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과 일자리, 복지에서 소외된 노숙인
작년 11월 10일, 서울시는 ‘2017년 서울시 예산안’을 발표했다. 시에 따르면, ▲안전, ▲일자리, ▲복지를 키워드로 한 ‘불안해소 시민안심 예산’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노숙인 등 복지사업은 예산은 어떠할까. 안전과 일자리, 복지가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사업이니만큼, 서울시 기조대로라면 예산액이 대폭 증가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테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 서울시 ‘노숙인 자활지원’ 예산 증감표(천만 단위에서 반올림) |
의료지원
노숙인 의료지원 예산은 약 48억 3천만원으로 작년보다 2억 4천만원 증가되었다. 예산이 증가된 부문만 간단히 살펴보면, 노숙인 진료비(8천만원 증가), 서울역 무료진료소에 추가 채용된 전문의 2명의 인건비(3억 증가) 등이다.
현재 노숙인 의료지원 체계는 정부의 ‘노숙인 의료급여 1종’과 지자체의 ‘의료보호’로 이뤄져 있다. 노숙인 의료급여 1종 선정기준에 해당되지 않는 노숙인에게 서울시의 의료보호가 적용되는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료진료소의 의료기기 구입이나 전문의 추가 채용으로 인해 진료의 질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부분 또한 없지 않다. 무료진료소 진료의 질이 높아지는 만큼 외래(국·공립 병원 등) 진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단지 노숙인 외래 진료비를 줄이기 위한 예산 증가는 아니길 바란다.
거리노숙인 보호
거리노숙인 보호 예산은 약 70억 4천만원으로 편성되었다. 작년에 비해 3억 2천만원이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2016년 거리노숙인 보호 예산액에 희망지원센터 이전설치 명목으로 4억 6천만원이 포함되어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실제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액은 1억 3천만원 가량 증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산액 가운데 노숙인 시설(종합지원센터, 일시보호시설 등)의 종사자 인건비가 최저임금 상승에 맞춰 2억 2천만원 증액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제 사업을 위한 예산액은 삭감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예산이 증가한 것은 종사자 인건비가 올랐기 때문으로, 실제 사업비는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거리상담활동’ 예산으로 작년 대비 2억 1천만원 가량 삭감되었고, ‘위기대응콜 운영’ 역시 약 6천만원이 줄었다. 거리노숙인 지원의 핵심이라 할 거리상담활동과 위기대응콜 예산을 삭감했다는 것은 결국 거리노숙인의 안전과 복지를 등한시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닐 것이다.
주거안정지원
노숙인 주거안정지원 예산은 11억 1천만원으로 책정되었다. 작년에 비해 1억 2천만원이 증가한 것이다. 증가분은 올해 처음 시작되는 사업인 노숙인 지원주택 2개소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 8천만원과 임시주거지원 사례관리 및 생필품비 증가분이다.
임시주거지원 예산은 1천 5백만원이 증가했다. 지원인원 또한 450명(2016년)에서 600명(2017년)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지원기간이다. 지원기간이 2016년 4개월에서 3개월로 줄어든 것이다. 반면 여기에 책정된 예산액은 동일하다. 지원인원을 늘리는 대신 그에 필요한 비용은 지원기간을 줄임으로써 해결할 요량인 셈이다. 조삼모사식 숫자 놀음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표1 참고>
그간의 사업결과에서 알 수 있듯, 임시주거지원을 받은 이들의 주거유지율은 매년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다른 사업에 비해 그 성과가 확실히 드러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예산 증액 없이 지원기간을 적게 책정한 것은 분명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더욱이 일선 수행기관에서는 지원기간이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사업의 성과를 내기 위해 대상자를 선별하여 지원할 가능성이 높다. 즉,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노숙인이나 현행 복지체계가 품지 못하는 노숙인이 사업 대상에서 제외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노숙인 일자리지원
2015년 서울시는 「노숙인 일자리 종합대책」을 통해 노숙인 일자리지원을 공공일자리 위주에서 민간연계 일자리로 전환할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시는 이러한 방침이 일자리를 통해 노숙인의 실질적인 자활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서울시의 정책 기조는 일자리지원 예산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올해 일자리지원 예산은 약 80억원으로 작년에 비해 1억원 가량 감소됐다. 이는 일자리사업 참여자의 수를 줄이면서 나타난 결과다.
현재 서울시 노숙인 일자리 지원사업은 ▲일자리갖기 사업, ▲특별자활근로, ▲민간일자리 발굴 등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작년 대비 예산이 늘어난 사업은 ‘민간일자리 발굴’ 뿐이다. 나머지 두 사업의 경우 예산액과 참여자의 수가 모두 줄었다. 일자리갖기 사업의 참여자 수는 작년 400명에서 220명으로 줄었고, 특별자활근로는 600명에서 550명으로 줄어들었다. 예산 감소로 인해 모두 230명의 노숙인 일자리가 줄어든 것이다.
서울시는 현재 민간일자리를 강조하고 있지만, 노숙인이 민간일자리 지원 사업에 안정적으로 편입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노숙 상황에 처한 사람은 단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 말고도 무수한 문제들(단절의 삶, 주민등록 말소, 신용불량, 건강 악화, 알코올 중독, 정신 질환, 낮은 자존감, 삶의 의미 상실, 사회적 편견)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일자리 사업은 수많은 문제들을 고려하는 한편, 다른 복지제도와의 연계 속에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열악한 노숙인 등 복지정책 하에서 사실상 이 같은 방식의 일자리사업을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특별자활근로, 일자리갖기 사업 정도가 노숙인의 지속적인 일자리를 갖기 위한 시작점으로 기능해 왔을 뿐이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열악한 복지제도를 개선하려고 하기는커녕, 당사자의 현실에 맞지 않는 ‘민간연계 일자리’ 운운하며 그간 미흡하게나마 도움이 되던 사업조차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노숙인 일자리는 비록 임금은 적지만 자신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자리라고 당사자들은 이야기한다. 이것은 그들에게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일자리를 통해 노숙인들은 한뎃잠을 자지 않아도 되며, 생필품을 사고 매월 방세도 낼 수 있게 된다. 노숙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얻게 되는 월 58만원이라는 금액은 누가 봐도 턱없이 부족한 액수지만, 노숙인들에게는 생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금액인 것이다.
노숙인 지원예산은 노숙인에게 있어서 최소한의 생존비용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6년 8월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에 대해서 “당장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기보다는 고기를 일단 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기서 ‘고기’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의미한다.
이는 당연히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계층인 노숙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어야 한다. 노숙인 지원예산은 노숙인에 있어서 최소한의 생존비용이다. 이 비용을 삭감하는 것은 노숙인을 벼랑 끝에서 떠미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당장 굶어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기보다는 고기를 먼저 주는 서울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