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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뉴스 16호-연속기고] 내일도 숨 쉴수 있을까?

[연속기고]는 글쓰기 모임“늦봄에”에 참여한 당사자들의 노숙 경험을 글로 적은 꼭지입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책을 듣는다는 건
홈리스행동 글쓰기 모임에서는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이다”라는 책을 한 페이지씩 돌아가며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각자에게 할당된 한 페이지를 다 읽고 나서도 다음 사람이 맡은 페이지까지 읽어버리는 분도 있었다. 혼자서 책을 읽는다는 것과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 책을 듣는다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이 시간동안은 온전히 책을 읽어주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집중하게 될 만큼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첫날 밤
이탈리아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던 프리모 레비는 반파시즘 저항운동에 가담하여 싸우다가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 뒤 1945년 1월 소련군에 의해서 수용소가 해방되자 같은 해에 집으로 돌아와 몇 개월 동안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레비의 책 앞부분에는 ‘입문’이란 제목의 글이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들어온 첫날 밤. 레비는 다음 날 아침을 기다리며 생각한다.

“나는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배가 고픈데 내일 아침 몇 시에 죽을 먹게 될까? 그걸 숟가락 없이 먹을 수 있을까? 숟가락은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나를 어디로 보내 일을 시킬까?”

그 글을 함께 읽으면서 레비가 아우슈비츠의 차디찬 바닥에 누워서 잠들지 않는 밤을 보내면서 다음 날 새벽을 기다리며 떠올렸던 생각들처럼, 처음 거리로 나온 당사자분들이 보내야 했던 ‘첫날 밤’은 어떤 기억들로 남아 있을까 궁금하다고 얘기했던 분도 있었다. 지금 거리에서 생활하는 분들에겐 매일이 ‘첫날 밤’이겠지만.

죽어가고 또 그만큼 금방 채워 넣어진다
레비가 머물렀던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하루하루 좀비처럼 변해갔다. 기계 부품처럼 죽어가고 또 그만큼 금방 채워 넣어졌다. 그곳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에 의해 제거되었다. 아우슈비츠라는 수용소와 거리의 삶은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말을 해도 그들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설사 들어준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이름마저 빼앗아갈 것이다. 우리가 만일 그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면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할 터였다. 그 이름 뒤에 우리의 무엇인가가, 우리였던 존재의 무엇인가가 남아 있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했다.”

레비가 죽어가던 사람들 틈에서 아무도 듣지 않으며,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수용소의 삶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거리에서 죽어간 분들의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고 얘기했던 분도 있었다. ‘우리 내부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낼 수 있을까. ‘우리의 무엇인가가, 우리였던 존재의 무엇인가가 남아 있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낼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고 하신 분도 있었다.

월세 없는 방

박왕우

지나온 인생길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든다.
손에 박스 하나, 신문지 하나
단벌 옷 버릴 세라
정성껏 바닥에 깐다.
냉기가 전신을 파고들어
오징어도 아니건만
온 몸이 온 몸이 오그라든다.
조명등 하나, 나 하나,
조명등 둘, 나 둘
눈을 감는다.
내일도 숨 쉴 수 있을까?


오징어처럼 온 몸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지하철 보도 블럭의 냉기. 밤새 켜져 있는 조명등을 세며 눈을 감는 밤이 생생하게 눈앞에 다가오던 글. 레비의 책을 읽으면서 예전 서울역 사진전에서 보았던 “월세 없는 방”이란 박왕우님의 사진과 글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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