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 간, 거리홈리스를 감시・제재・단속의 대상으로 삼는 새로운 조치들이 도처에서 등장하고 있음을 지난 번 기획기사(본지 45호)를 통해 소개한 바 있다. 공공장소 내 거리홈리스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성가시게 함으로써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이런 조치들은 공통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주장을 전제한다. 하나는 공공장소에서의 노숙, 음주, 소란 행위 등과 같은 기초질서 위반행위를 내버려두게 되면 살인, 폭행, 테러(!)와 같은 강력 범죄가 필연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고(‘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다른 하나는 범죄 피해를 우려하는 시민들의 수가 점증하여 더 이상 경찰력을 위시한 전통적인 치안대책으로는 효과적인 범죄 예방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두 가지 주장은 모두 그 논리적 근거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기초질서 위반행위의 방치가 강력범죄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경험적으로 충분히 증명되지 않은 것으로, 심지어 이 주장이 처음 제기된 곳인 미국에서조차 이와 관련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으로, 시민들의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한국사회에서 점증하고 있다는 것 자체는 여러 실태조사들로 미루어볼 때 어느 정도 입증된 사실이라 할 수 있지만, 여전히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가령 어떤 분석가들은 비정규직 근로자와 같이 불안정한 고용 시장에 떠밀린 사람들이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어짐으로써 발생하는 심리적 불안감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허약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이를 근거로 한 온갖 ‘거리홈리스 추방조치’들이 최근 들어 등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이 문제를 상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여러 국가기관들이 이 ‘입증되지 않은 주장들’을 실제 현실에 적용하는데 기여했던 주요 공모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언론’이라는 사실은 지적해둘 필요가 있을 듯하다. 과거 IMF 당시 거리로 나앉게 된 사람들의 ‘비참함’을 들추는데 주력했던 주류 언론들은, 오늘날 입장을 바꿔 이들의 ‘위험함’을 강조하며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요구하는 기사들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런 기사들은 하나같이 가난, 실업, 주거의 부재 등 문제의 근본 원인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온갖 신화적인(그리고 동시에 매우 의심스러운) 해외의 치안정책들에 도착적으로 매달리는데, 그 속에서 거리홈리스는 공공장소를 ‘점령’하고 있는 부도덕한 집단이자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요인으로 묘사된다. 당연하게도 현재의 국가기관들은 이러한 논조를 거리홈리스 추방조치의 근거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만병통치약과 같은 시설입소?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공공장소에서 거리홈리스를 내쫓는 조치들에 앞서 언제나 ‘시설입소’라는 대책이 제시되곤 한다는 것이다. 공원 내 홈리스의 존재를 범죄 유발요인으로 규정할 때에도, 민원처리와 시설관리의 명목으로 지하보도 및 역사 내 노숙 행위를 금지할 때에도 정부와 지자체는 언제나 ‘맞춤형 상담을 통한 시설입소’라는 대책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것이 비단 ‘강제퇴거’와 같은 특수한 상황인 한에서만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거리노숙 대응매뉴얼>에 따르면, 관련 실무자가 순찰 도중 거리홈리스를 발견했을 경우 시설입소를 안내・권유하여 당사자 동의하에 입소시설 요청서를 작성토록 규정되어 있다. 말하자면, 시설입소는 모든 거리홈리스를 대상으로 하여 상시적으로 작동하는 ‘대책 중의 대책’이요 ‘전략 중의 전략’인 셈이다.
거리홈리스가 특정 복지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반드시 시설을 경유해야만 하는 현재의 홈리스 복지체계의 특성상, 시설입소를 우선시하는 전략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시설입소가 탈노숙의 계기로 작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작년 초 서울연구원이 ‘서울시 노숙인종합지원시스템’ 상의 자료를 분석하여 내놓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상당수의 홈리스가 여러 시설을 번갈아 가며 이용하고 있으며, 생활시설 퇴소 후 다시 재입소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전체의 2/3(67.9%)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시설에서의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시설 입소를 기피하는 거리홈리스(서울시는 이들에게 ‘시설 부적응자’라는 딱지를 붙이곤 한다)가 많은 현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결과는 현행 홈리스 복지정책의 핵심 기조라 할 수 있는 ‘시설을 통한 사회복귀(자립)’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만을 가리킬 뿐이다.
물론 시설 중심의 홈리스 지원체계를 문제 삼는 것이 그리 낯선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노숙인 등 복지예산’의 면면을 살펴보면, 우리는 또 다른 쟁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서울시의 경우, 이른바 <노숙인 등 복지법>이 시행되었던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생활시설(자활・재활・요양시설) 운영비 명목으로 집행된 예산액이 전체 노숙인 복지 예산의 약 34.6%(연평균 228억원)를 차지했다. 반면, 그나마 직접적인 당사자 지원사업이라 볼 수 있는 ‘주거안정지원’과 ‘일자리지원’에 집행된 예산액은 각각 전체의 1%(평균 6억 4천만원)와 12%(평균 77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임대주택과 같이 홈리스가 비교적 장기적으로 머물 수 있는 주거지원 사업이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마저도 까다로운 자격 조건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예산 집행액의 불균형은 그 자체로 현재의 지원체계가 홈리스의 실질적인 사회복귀가 아닌 ‘시설 수용을 통한 입소자 관리’를 목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몇 가지 예상 가능한 문제들에 관하여
정부와 지자체, 경찰과 같은 국가기관에 더해 일부 언론과 전문가 집단마저 거리홈리스를 공공장소에서 떼어내기 위해 나서고 있는 오늘날, 거리홈리스에게 시설입소를 ‘권유’한다는 것은 기실 하나 남은 선택지를 그들에게 들이미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마지막으로 검토할 부분은 이러한 ‘토끼몰이’ 속에서, 시설 수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현행 홈리스 복지체계가 계속 유지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관한 것이다. 가장 먼저 제기될 수 있는 것은, 거리홈리스가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채 단지 이런저런 시설들을 옮겨 다닐 뿐인 존재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거를 박탈당할 위험에 직면한 이들이 광범위한 인구층을 형성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는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도 없다. 다음으로, 가장 우려스러운 경우는 거리홈리스가 시설입소라는, 사실상 강제에 가까운 선택지마저 거부할 때 발생한다. 이는 거리홈리스를 공공의 손이 미치지 않는 더 깊은 구렁으로 밀어 넣는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의 해결은 점점 더 불가능해질 공산이 크다.
물론, 단기간 내에 전반적인 홈리스 복지체계를 전부 손보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극심한 불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현재의 체계 속에 거리홈리스를 밀어 넣는 것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뿐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실업과 빈곤이라는 사회적 위험의 문제를 환기시킨 홈리스의 문제가 어째서 범죄나 도덕성 같은 개인 차원의 문제로 되돌아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작업이 홈리스 문제를 다시금 사회의 중심으로 옮기기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히 주장할 수 있을 듯하다. 치안적인 관점(범죄로부터의 안전)을 강조함으로써 홈리스 문제를 주변적이고 개인 차원의 문제로 국한시키려는 모든 담론들과 실천들의 기저에는 실업과 빈곤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국가’가 자리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