그래서 유럽연합 가입국을 비롯한 해외 많은 국가들이 개인정보 보호 원칙을 충실히 반영한 개인정보보호법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독립적인’ 개인정보보호 감독기구의 존재이다. 어느 누구의 입김으로부터도 중립적으로,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 실태를 철저히 감독하기 위하여 마련된 제도이다. 한국에서도 독립적인 개인정보보호 감독기구를 설립하고 사회 전반에서 원칙적으로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되어 왔다. 지난 2004년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에서 함께 마련하여 발의한 개인정보보호기본법 제정안이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 어디에도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을 제정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전자주민증과 생체(전자)여권이 추진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전자신분증의 도입은 전자매체를 통한 개인정보의 수집과 이용이라는 점에서 그 유출 위험이 증가한다. 또한 이 신분증에 담길 것으로 예상되는 지문 등 생체정보는 정보주체의 몸에 부착되어 변치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 한번만 유출되어도 그 피해가 평생을 간다. 특히 국가간 교류되는 여권 정보가 유출된다면 그 피해범위는 국제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생체(전자)여권은 미국과의 무비자협정을 이유로 추진되고 있는데, 미국에 갈 의사 여부와 무관하게 전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강요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더불어 무비자협정에 따른 전자여행허가제(ETA)와 여행자 정보공유 협정으로 국민 개개인의 사법기록을 국가 간에 공유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는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생체(전자)여권을 거침없이 추진하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테러로 인한 긴장이 높아지는 데 대한 구조적인 원인 분석은 차치하더라도, 테러 방지를 명목으로 한 해외 악법의 도입(project laundering)은 그것 뿐만이 아니다.
지금 국회 본회의에는 국가정보원에서 주도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법사위 대안)이 올라와 있다. 통과되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이 법안이 계속 논란을 빚고 있는 이유는, 수사기관이 통신사업자를 통한 휴대전화와 인터넷 감청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유선, 무선, 인터넷 통신사업자는 감청설비를 마련해놓고 있다가 수사기관이 요구하면 응해야 하는 것이다.
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의 편의를 위해 감청에 필요한 설비를 상시 보유해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이 과정에서 통신사업자가 마음만 먹으면 감청할 수 있다는 말 또한 정보 인권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이미 통신사업자는 자신의 이해를 위해 다양한 인터넷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영업적인 이유로 사용하여 비난을 받아 오지 않았던가. 여기서 더 나아가 이 개정안에서는 통신사업자가 모든 이용자의 인터넷과 전화통화 자료를 보관하도록 의무화하였다. 수사기관이 요구하면 제공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때 보관된 인터넷 로그기록을 알면 모든 사람의 인터넷 이용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인터넷에 접속했으며, 집에서 접속했는지 어느 동네 PC방에서 접속했는지, 어떤 게시물을 썼는지, 읽었는지, 어떤 파일을 올렸는지 다운로드 받았는지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 수사기관과 통신사업자가 국민의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제맘대로 엿듣고 엿보아도 되는 것일까?
그밖에도 수사상 편의를 이유로 한 정보화 추진은 많은 우려를 사고 있다. 형사사법정보통합체계, 전자팔찌, 검․경이 앞다투어 추진하고 있는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는 모두 범죄 수사라는 명분으로 한 국가적 감시망이다. 그러나 아무리 수사상 편의를 위한다 하더라도 헌법과 인권의 원칙 하에서 넘어설 수 없는 선이 있다. 무엇보다 이 모든 정책들이 충분한 사회적인 토론과 검토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지적재산권 강화와 이용자의 권리 축소
참여정부 들어 지적재산권 제도만큼 큰 변화를 겪은 영역도 없을 것이다. 정보화의 다른 이름은 지식상품의 발굴과 관련 시장의 육성이다. 특히 자유무역협정 등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을 통해 지적재산권이 강화되고 있다.
지적재산권은 전통적인 소유권의 개념과 달리 권리자에 대한 보상 뿐 아니라 ‘공적 기능'을 그 중요한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권리 담론이다. 대표적인 지적재산권인 저작권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재판, 학교 교육, 시사보도, 비평·연구를 위한 인용, 비영리 공연·방송,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 도서관 등에서의 복제, 시험문제로서의 복제, 시각장애인 등을 위한 복제를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허용한다. 또한 대개의 나라에서 그 보호 기간은 저자 사후 50년으로 제한된다. 기간 만료 후 공공영역으로 편입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문화예술과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모든 사람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오늘날 저작권은 ‘공짜 심리’, ‘불법 복제’라는 담론에 포섭되어 있다. ‘합법적으로' 복제할 수 있고 공정하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fair use)는 크게 위축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균형을 갖추어야 할 정부는 오히려 ’한류 열풍‘을 들먹이며 폭력적 지적재산권 담론의 한 축을 거들고 있다.
특히 지난 6월 29일 발효된 저작권법 전부 개정안은 권리자의 배타적 권리를 더욱 강화하는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핵심 쟁점 중 하나는 ‘비친고죄’ 조항이다. 지금까지 저작권 침해는 권리자가 고소를 해야 형사처벌이 가능했다. 이에 대해 영리, 상습적인 행위는 고소 없이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바꾼 것이다.
