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20호 밥보다 문화
한반도 평화의 불안정성과 적극적 평화의 조건
배성인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소장)
60년 전인 1950년 6월 25일은 한반도에서 20세기 최대 규모의 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그것의 명칭이 한국전쟁이든 6.25이든 간에 관계없이 한반도에는 전쟁의 시대가 온 것이고 한반도는 전쟁의 공간이 되어 버렸다. 최근 TV에서 전쟁을 소재로 한 드라마, 다큐 등이 제작되어 방영되고 있다. 특히 한반도에서 발생한 전쟁 때문에 참전한 이른바 연합군 병사들을 자주 내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정말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했을까? 이들이 생각하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무엇이길래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할까?
지난 5월 20일 발표한 천안함 사건의 조사결과에 대해서 여론조사는 70%정도가 신뢰를 보였다. 하지만 그 후 50%이상이 불신을 나타냈다. 그것은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안보이데올로기가 매우 중요하지만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인식이 불안정하고 이중적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전체제의 불안정성과 정치적 성격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으로 인해 설립된 정전체제는 여전히 한반도를 규정하는 강력한 규율로서 남북 사이에 불안정한 평화관계를 형성 및 유지하고 있다. 비록 2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군사적 대치상황을 변화시킬 만한 군사분야의 합의사항이 없었다는 것과 2007남북정상선언에서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합의에 대해 구속력과 실천력을 담보하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전협정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억지라는 긍정적 역할을 했지만, 전쟁의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고 한반도 냉전체제를 공고화하면서 외세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부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법적으로는 남북한의 적대행위를 일시적으로 정지시켰지만, 한국전쟁의 당사국인 남북한 중국 미국 모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1991년 3월 한국군 장성이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로 임명되면서 북한과 중국이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철수하여 협정 조항이 거의 유명무실해짐에 따라 남북한은 물론, 미국, 중국 등 이해 당사국 사이에 정전협정 대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1997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4자회담을 열었던 것이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런데 2006년 부시의 종전선언으로 인해 잠시 남한사회가 혼란에 빠졌던 것이다. 그것은 부시의 발언이 새로운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세의 엄중함으로 인해 인식과 판단의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소극적 평화의 다양한 공간들
한반도에서 가장 평화로운 공간이어야 하지만 전투행위가 가장 빈번한 공간이 비무장지대와 NLL(북방한계선)이다. 한반도를 가르고 있는 비무장 지대는 소극적 평화의 결정체이다. 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지 못하고, 전투 행위만을 중단한 정전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이 그어지고, 그 양쪽으로 비무장지대가 만들어 졌다. 그러나 폭력의 부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비무장지대를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무장지대, 가장 위험한 지대로 만드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왔다.
한편 NLL은 국경선이나 영토가 아니다. 정전협정에서 합의한 육상 경계선과 달리 해상 경계선은 획정되지 않았고 직후 남측의 북상을 막기 위한 편의로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 바로 지금의 NLL이다.
일부에서는 마치 NLL 문제를 영토 문제와 동일시하여 과도한 반북 민족주의를 고양시키고 있지만 이는 향후 평화체제 논의를 위한 남북의 진지한 노력을 가로막는 잘못된 신화에 불과하다.
북한도 NLL이 임의적인 경계선으로서 영토 해상권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다만 NLL이 북한의 해양 출입을 제약하기 때문에 북한에게 상황이 불리한 것이며, 이에 NLL 문제 자체가 북한에게는 중요한 사안이 되는 것이다.
NLL 문제가 향후 남북 간 군사 회담에서 안건으로 제시될 수 있으나, UN관할 문제이므로 남북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NLL 문제를 남북 간의 갈등의 사안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화해와 협의의 사안으로 보고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평화체제로의 전환
한국전쟁 이후 '평화'를 위해 미국은 군대를 파견하고 핵무기를 배치했고, '평화'를 위해 남한은 군대를 키우고, '평화'를 위해 북은 선군정치를 내세웠다. 모두가 추구했던 평화는, 폭력의 부재에 급급한 소극적 평화였고, 결국 북의 핵무장까지 초래하고 말았다.
한반도의 '구조적 폭력'을 풀어나가는 것이 적극적 평화라면, 한반도 안보불안의 구조적 원인인 분단 상태를 해소하는 것은 적극적 평화의 내용이 될 것이다. 분단 상태 해소는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과 이후 평화체제 구축에 있다.
평화협정이란 제도적 형태는 결국 남북 군사대화에서 진행될 실질적인 평화정착 수준을 반영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반도 비핵화에 맞추어 한반도에서 재래식 군비의 통제 방안 제시와 군축 협상도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국방정책의 비전이 조정되어야 한다. 또한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정전체제를 관리할 수 있는 ‘잠정적 관리체제’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각 국가의 입장차이가 커서 쉬운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그리고 평화체제와 관련된 것은 6자회담을 통해서 어느 정도 해결가능하다. 여기에 한미동맹의 성격을 평화 지향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평화체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합의의 수준을 넘어서는 법적·제도적 구속력을 지닌 장치를 통해 그 실효성이 보장되고 발전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