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닥에 박혀 있는 철심 [출처: 가디언(The Guardian)] |
고급 아파트와 상가, 각종 명품 매장 입구에서 잠을 청하는 홈리스들이 증가하자, 이들을 내쫓기 위해 바닥에 철심을 박아놓은 것입니다. 영국의 글로벌 유통업체인 테스코 또한 매장 입구 통로 주변에 철심을 박아놓았습니다.
철심을 제거하다
이를 접하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소셜 캠페인 사이트인 Change.org에 청원서명을 올렸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철심을 제거하기 위한 청원서를 모집한 결과 주말동안 113,000여명이 서명 했습니다.
많은 홈리스 단체에서도 이와 관련해 노숙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건드리지 않으면서 홈리스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공공공간이 철심으로 뒤덮이는 것을 반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철심에 시멘트를 붓고 있는 활동가들. [출처: 가디언(The Guardian)] |
런던시장과 주택부 장관도 철심을 박은 행위에 대해서 어리석고 자멸적인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런던의 홈리스들에게 적절한 지원이 제공되지 않는 현실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어떤 예술가는 동전을 넣으면 튀어나온 철심이 들어가면서 제한된 시간동안 이용할 수 있는 벤치를 만들어서 현실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의도와 전혀 다르게) 이 퍼포먼스를 접하게 된 중국 정부는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산둥성의 옌타이 공원에 이러한 벤치를 설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적대적 디자인
이러한 철심을 ‘적대적 건축/디자인’이라는 현상의 일부로 보기도 합니다. 적대적 건축, 혹은 적대적 디자인은 1990년대 도시디자인과 공공공간 관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원유송유관과 같은 공공시설물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디자인이 발전한 것입니다.
벤치에 눕지 못하도록 부착된 팔걸이, 사람들이 눕지 못하도록 끝을 뾰족하게 만들거나 바닥을 울퉁불퉁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방식, 공공장소에 CCTV와 함께 설치한 스피커를 통해 클래식음악을 틀어 놓거나 귀에 거슬리는 고주파 음향을 통해 시위와 같은 집단적인 목소리를 억제하는 방식 등이 이러한 적대적 건축/디자인의 사례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디자인은 공공공간에서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행동(이른바 반사회적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중요한 건 ‘누가’ 원하지 않는가에 있습니다. 이러한 적대적 디자인은 가난한 사람들을 배제하려고 시도하며 빈곤을 향한 무관심과 적대감을 바탕으로 합니다. 또한 빈곤이 가시화되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쇼핑몰처럼 변해가는 공간들
한편으로 공공공간이 쇼핑몰처럼 변해가는 경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쇼핑몰화된 공간에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시민이 되는 것은 얼마나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지 그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상품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은 모멸감과 절망감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으로 공간 이용을 제한하게 되는 쇼핑몰과 같은 공간은 점점 더 공공공간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