이해가 안 간다. 설사 권리자 허락 없이 저작물을 이용하더라도 이는 ‘절도’와 다르다. 절도는 권리자로부터 물건을 빼앗는 것이지만, 저작물은 그것을 허락 없이 이용했다고 권리자에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저작물 이용 자체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때로는 권리자가 자유로운 이용을 원할 수도 있다. 영리, 상습적인 행위로 제한했다고 하지만, 일반 네티즌들이 MP3 파일을 주고받는 행위도 영리적인 행위로 여겨지고 있으며(음반 구입비용을 절약할 수 있으므로), 2번 이상 이러한 행위를 하면 상습적인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즉, 상업적 목적의, 기업적 규모의 행위만이 아니라 일반 네티즌들의 통상적인 파일 교환 행위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권리자들의 손발이 묶여 있었나? 아니다. 권리자는 이미 민사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고, 형사 고소를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의 행정력을 이용해서 굳이 형사 처벌하겠다는 것은 과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지적재산권은 열심히 창작하고 발명한 사람에게 보상을 해주는 소박한 제도가 아니다. 개인 발명가나 개인 창작자는 소수이다. 지적 상품 시장은 이미 각 기업의 이윤 추구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특히 저작물을 대량 배포하는 음반사, 영화사와 같은 저작인접권자들은 좀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지적재산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작가에게 생전에 보상해주는 것으로 모자라, 저작권 보호 기간이 작가 사후 50년으로 늘더니 이번 한미FTA 협상에서는 70년까지 늘리기로 합의했다. 작가가 죽어도 기업은 그 저작물로 계속 돈을 벌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특허의 강화는 국민 건강권과 생명권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백혈병 치료제나 HIV 치료제 등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을 둘러싼 논쟁이 커져 가고 있다. 특허의 독점 기간은 특허 출원 후 20년으로 제한되어 왔는데, FTA 협상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야금야금 기간이 늘어나고 있다. 의약품처럼 국민의 목숨이 달린 생산물에 대해 무한에 가까운 독점 이윤이 보장된다는 점은 아찔하기마저 하다.
누가 무엇을 위해 정보화를 추진하고 있는가
정보인권을 둘러싼 논란의 근원은 정보화의 추진 동력에서 찾을 수 있다.
정보화의 기원과 확산 과정을 둘러싼 분석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체로는 자본주의가 1970년대 축적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채택한 전략이라는 학설이 인정되고 있다. 포드주의의 위기와 오일쇼크, 이윤율 하락 등의 위기에 직면한 자본이 시장을 확대하는 한편 비시장 영역을 전유하기 위하여 산업을 정보화하고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하였으며 정보상품을 발굴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충분히 막대한 자본이 투여되어 왔고 그만큼 이윤을 낼 수 있는 구조로 재구조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대중이 일구어온 인터넷 점유는 자본의 재점유에 포섭되고 있다.
정부는 과두적 포털과 통신사업자를 매개로 한 인터넷 통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터넷 이용에 대한 일거수 일투족이 기록되고 추적된다는 점에서 인터넷은 매스미디어에서보다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로 신원을 확인하고, 로그기록으로 각 이용자가 읽고 쓴 인터넷 활동과 통신 기록을 추적할 수 있다. 이용자가 올린 글에 대해 국가보안법의 이름으로 사상 검증을 하고 명예훼손이라는 명분으로 기업 비판을 순화시킨다. 선거시기에도 선거에 대하여 입도 뻥긋할 수 없다. 포털에 가해지는 통제는 곧 대중에 대한 통제이다.
무엇보다 정보화의 주요한 추진 동력이 행정의 효율성과 시장의 이윤에서 나온다는 사실 자체에 대하여 성찰할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 역시 이런 우선순위 속에서 국민의 인권을 확대하고 민주주의를 증진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일반 대중이 처한 이러한 현실 속에서 행정 정보화만으로 전자 민주주의를 논할 수 있을까?
이에 최근 ‘정보인권’은 여러 가지 대응과 모색을 취해 왔다. 정보 인권은 정보화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이 계속 존중되어야 한다는 선언이자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다. 1980년대부터 국제사회는 단순한 표현의 자유를 넘어 인터넷을 비롯한 전자 매체에 자유롭고 평등하게 접근하고 다양하고 창조적인 정보를 생산하고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커뮤니케이션의 권리’에 주목해 왔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정보화를 거부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 왔다. 즉 자신의 개인정보를 정보화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지문날인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작업장에 도입되는 생산설비와 CCTV에 대하여 노동자들이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인프라적 측면만 보면 한국은 꽤 높은 정보화의 수준을 달성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인권과 민주주의 발달 수준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이다. 아니, 인권과 민주주의가 정보화로 인하여 더 큰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정보인권 활동가들의 우려이다. 이러한 간극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앞으로의 정보사회가 희망찰 것이다.
출처: 웹진ActOn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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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여경 :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