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집에 가려면 30분은 족히 걸어야 했던 시골에서 자란 저는 이사 가는 게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로 올라와 결혼을 하고, 2년 만에 보증금을 50%나 올린 집주인 때문에 집을 나와야 했을 때 이사에 대한 낭만은 사라졌습니다. 홈리스에게 있어 이사는 어떨지. 생존을 위한 살림살이는 등짐에 꾸렸으니 밥 먹으러, 부족한 잠 채우러, 종교시설의 구제금을 받으러 다니는 일상이 모두 이사는 아닐지.
▲ 고시원에서 살던 형님이 이사 간 매입임대주택 전경 [출처: 홈리스행동] |
쪽방에서 이사 온 형님은, 이사를 도운 쪽방 동료에게 “이따가 올 거야”라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농으로 건넨 말이지만 계면쩍은 마음 반, 미안한 마음 반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쪽방에 들어온 지 6년, 낡고 좁은 방, 재래식 공동변소를 떠나는 일이 후련할 법한데 그렇지만은 않았나 봅니다. 고시원에서 이사 나온 형님은 일주일 남은 고시원 방세가 마음에 걸립니다. 월세만료일까지 일주일 간 고시원에 더 묵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가 금세 그 방에 들어올 테고, 고시원 주인은 일주일만큼의 불로소득을 얻게 되는 게 불편할 뿐입니다. 고시원 업주가 모난 사람도, 사이가 나빴던 것도 아니지만 고시원은 가난한 이들을 상대로 하는 빈곤비즈니스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쪽방에서 쪽방으로, 고시원에서 고시원으로 가는 이사는 잦지만, 자장면 한 그릇 나누며 덕담할 만한 이런 이사는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사실상 멈춰버린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이 재정비되고, 아무리 가난한 사람 우려먹는 장사라지만 적정한 설비와 임대료를 지키며 쪽방과 고시원이 운영될 수 있도록 활동해야겠습니다. 떠나고 싶다면, 미안하고 석연찮은 마음 없이 홀가분하게 이사할 수 있도록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