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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뉴스 14호-아우성] 지원이 아닌 방치

[아우성-홈리스인권지킴이]는 ‘홈리스인권지킴이’활동을 통해 만난 거리 홈리스의 이야기를 나누는 꼭지입니다.

  서울역 우체국 지하도 응급대피소의 전경
지난 봄, 서울시 동절기 노숙인특별지원대책이 종료되면서 서울역 우체국 지하도 응급대피소의 문이 굳게 닫혔다. 3개월이 지난 후, 7월부터는 무더위 쉼터로 지정되어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달라진 것은 샤워실 한 칸이 생겼다는 것뿐이다. 대피소 앞에서 만난 거리홈리스에게 이용소감을 물어봤다.

“샤워실이 있어서 좋죠. 그래서 원하는 사람은 씻고, 그렇지 않아도 되고. 근데 전 씻었어요. 개운하게 씻을 수 있고. 비누냄새 나서 좋아요. 오늘로 이틀째 이용하고 있는데 뭐 괜찮아요.”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정원을 초과하던 응급대피소였지만, 지금은 정원의 절반정도도 차지 않아서 덜 복잡한 듯 보였다. 샤워실도 마련되고, 시원한 에어컨바람을 쐬며 잘 수 있는데 생각보다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었다. 다른 홈리스에게 응급대피소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봤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런데는 싫어요. 그래서 저는 임시주거지원을 신청했는데 나이가 젊어서 힘들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집이 없으니 제대로 쉬지 못해서인지 요즘은 일을 나가도 힘을 못 써요. 그래도 시설은 싫고…” 그는 거리가 아닌 그리고 시설로의 방치가 아닌 안정적인 자신의 방을 얻어 살면서 일자리를 갖고 싶다고 하였다.

응급대피소의 또 다른 문제는 여성은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울역 지하도에서 잠을 청하는 여성들을 보며 한 남성 홈리스가 말했다. “우리는 남자니까 길바닥에서 박스 깔아도 괜찮지만, 여자들은 위험하지. 하다못해 우체국 지하도(응급대피소)에 가면 남자들은 잘 수 있는데 여자들은 들어갈 수도 없잖아.” 그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여성들도 여름이 되니 더 자주 ‘씻는 곳’, ‘빨래하는 곳’, ‘쉬는 곳’을 알려달라고 한다.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서울역 응급대피소는 거리홈리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공간도 여성홈리스에겐 쉽게 열리지 않는다. 노숙이라는 ‘위기’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지하도에 컨테이너로 만든 박스 안에서, 그 어두운 공간에서 ‘보호’한다는 것은 ‘지원’이 아니라 거리 생활을 계속하도록 ‘방치’하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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