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없는 밥집
서울역 앞에는 ‘따스한 채움터’라는 무료급식소가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급식장소’라고 하는 게 맞다. 2010년, 서울시가 서울역 인근 노상에서 무료급식을 제공하던 종교단체들의 급식 제공처를 실내로 유도하기 위해 ‘따스한 채움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역시 이곳은 배식하고 먹는 공간으로만 기능할 뿐, 재료를 보관하고 음식을 만드는 조리장은 갖추고 있지 않다. 쉽게 말해 주방 없는 밥집인 셈이다. 한편 2월 21일, 서울시는 ‘따스한 채움터’ 운영법인을 공모하였고, 3월 27일 ‘기독교 대한감리회 사회복지재단’이 선정되었다. ‘따스한 채움터’라는 밥집의 주인이 바뀐 것이다. 주인이 바뀌었으니 고객인 홈리스들의 먹거리는 좀 나아질까? 그러나 아무 상관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급식소 운영주체는 바뀌었지만 서울시 급식대책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 급식대책의 몇 가지 문제를 짚어보자.
거리급식 근절이 급식대책의 전부
우선, 서울시 급식정책의 목표 자체에 문제가 있다. 현재의 서울시 급식대책은 ‘따스한 채움터’가 전부인데, 서울시는 이를 “서울역 인근 거리급식 환경 개선을 위한 실내 급식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2008년 오세훈 시장 시절에 세웠던 ‘거리급식근절’ 방침을 재 언급하는 수준에 불과한데, 조리자의 자격, 영양을 고려한 식단, 재료의 구매와 보관 등 급식의 질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단지 거리급식을 근절하겠다는 것이 급식대책의 전부인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둘째, 서울시는 ‘노숙인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고 있다. 위 법률에 따르면, 급식시설은 '식품위생법' 제88조 1항에 따른 집단급식소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즉, 음식을 먹는 객석에서 조리장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조리 및 세척시설을 설치하고, 소독 및 세척시설을 구비해야 하는 등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따스한 채움터는 사회복지시설로 분류되지 않음(『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상 ‘노숙인 급식시설 미적용)”이라며 임의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법률 준수를 장려하고, 이행여부를 감독해야 할 서울시 스스로 법률을 위반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공동으로 식사를 배식하고, 먹는 장소가 급식시설이 아니라면 진료시설인가? 생활시설인가?
현재, ‘따스한 채움터’는 26개 종교기관에서 각자 형편 되는 대로 만들어오는 음식을 공급하고 있다. 누가,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급식 가능 인원도 350명에서 70명까지 다 다르고, 종류도 백반부터 주먹밥, 빵 등 제 각각이다. 물론 급식 전 종교의식을 행하는 기관들도 상당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숙인지원법이 제정되고, 집단급식소 설치 기준과 같은 규정이 도입된 것 아닌가? 구조의 개선 없이 주인만 바뀌는 ‘따스한 채움터’의 운영기관 변경은 홈리스들의 삶과 무관하다. 서울시는 ‘따스한 채움터’가 합법적인 급식시설의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속히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