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 4. 07. 서울역 쪽방촌에서 진행된 홈리스지원법 현장 설명회 |
홈리스지원을 위한 법률 제정 움직임은 먼저 부랑인․ 노숙인복지시설 협회들로부터 가시화되었다. 이들은 홈리스 학계 전문가, 실무자 등으로 ‘홈리스복지법제정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2010년 6월 10일 발족하였다. 본 단체는 시설 중심으로 구성된 추진위에 회의적이었으나, 시설협회 중심의 안이 일괄 관철되는 것을 제어할 목적으로 추진위에 결합하게 되었다.
동시에, 홈리스운동은 홈리스 당사자들을 배제한 채 진행되는 법제정 흐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함께 이어갔다. 이에, ‘홈리스법 청원운동’을 진행하기로 하고, 본 단체를 포함한 3단체는 청원안을 작성하고 2011년 2월 9일, ‘홈리스법 제정 청원 홈리스 1,000인 서명운동’을 시작하였다. 이 운동은 홈리스 당사자들의 권리에 기반한 복지지원을 요구함은 물론, 이후 홈리스 당사자들이 정책의 일주체로서 역할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의미 있는 경험을 쌓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청원안은 1)포괄적인 주거보장의 대상으로서 홈리스 개념 도입, 2)홈리스복지의 책임 주체로 정부와 지자체를 명시, 3)홈리스의 복지수급권보장을 비롯한 인권보장 명시, 4)홈리스 예방정책 실시 및 홈리스 복지 후퇴조치 금지, 5)홈리스에 대한 주거지원 명시, 6)거리노숙 현장에 밀착한 지원체계 강화, 7)민간단체와 공공기관의 협력 의무화, 8)정기적인 실태조사와 지원계획 수립을 중심으로 세부내용을 정리하였다. 청원운동은 21개 단체의 참여로 진행되었고 거리와 시설, 쪽방지역을 중심으로 서명운동을 진행한 결과 불과 보름만에 1,531명의 홈리스 당사자를 청원인으로 조직할 수 있었다. 이들 청원인은 2월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곽정숙 前 국회의원의 소개로 입법 청원을 제출하였다. 또한 3월 3일, 국회 앞에서 ‘청원인 대회’라는 집회를 개최하고, 관련 국회의원실을 순회하며 청원안의 통과를 압박하기도 하였다.
더불어, 법률을 발의한 4명의 국회의원들에게 홈리스 당사자들에게 법안을 설명하고 의견을 청취하라고 요구하였다. 국회 안에서 진행되는 공청회는 정작 홈리스 당사자들이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청원운동은 쪽방촌에 위치한 공원에 천막을 설치하고 법률을 발의한 네 의원실을 불러 ‘홈리스법 제정 현장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홈리스법 청원운동은 청원안의 형태로 가시화 된 이후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청원 운동에 참여했던 홈리스들을 재조직하여 국회를 상대로 하는 싸움을 기획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여당 의원들이 제출한 보수적인 법안들의 영향력과 예산 논란 등을 거치며 청원안의 내용은 물론, 홈리스법추진위원회의 법안조차 대폭 축소된 채 2011년 6월 7일,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노숙인복지법)’이란 제호의 법률은 공포되었다. 그리고 1년의 준비기를 거쳐 2012년 6월 8일부터 위 법률은 시행, 올 해 6월 8일을 기점으로 1년을 맞게 되었다.
주요 항목별로 본 현실
#의료지원
노숙인복지법에 따른 의료지원은 의료급여법 체계에 종속되도록 설계돼 있다. 물론, 부양의무자 기준이나 소득인정액기준에 있어 타 의료급여수급자에 비해 접근이 용이하지만, 이 역시 향후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의 적용 대상에 포함될 경우 상당부분 접근 장벽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법률이 정한 ‘노숙인1종 의료급여’의 가장 큰 문제는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이다. 지침은 ◼노숙인 해당 기간이 지속적으로 3개월 이상 유지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6개월 이상 체납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라는 조건을 모두 충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간단한 예로 월 42만원 수입의 특별자활근로를 한 달이라도 하면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의료지원을 받으려면 자활지원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또한 타 의료급여수급자와 달리 지정병원만을 이용하기로 한 점은 진료 접근권을 심각히 제약하거나 지정병원이 없는 지역의 경우 의료급여제도가 휴지 조각이 되고 마는 문제도 심각하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2월 말 현재 노숙인1종 수급자는 294명(전국 347명)에 불과, 서울지역 의료급여 수급인원은 10%미만이라는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한편, 노숙인 1종 의료급여제도가 홈리스 의료지원의 기준이 되다보니, 지자체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의료보호 역시 후퇴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올 6월부터 변경된 의료보호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비급여 자부담원칙, 노숙이력 1개월 이상유지 등의 강화된 조건을 달고 있다. 여기에는 노숙인 1종 의료급여가 50%의 국비지원이 됨과 달리 서울시 의료보호는 100% 시비로 지원해야 함에 따른 서울시의 예산논리도 깔려있지만, 노숙인 1종 의료급여제도가 보장성은 미미함에도 지자체의 의료보호 수준을 끌어내린다는 문제가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보인다.
