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따라 해보세요. 가. 나. 다. 라’
어느덧 8월도 중순을 향해가고 있다. 입추(立秋)는 지난 지 오래지만 무더위는 끝날 줄을 모르고, 그 속에서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가을이 오는 구나를 느끼게 해준다. 2년 전 이맘때쯤 나는 홈리스야학에 교사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신청서에는 애칭을 쓰는 란이 있었는데, 마침 새벽바람에 종소리가 울려 ‘가을’이라 적었다. 그때부터 나는 홈리스야학의 한글교실 ‘가을’ 선생님이 되었다.
한글교실에는 야학의 마스코트를 담당하는 학생 분들이 많이 계셨다.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시고, 숙제도 꼬박꼬박 해 오시는 반짝이님. 한글을 배우고 싶어 서툰 글씨로 한자 한자 써내려가는 모습이 마음을 찡하게 하는 빠박이님. 그리고 어느 날 찾아와 자신의 공책을 책상 위에 남겨두고 가신 진불심님까지….
“자. 따라 해보세요. 가. 나. 다. 라”
“가을, 밥 먹었어? 밥 먹어야지. 밥 먹고 해!”
나는 홈리스야학 교사였지만, 실은 아주 작고 어린 학생이었다.
어느 날 나의 어머니와 동갑이신 진불심님이 한글교실에 오셨다. 반복되는 말들과 혼란스러운 행동들로 다른 학생들의 미움을 받기도 하였지만, 글을 써내려가는 모습은 머리를 길게 묶은 한 중학생 소녀가 몽당연필을 붙들고 마냥 수업시간이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는 것 같아 새삼 지켜보게 하였다.
하루는 주거지원과 관련된 질문을 하셨는데, 활동경력이 짧은 나로서는 적절한 답을 드릴 수 없었고, 그 후 진불심님을 뵐 수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서던 중, 종강식이 끝난 늦은 저녁에 진불심님이 찾아오셨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물으며 먹을 것들을 챙겨드렸고, 함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러나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내내 나의 마음은 불편하였다. 나는 진불심님이 저녁식사를 못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사 대접을 해드리고 싶었지만…. 당시 개인적인 고민과 바쁜 활동들로 나는 집에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고, 그 후, 나는 다시 진불심님을 뵐 수가 없었다. 왜 그때 나는 밥 한 끼 함께 하지 못하였을까. 왜 나는 그런 마음하나 담아두지 못하였을까.
야학은 다시 개강식을 맞는다. 새로운 교사와 학생들이 올 것이고, 화도 내고 웃기도 하며 한 학기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되도록 오래오래 처음 그 모습대로, 처음 그 눈빛대로, 학생들을 맞이하기를…. 혹여나 다시 진불심님이 온다면 나는 아무리 중요하고 바쁜 일이 있더라도 함께 밥을 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