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20호 후일담 1
‘남자의 자격 : 스포츠와 남성성을 말하다’
: 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 6월포럼 후일담
하장호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활동가)
월드컵이 한창이다. 말끔하게 정리된 초록색 필드를 마치 짐승마냥 질주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보는이로 하여금 일종의 쾌감을 느끼게 한다. 거친 몸싸움, 굵은 땀방울 그리고 군살 하나 없이 조각처럼 다듬어진 몸. 얼마 전 인터넷에 화재가 되었던 ‘인민복근’의 이미지는 강인한 남성상에 대한 우리 사회의 판타지를 잘 보여주었다. 스포츠와 남성성, 이만큼 멋들어진 조합이 또 있을까?
지난 6월11일에 열린 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 6월 포럼 ‘남자의 자격-스포츠와 남성성을 말하다’는 스포츠와 남성성이 어떻게 만나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가에 대한 여러 가지 화두를 던져주는 자리였다.
우선 남성성(Masculinity)이란 것의 정의를 살펴보았다. 발제에서는 남성성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법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의미에서 남성성은 ‘남성이 가져야 할 성질’이라고 말 할 수 있는데 이는 생득적인 성질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남성다움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이상’을 말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날 발제자였던 남상우 선생님은 이러한 남성성이란 사회문화적 이상이 구조화 되는데 있어 과학, 특히 생물학과 해부학으로 대표되는 성과학의 발전이 큰 기여를 했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성과학의 발전이 ‘남성과 여성의 재현에서 위계질서의 형이상학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차이’는 사회적 위계로 대체되었고 이후 민족국가의 등장 이를 떠받치는 징병제의 확대는 폭력성에 기반 한 국가와 가정의 안위를 지키는 강인한 남성상을 이상화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남성다움은 근대국가의 형성과정과 더불어 계급에 따라 분화하게 되고 계몽주의와 조우한 남성성은 금욕과 절제된 방식에 따른 규율화 된 남성성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군대는 규율화 된 신체와 충성심과 애국심으로 무장한 남성성을 사회화 하는 주요한 사회적 기제로 작용하였고 스포츠는 훈련되고 규율화 된 신체를 재생산하는 장치로서 남성성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남성성과 스포츠의 밀접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분야에서 젠더의 관점에서 남성성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한 듯하다. 남상우 선생님은 그 이유를 젠더연구에서 남성과 남성다움에 대해 분석할 수 있는 체계적인 이론틀이 갖추어지지 못했다는 점과 젠더연구에서 남성성을 여성성을 억압하는 ‘주류’로 상정하면서 ‘소수’인 여성성에 더 초점을 맞추면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이란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과 같이 젠더질서 내에서 불평등을 재생산해내는 역할을 하는 남성성을 말한다. 이 헤게모니적 남성성이란 자발적 순응과 동의하에 여성의 종속과 복종을 합리화 하는 동시에 남성 안에서도 불평등한 주변화를 야기한다. 이러한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신체적 힘과 통제력, 직업적 성취, 가족 내에서의 가부장제, 개척자의 이미지, 이성애란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
남상우 선생님은 이러한 남성성이 재생산되는 과정을 몇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먼저 가정에서 여성스럽게 하지 마라, 성공해야 한다, 남자는 싸우면서 큰다, 이성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다, 자립적이어야 한다는 식의 차별적 양육을 통해 남성성을 내면화 하고 학교에서는 체육수업에서의 차별과 부상에 대한 태도, 언어 습관 등을 통해 이 과정이 이루어지고 마지막으로 미디어에서는 스포츠를 통해 몸을 상품화, 무기화 하고 남성 선수들의 공격성과 힘을 강조하면서 남성성을 재생산하고 있다고 지적 하며 포럼을 마무리 하였다.
이날 포럼은 그동안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논의되던 남성성의 문제를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리였다. 우리는 흔히 남성성과 여성성의 문제를 바라볼 때 이를 대립되는 2개의 항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나 싶다. 그 과정에서 억업된 여성성의 해방 문제에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지만 남성성의 해체, 나아가 개별적인 주체로서의 인간을 해체하고 인간을 ‘性’이란 새로운 ‘種’으로 특정하는 담론 자체에 대한 도전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 ‘성’을 둘러싼 대립 구도가 마치 남성과 여성의 대립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포럼 이후 계속해서 머리에 떠오른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이 그것이다. 올림픽과 스포츠를 상징하는 이미지이기도 하고 강인한 남성의 육체를 상징하기도 하는 이 이미지가 계속해서 떠오른 것은 아마도 스포츠와 남성이란 두 개의 이미지가 동시에 포개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스포츠를 통해 드러나는 남성성의 역사는 훨씬 더 오래전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보여준 신이란 절대적인 존재를 향한 인간의 열망과 동경이 그리고 그것을 신체를 통해 내면화 하고자 했던 과정에서 남성성이 태어나지 않았을까? 고대 그리스 조각상들이 보여주는 인간의 신체에 대한 그들의 미학적인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를 지배하는 남성성의 역사를 발견하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포럼 이후 진행된 토론에서 참석자 중 한 명이 헤게모니적 남성성으로부터 ‘초인’의 이미지를 발견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이와 같은 시각은 남성성이 사회문화적 이상이 구조화 된 것이라는 일반적인 정의와 맞지 않지만 남성성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이 생득적인 특질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손에 만들어진 허상이란 면에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시 월드컵 얘기로 돌아가자면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축구선수의 이미지란 포럼에서 확인한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전형적인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강인한 육체와 수많은 예선을 통과해 월드컵이란 무대를 밟은 영웅의 이미지, 그리고 엄청난 연봉을 자랑하는 경제적 성공. 월드컵이야 말로 스포츠를 통해 드러나는 남성성을 확인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월드컵에 열광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남성성에 사람들이 얼마나 무방비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월드컵의 최면에서 깨어나자! 우리를 지배하는 남성성을 거부하자! 월드컵을 거부하자!
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돌 맞을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