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매주 세미나와 현장활동을 하는 인권지킴이는 저녁 상담활동 전에 폐지수집하는 홈리스와 함께 폐지수집 일을 체험하고 있는 사진. 폐지는 누군가에겐 쓰레기지만 누군가에겐 돈이자 생계수단이다. |
노동시장에서도 밀려나고, 복지지원도 받지 못하게 된 홈리스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푼 되지 않지만 거리에 버려진 폐지를 줍는 일이다. 그 돈을 모아서 밥도 사먹고, 쪽방에 들어가서 살기도 한다. 많은 돈을 벌수는 없지만 폐지 수집은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생계수단이다. 이처럼 홈리스에게 폐지 줍는 일은 분명 ‘일’이고, 다른 ‘이’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주며, ‘삶’을 이어가는 끈이다. 입에 겨우 풀칠하는 수준이라도 그렇게라도 안하면 살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홈리스뿐만 아니라 폐지나 고물 수집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데, 그런 일조차 더 이상 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고물상은 시외로 이전해야 한다?
2010년 7월 제정한 ‘폐기물 관리법’ 개정안이 2년간의 유예기간이 끝나고 지난 7월부터 시행되었다. 이 ‘폐기물 관리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은 도심지에서 고물상 사업을 제한하는 내용이다. 기존 주택·상업 용지에 있는 고물상은 시외로 이전해야 한다. 많은 고물상이 도심의 주택·상업 지역에 있는데 비용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시외로 이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많은 고물상들이 불법업체로 단속돼 처벌을 받거나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들이 들려오고 있다. 또한 폐지를 모아 고물상에 가져다주던 사람들은 고물상이 시외로 이전할 경우 고물상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서울 도심에는 약 2,000여개의 고물상(재활용수집소)이 있다. 이러한 고물상이 문을 닫게 된다면 고물상을 매개로 폐지를 수집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꾸려가던 수단도 사라지게 된다. 고물을 줍는 일이 제일 쉽고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고물상이 없어지면 생활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현재 국회에는 신기남 민주통합당 의원이 발의한 폐기물 관리법 유예기간 4년 연장법안이 계류돼 있지만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관련 당사자들은 도심지에서 벗어날 경우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에서 고물상을 운영할 수 없게 된다며 유예기간 연장과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의 폐기물 수집 금지 조례
가까운 일본에서도 유사한 맥락에서 폐기물 수집을 금지하는 조례가 통과된 경우가 있었다. 2011년 9월에 교토시에서 통과된 한 조례는 교토시 시장이 지정한 사람이 아니면 폐기물을 무단으로 수집하거나 운반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일본에서도 폐기물 수집을 통해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작은 트럭을 몰면서 수집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홈리스나 여인숙에서 사는 사람들, 혹은 국가에서 생활보호를 받지만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러한 폐품 수집마저 ‘행정’이라는 이름으로 묵살해 버리려는 교토시에 대항하여 빈곤단체 등은 조례 개정에 반대하고, 폐기물 수집에 대한 자유를 허용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수집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실태 파악을 통해 생계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동안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는 없었는지를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욱 먹고 살기 힘들어진 세상
무료로 혹은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생활의 공간이 도심지에서 사라지는 것과 더불어 생존을 위한 수단과 그 매개가 되는 다양한 공간들도 사라져가고 있다.
폐기물 관리법을 둘러싼 논란도 이러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먹고 살기 힘들어진 세상에서 오늘도 폐지를 모으기 위해 손수레를 끌고 새벽 거리를, 한낮의 분주한 인파 속을 배회한다. 폐기물 관리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폐기물 수집을 통해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존의 조건을 마련하는데 주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