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장 명의로 발신된 공문 |
2015년 이맘때 홈리스행동의 활동가는 한 쪽방 주민의 임대주택 신청을 돕기 위해 서울 중구 소재의 주민 센터에 들렀다. 소득·자산 기준을 충족하는 이상 쪽방, 고시원, 여인숙, 노숙인 시설 등지에 3개월 이상 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을 통해 기존주택 매입·전세임대주택에 수시 입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당 공무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신청서를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며칠 전 받은 LH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의 공문 때문이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장” 명의로 발부된 공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대상자에게 매입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있으나, 강북권 지역의 경우 동 지침에서 정한 2015년도 공급 가능물량(공급무량의 15%)이 이미 초과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2015년 6월부터 저희공사에 보내주신 주거취약대상자분들은 현재 주택 물량이 소진되어 내년 공급이 가능함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
“끝”이다. 많은 홈리스들은 공무원들의 이런 거절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2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졌을까? 영하의 기온을 오르내리는, 집 같은 집이 절실해 지는 이때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을 점검하는 것은 꽤 중요한 월동준비 일 수 있다.
근거 없는 입주수요
주먹구구식은 아닐 것이다.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주택을 공급할 때 수요량과 공급량의 산출은 아마도 가장 관건이 될 것이다. 실제, 지침은 이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이하, 지침)」은 매년 안전행정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주민등록 사실조사 시 쪽방, 고시원 등지의 거주자 현황을 조사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시·도시지사는 이를 감안하여 매년 11월 말까지 다음 해의 “주거취약계층 입주수요”를 국토부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현황 조사를 담당해야 할 행정안전부는 금시초문이라는 입장이다.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에 3개월 이상 거주하는 사람의 현황은 조사 범위에 포함되지 않으며,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을 담당하는 부처에서 조사해야 할 사항입니다.(2017 국정감사 요구자료)”
지침이 비록 국토교통부 훈령인 것은 사실이나 제정 당시 관련 부처와의 협의가 없었을 리 만무하여, 행안부의 이런 입장은 이해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각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행안부가 내놓는 거주자 현황조사 자료가 없음에도 주거취약계층 입주수요를 매해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지침이 비록 국토교통부 훈령인 것은 사실이나 제정 당시 관련 부처와의 협의가 없었을 리 만무하여, 행안부의 이런 입장은 이해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각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행안부가 내놓는 거주자 현황조사 자료가 없음에도 주거취약계층 입주수요를 매해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장관에게 제출한 전국 시·도의 “주거취약계층 입주수요”는 위의 <표1>과 같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시·도별 수요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국토부는 알 수 없다 하였고, 시·도 중 유일하게 답변한 경기도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16년도와 유사할 것으로 판단하여 ’17년 입주 수요를 추정함.(2017 국정감사 요구자료)” 하던 대로 하겠다는 식인데, 이런 수요 예측이 맞을 리 없다. 그럼에도 국토부 장관은 이 수요에 근거해 다음연도 공급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현실적인 공급계획이 세워질리 만무하다.
극히 부족한 공급물량
지침은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임대주택 공급량을 시·도별 수요량을 고려하여, 기존주택 매입임대·전세임대주택 총량의 15% 범위에서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 즉, 전국에 매해 매입·전세임대주택이 10만호 공급된다면, 15,000호는 주거취약계층의 몫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실은 어떨까? 지침대로 따를 경우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임대주택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매해 약 4,500호에서 6,700호 가량 공급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595호~1,070호에 불과하다.
아래 [그림1]을 보면 지침이 정한 의무공급량(점선)과 실 공급량(검은색 그래프)은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재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사업이 처한 현실은 입주수요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을 뿐더러, 국토부가 스스로 정한 지침마저 어기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황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화살은 어이없게도 홈리스 당사자를 향하고 있다. LH공사는 “물량이 소진되어...” 따위의 공문을 올해에만 두 번이나 발송하며 입주신청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상단 공문 참조).
LH공사는 2017년 강북권의 공급물량이 “48세대”에 불과하다며 “주택 공급 시 6개월 이상의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오니 이점 업무에 참고(2017.1.10.일자)”할 것을 동 주민 센터에 통지하였다. 새해 업무를 개시한 지 고작 열흘 지난 시점에서의 일이다. 일선 공무원들에게 “참고”는 곧 신청 중단을 의미하였다. 최근에는 아예 노골적으로 “1인 가구 대상자는 내년에 신청접수 받으시기를 요청(2017. 8. 29일자)”하기도 하였다. 쪽방, 고시원 등 입주대상의 절대 다수가 1인 가구인 상황에서 이들의 신청 접수를 받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상 제도를 멈춰 세우겠다는 것 아닌가?
복지부의 이상한 행보
홈리스에 대한 유일한 임대주택 정책의 문제가 이렇듯 깊고 오랜 것임에도 홈리스 지원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상황 파악을 못하는 모양새다. 「노숙인복지법」 제8조에 따라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및 시·도지사는 노숙인 등 정책에 관한 시행계획(이하, 시행계획)의 추진실적을 매년 복지부장관에게 제출하고, 복지부 장관은 이를 평가해야 한다. 이에, 복지부는 올 해 첫 평가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평가 결과보고서인 「2016년도 노숙인 시행계획 추진실적」에 나타난 결과는 가히 가관이었다. 복지부가 나서 국토부의 주거지원 책임을 “노숙인 시설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한 사람 중 주거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매입임대 또는 전세임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면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2017년도 시행계획은 15, 16년도보다도 못한 60호 공급으로 더욱 축소하기로 하였다. 「노숙인복지법」이 정한 “노숙인 등”의 정의에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명시되고,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 역시 쪽방, 고시원, 여인숙 등 다양한 취약거처 거주자를 지원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복지부는 “노숙인 시설” 거주자만 주거지원 대상자라는 터널시야에 갇혀 있다. 시행계획 추진실적 평가를 통해 국토부의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의 퇴행을 바로잡아야 할 복지부가 오히려 퇴행을 재촉하는 꼴이다.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제도는 오랫동안 홈리스운동의 당사자와 활동가들이 요구하고, 경험으로 입증한 덕에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홈리스에게 시설은 선택일지언정, 집은 필수라는 것을 제도화 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LH공사가 뿌려대는 공문 한 장 따위로 망가지지 않도록 감시하고, 요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