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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뉴스 16호-특집] 실익 없는 물량 빼기식 노숙인 등 지원조례

[특집]


2011년 6월, ‘노숙인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 공포된 후 이를 근거로 한 각 지자체들의 조례 제정이 속도를 내고 있다. 물론 법률 제정 이전 제주도를 시작으로 대구, 태백, 부산, 대전 동구는 “노숙인 보호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위 조례들은 모(母)법이 없는 상태에서 제정되었다는 점이 한계였던 바, 대다수가 기존의 지원 사업을 열거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편, 법률 제정 후 법률에 근거하여 경기도, 광주시, 서울시가 각기 순서대로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였다. 또한 인천시의 조례는 9월 12일 본회의를 통과, 공포를 기다리고 있으며, 대전시 조례 역시 9월 30일 소관 상임위를 통과, 제정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처럼 한 곳의 기초지자체를 포함하여 총 10곳의 지자체에서 노숙인등의 복지지원을 위한 조례가 제정되었거나 제정이 확정된 상태다(지자체별 조례비교는 「homelessaction.or.kr → 자료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향후 홈리스 지원에 있어 각 지자체의 적극성과 안정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각 조례(안)들의 면면을 볼 때 전망은 밝지 않다. 현재 제정 및 제정 중인 조례(안)의 제정 과정과 주요 내용을 점검해 보자.

조례가 제정되는 방식
균형 잡힌, 실효성 있는 조례가 제정되기 위해서는 해당 조례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다양한 주체들의 민주적인 의견 수렴이 필수적이다. 지자체의 법률이라 할 수 있는 조례는 법률과 마찬가지로 지방의회에서 제정되는데, 각 지자체는 “지방의회 회의규칙”을 통해 조례의 제정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회의규칙’은 시민들이 조례 제정에 관여할 수 있는 통로로 ‘입법예고’와 ‘공청회’라는 장치를 두고 있다. 입법예고문을 보고 의견을 제출하거나, 공청회에 참석하여 현장발언을 하라는 취지다. 그러나 10곳의 지자체 중 노숙인 지원조례(안) 제정 시 공청회를 개최한 곳은 서울시가 유일하다. 나머지 9개의 조례는 지방의회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전혀 공론화되지 못한 채 제정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시의회 회의규칙’을 제외한 타 지방의회 회의규칙은 공청회를 “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각 지방의회들은 ‘회의규칙’이 강제하지 않는 이상 공청회라는 번거로운 행사를 치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입법예고 또한 문제다. 대다수 지자체는 입법예고 기간을 “5일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나마 예고기간이 가장 긴 인천시 역시 “10일 이상”에 불과한데, 이와 같은 기간 내 내용을 접하고 의견을 낸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물론 기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예고기간을 가장 길게(20일) 뒀던 인천시의 노숙인 지원 조례안에 대해 제출된 의견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충분한 의견수렴을 위해서는 기간과 동시에 ‘방식’이 중요한데, 지방의회들은 대다수 “공보나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게재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통상, 지자체 관보의 가독율이나 홈페이지 접촉 빈도를 고려할 때 이와 같은 입법예고는 소극적이란 평가를 넘어 행정 절차에 불과할 뿐이다. 특히 정보 접근 장벽이 높은 홈리스와 같은 빈곤계층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실효성 있는 노숙인 지원 조례의 제정과 지자체의 민주적 운영을 위해서는 지방의회 회의규칙의 개정이 필요하다. 최소한 조례 제·개정과 같은 주요 안건에 대한 공청회를 의무로 하고, 입법예고의 기간을 확대함과 함께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

부실 경쟁으로 탄생한 조례들
각 조례(안)들의 공통점은 법률이 정한 내용을 대부분 재 언급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조례의 분량을 고려해서인지 편의대로 내용을 축소해서 수록한 것이 대다수다. 법률에 근거한 내용을 구체화하여 시책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조례임에도 현재의 조례(안)에서는 그런 조항을 찾아볼 수 없다. 너나없이 제정하는 흐름을 타고 제정했을 뿐 별도의 고민이 없었다는 얘기다. 기 제정된 타 지자체의 조례를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베낀 조항도 부지기수다. 현 조례(안)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짚어보자.

우선, 노숙인 등에 대한 인권보장 조항이 부실하다는 것이다. 10개의 조례(안) 중 ‘인권’을 언급한 조례는 서울, 인천, 광주의 세 곳에 불과하다. 노숙인 지원법에 인권의 ‘보장’을 명시하고 있지만 7개의 조례는 아예 항목에서도 제외한 것이다. 인권 항목을 포함한 3개의 조례도 빈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이 정한 노숙인 등에 대한 인권 보장 조치는 “비밀누설 금지, 직원 인권교육”이 전부다. 인권을 ‘보장’ 하는 게 아니라 공급자가 노숙인 등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을 의무를 언급한 게 고작인 것이다.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이것을 인권의 ‘보장’이라 할 수는 없다.

둘째, 법률 제정 전에 제정된 조례들이 현재까지 개정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 대구 등 4개의 지자체 노숙인 지원조례는 전혀 개정되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보니 위 조례들은 노숙인 등의 발생 예방을 위한 계획 등 법률이 정한 내용의 상당수를 누락하고 있다. 특히 제주도의 경우 조례의 명칭 자체에 “부랑인”이란 이미 폐기된, 시대착오적인 용어가 사용 되는 등 많은 문제점들을 보이고 있다.

끝으로, 조례가 규정한 내용들이 실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다수의 조례들이 매년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노숙인 등에 대한 복지지원 “시행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있으나 실행이 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또한 서울시는 노숙인 등의 복지지원 개선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 또한 집행되지 않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위원회는 법률이 정한 “민간단체와의 협력”을 가시화할 주요 수단이지만 조례로 규정된 곳은 그나마 서울, 대전이 전부다.

이처럼 노숙인 등의 지원을 위한 조례는 속속 제정되고 있지만 그 내용을 볼 때 조례를 통해 기존 정책이 개선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법률이 정한 지원을 제한하는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지 염려된다.

홈리스 상태의 예방과 해결을 위한 숙고 없는 지자체들의 조례 제정 경쟁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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