#주거지원
노숙인복지법에 따른 주거지원으로 대표적인 것은 ‘임시주거지원’이라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거리 홈리스들에게 한시적으로 주거를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탈 노숙할 수 있도록 사례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위 사업은 법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프로그램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지원규모의 협소함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서울지역 거리노숙인구(거리+일시보호시설)는 2012. 10월 기준1,387명이나 2012년 서울시 임시주거지원은 350명 규모로, 거리노숙인구의 25%만 포괄할 수 있는 잔여적 지원이었다. 규모의 문제는 위 사업의 지원대상이 ‘노숙위기계층’ 및 거리생활 노숙인이었음을 상기할 때 더더욱 터무니없는 수준이란 것을 알 수 있다.
▲ 임시주거지원으로 활용되는 고시원. 한 당사자분이 주거지 진입 후 기초생활보장 수급신청을 하고 있다 |
운영방식도 문제다. 위 사업은 무엇보다 사례관리가 성패를 가르는 핵심적 장치인데, 서울시의 경우 1인의 인력이 117명을 사례관리 하도록 설계되었다. 1인 인력이 117명에 대한 주거지진입부터 사례관리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거의 신기에 가깝다. 결국 충분한 사례관리 서비스를 받지 못한 당사자의 경우 다시 거리로 내몰림과 함께 차후 이와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잘못 설계된 제도의 문제가 결국 홈리스 당사자의 피해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위 법에 따른 지원은 아니나 국토부의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 역시 홈리스주거지원에 있어 큰 의미가 있다. 위 사업은 거리 ,쪽방, 고시원 등지에 거주하는 홈리스에게 매입, 전세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현재 홈리스의 지역사회 정착에 있어 상당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작년 말 기준 공급된 물량은 1,922호로 국토부 목표치의 38%에 불과하다. 공급되는 주택의 적절성 문제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입주대상자의 절대 다수가 1인 가구임에도 본 사업의 '1인가구용' 주택은 2007년 609호였던 것이 2011년 58호, 2012년 36호로 급감하고 있다. 국토부는 20011년 1인가구용 주택을 전체 공급분의 60%까지 공급한다고 했으나 오히려 현실은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국토부는 위 정책의 개선책으로 각 지자체마다 '입주자선정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으나 작년 말 현재 위원회를 구성한 지자체는 12%에 불과하다. 개선대책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당장 내년이면 도래할 퇴거 대상자 문제도 뜨거운 감자다. 국토부는 “고령자, 저소득장애인 등 자립능력이 부족한 입주자”에 대해서만 주거지원 대책을 검토ㆍ마련할 계획이라는데, 이대로라면 무더기 퇴거사태가 속출할 것이다. 동맥경화에 걸린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을 수정하고, 임대기간 경과자에 대한 후속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고용 및 급식지원
법률은 직업지도, 고용촉진, 공공일자리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중 공공일자리사업은 근로능력이 미약한 이들을 위해서도, 직업지도와 고용촉진사업이 성과를 볼 수 있도록 완충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충분한 자원의 확충이 필요하다. 그런데 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공공일자리 사업인 ‘특별자활근로’를 들여다보면, 2012년 기준 만기(15일) 참여자의 세후 실수령액은 402,260원으로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금액임을 알수 있다. 이런 수준의 급여로 “최저생계를 유지”하고 “임시 주거 비용 마련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해당 사업의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사업규모 역시 작년도 사업결과로는 서울지역 거리홈리스의 약 절반만 참여가 가능했던 규모다. 따라서 시행기관은 대상 당 최장 6개월만 참여 가능하도록 운영하고 있으며, 일자리를 통한 자활보다는 응급구호적 성격으로 인해 동절기시 인원을 확대하고, 그 외에는 절반 가량 감축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연속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문제를 갖고 있다. 임시주거지원과 마찬가지로 고용지원 역시 프로그램식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법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잔여적 지원에만 머물고 있는 현실이다.
급식지원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법률은 급식지원을 명시하고, 지침은 ‘급식시설’에 대해 식품위생법상 집단급식소여야 하며, 정부 지자체나 신고증을 수리한 민간에서 운영 가능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현재 이와 같은 기준으로 운영되는 급식시설은 없다. 이유는 정부 당국 스스로가 급식지원을 비용 투입에 따른 효과성을 예측할 수 없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지원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식은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거리홈리스들에 있어 가장 민감하고 일상적인 서비스다. 또한 거리급식의 문제로 누차 지적되었듯, 자존감과 같은 심리적 측면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따라서 정책적 방기를 중단하고 홈리스 현황에 바탕을 둔 급식소의 총량을 견적하고, 급식지원의 수준과 급식시설의 운영방식에 대한 전체적인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이상과 같이 법률 시행 1년이 지났지만 홈리스 복지의 현실은 개선되었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일부 영역에서는 후퇴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노숙인복지법은 이런 지원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지 않고 단지 “~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일관하였다. 그렇기에 홈리스 당사자의 청구권은 부인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향후 임의조항을 의무규정으로 전환하고, 현 법률이 누락한 권리보장, 이의신청과 같은 내용을 보완하도록 하는 법 개정 운동이 벌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활동은 현 제도에 대한 지속적인 대응행동에 기초하고, 문제를 겪고 있는 홈리스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기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익집단이 주축이 돼 만든 현재법과 달라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