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는 지난 호에 이어서 미국의 텐트촌과 관련해서 복지정책 및 홈리스 지원체계의 변화가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 시애틀의 텐트촌 [출처: URBANFUL- Rachel Kaufman] |
프레즈노와 시애틀의 텐트촌이 탄생하고 지속되는 과정에는 복지급여가 실질적으로 삭감되는 상황과 응급쉼터를 중심으로 한 홈리스 지원체계의 한계(계속되는 쉼터의 부족, 쉼터가 도심 외곽으로 밀려나면서 생겨난 접근성의 한계 등)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복지정책과 홈리스에 대한 지원 대책의 문제가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먼저 1980년대 이후 미국의 복지정책과 홈리스 지원 대책의 변화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이루어진 레이건 정권의 복지개혁은 빈곤층에 대한 사회안전망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빈곤층을 위한 연방정부의 주거 지원과 주택 공급 또한 감소하였습니다. 레이건 정권의 홈리스 지원대책은 응급쉼터의 확보를 통한 수용 위주의 대책이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1980년대 쉼터의 확대를 가져왔지만 수백만 달러의 예산을 투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홈리스 감소라는 효과를 낳지는 못했습니다. 쉼터가 증가하면서 정부보조금을 바탕으로 한 운영경비가 증가하였고, 이는 주정부와 지방정부 재정에 부담을 확대시키면서 정당성의 위기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는 재활서비스와 노동연계복지를 우선시하며 응급쉼터, 과도기적 주거(임시주거), 영구주거라는 세 단계의 연속적인 체계로 전환하는 ‘지속적인 보호’ 정책을 도입하였습니다.
텐트촌이라는 자치공간
텐트촌 거주자들은 텐트촌을 자치공간이라 설명합니다. 텐트촌은 민주적인 운영구조를 통해 스스로 규칙을 결정하고 텐트촌으로 들어오거나 나가는 과정에서 거주자들을 조절합니다. 텐트촌 거주자들은 임대료 대신에 텐트촌의 안전을 책임지고, 텐트촌을 관리하고 보수하는 일들을 돌아가며 맡게 됩니다. 텐트촌에서는 거주자들의 존엄성과 공동체성, 독립적인 역량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텐트촌의 특성들은 한편으로 쉼터 체계의 문제점과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쉼터의 문제와 텐트촌
미국의 프레즈노와 시애틀의 거대한 텐트촌은 우선 쉼터를 중심으로 한 지원체계의 문제점과 한계가 낳은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쉼터 자체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 대형 텐트촌의 출현과 유지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따뜻한 계절에는 두 도시에서 쉼터가 비어 있는 상황이 지속되기도 합니다. 텐트촌 거주자들에게 왜 텐트촌에 머무르게 되었는지를 물었을 때, 그들 대부분이 쉼터에서의 경험을 언급했습니다. 그들은 엄격한 통금시간, 가족이나 동료들과 함께 머무르기 어려운 상황, 어린애 취급하는 등의 모욕적인 대우, 쉼터를 이용하기 위해 긴 줄을 서야하는 상황, 짐이나 소지품을 보관하는 것의 한계, 저임금과 무보수 노동을 강요하는 노동연계복지 등의 문제들을 호소했습니다.
프레즈노와 시애틀의 시 관계자들과 홈리스 관련 단체들은 각 도시의 쉼터에서 수용 가능한 인원보다 적어도 2,000명 이상의 홈리스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텐트촌을 합법화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2004년 시애틀의 킹 카운티 위원회는 텐트촌이 쉼터로 대응할 수 없는 홈리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불가피하다고 선언했으며, 2013년 시의 도시계획/개발부에서는 텐트촌을 임시거주지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프레즈노에서는 2007년, 시정부가 토지와 재정을 제공하고 합법화된 텐트촌을 두 번째로 열었습니다. 시애틀과 프레즈노에서 텐트촌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수단으로 공적인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텐트촌들은 쉼터 체계로 흡수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두 도시의 합법화된 텐트촌은 주요 쉼터 제공자들의 재정적인 지원과 관리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텐트촌이 공인되면서 기존의 홈리스 지원체계로 흡수되는 과정을 잘 들여다보면, 복지가 축소・재편되는 상황에서 홈리스 문제를 즉각적으로 완화함과 동시에 저비용으로 홈리스를 관리하려는 하나의 수단으로 텐트촌이 활용되고 있다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텐트촌이 ‘적절한 주거의 보장’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간과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음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