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에게나 먹는 문제는 중요하다. 요즘 TV나 인터넷을 보면 맛집과 웰빙이라는 주제가 끊이지 않고 방영되거나 소개되고 있다. 이제 먹거리는 단지 끼니를 때우는 개념을 넘어 몸에 좋고 맛있는 것을 먹고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찾아가서 먹는 개념으로 정착되고 있다. 이런 사회적 풍토 속에서 아직 먹거리에 대한 인식이 인심을 베풀거나 목적 달성의 도구로 이용되거나 밥이라도 주는 것에 감사하라는 말로 치부되는 식사가 있다. 바로 노숙인에 대한 무료급식이 그러하다. 식사 전의 종교행사는 식사의례로 자리 잡았고 이용자들 또한 거기에 거리낌 없이 응하는 모습은 밥을 미끼로 종교를 전파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식사의 중요성을 따지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노숙인에게 한 끼의 밥은 여느 사람들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예전부터 “밥심으로 산다”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만큼 밥에 대한 중요성을 반증할 만한 말이 있을까? 밥심으로 하루를 버티고 내일을 기약하는 사람들이 서울역에서만 300여명에 달한다. 밥을 제대로 먹어야 팔다리에 힘도 들어가고 일도 할 수 있고 내일도 꿈꿀 수 있다.
서울역 무료급식의 대표적인 곳이 ‘따스한 채움터’다. 따스한 채움터는 2010년에 개소하여 서울시노숙인시설협회에서 3년간 운영하였으며, 현재는 대한기독교감리회 사회복지재단이 수탁하여 2012년 2월부터 3년간 운영하고 있다. 따스한 채움터의 운영방식은 급식제공이 첫 번째로 중요한 사업이며, 여름과 동절기에 폭염과 한파 대피소로 각각 3개월씩 6개월을 사용하고, 독서실, 세탁과 목욕실 등을 현재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3층은 다목적 공간으로서 팩스, 컴퓨터 등을 상시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며 자아존중감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제공할 예정에 있다고 한다.
주방 없는 밥집의 예고된 문제
지난 10월 21일 40대 중반의 남성 김OO님이 홈리스행동을 찾아와 따스한 채움터 급식에 대한 하소연을 했다. 이야기의 요점은 급식이 급식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요즘 아웃리치를 나가면 빈번히 듣는 이야기 중 하나다. 아무런 예고나 사전 고지 없이 2시간 가까이를 줄 서서 기다렸는데 난데없이 급식이 취소됐다며 돌려보내고 거기에 항의했더니 돌아온 건 욕설뿐이었다.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데도 없고 해서 찾아왔다는 이야기다. 아침과 점심을 내리 굶어야 하는 이용자들에게 아무런 대책 없이 돌려보내야 하는 주방 없는 밥집, 만약 조리시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미 예고된 문제가 아닐까.
또 하나의 주방 없는 밥집?
수원역에 경기도청의 주관으로 노숙인 실내급식소가 설치된다. 노숙인 일시보호시설인 ‘꿈터’ 바로 옆 공간인 경기일자리센터 수원역 상담실이 이전하면서 그 공간을 사용하게 될 예정이다. 동시 수용인원은 30~40명 규모이고 2014년 초 문을 열 예정이다. 수원역 주변에서는 3개 종교단체가 매주 월∼일요일 오전과 오후 노숙인 거리급식을 하고 있다. 급식을 받는 노숙인 수만 해도 경기도 전체 노숙인 364명의 70%인 255명에 달한다. 경기도 실내급식소 또한 조리장 설치는 힘들 것 같다. 해당 공간에 가스정화시설이 있어서 화기 취급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단, 데우는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또 하나의 주방 없는 밥집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선 길거리에 앉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벽을 보며 먹거나 식탁이 없어 서서 먹거나 쭈그려 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급식소 설치는 환영할 만 하지만 따스한 채움터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실내급식소 설치에 대한 제언
형보다 나은 아우 없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풀이해보면 앞서 만들어진 서울시 실내급식소 ‘따스한 채움터’와 다르지 않은, 단지 배식하고 먹는 공간으로만 기능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형보다 나은 아우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따스한 채움터와 비교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1. 영양사 근무가 절실히 필요하다.
따스한 채움터는 하루 1,000명이 넘는 이용자들에게 음식에 대한 점검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제공되고 있다. 현재 노숙인 쉼터의 경우 조리원이 파견되어 있어서 급식표에 따라 음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50명이 넘는 쉼터에는 영양사가 상주하여 음식에 대한 점검을 매일 하고 있다. 따스한 채움터의 급식에 대한 점검은 눈으로 혹은 감으로 하는, 즉 누군가 배가 아프거나 할 경우 그 음식만 점검을 하는 형식이어서 예방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2. 정기적 점검이 필요하다.
지난 7월 초 보건복지부의 공문에 의하면 서울시와 각 구청의 모든 무료 급식에 대한 조리장(급식단체의 조리공간)과 급식장소(채움터)의 점검이 이루어졌다. 이 점검이 정례적으로 실시되어야 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따스한 채움터는 종교기관에서 각자 형편 되는 대로 만들어오는 음식을 공급하고 있다. 누가,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급식단체의 조리장과 급식소의 정기적 점검이 필요하다.
3. 급식시간의 종교활동은 금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종교행사 후 급식을 하는 것은 금지해야 한다. 꼭 선교활동이 필요하다면 급식시간을 피해 다른 장소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식사시간에 잠깐 기도드리는 것도 아니고 밥 먹기 전 설교와 찬송이 이어지면 배가 고픈 이용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종교행사에 참여해야 한다. 살기 위한 종교행사가 되어야 하지 먹기 위한 종교행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4. 줄 세우는 것 금지!
경기도 실내급식소의 동시 수용 인원이 30~40명 규모 인데 한 번에 250명의 이용자가 몰린다면 긴 줄이 생길 것은 당연하다. 어떻게 긴 줄을 짧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따스한 채움터의 경우에는 이 문제로 민원이 심하다. 그리고 장마철 혹은 비오는 날에 긴 줄은 인권적으로도 용납이 안 된다.
5. 조리시설을 완비하라!
경기도 실내급식소는 안전상의 이유로 조리시설을 설치하기 힘든 것으로 안다. 하지만 조리시설이 없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위생, 지켜지지 않는 급식표 등)은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예측 가능한 문제에 있어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6. 급식시간 이후에는 공간을 개방하라!
급식소엔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 갈 것이다. 급식시간 이외엔 공간의 개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으로 밥을 드시러 오시는 분, 모든 걸 잃었다는 상실감과 두려움이 있는 분, 편하게 앉아 뉴스보고 싶은 분, 누구 눈치 안보고 자연스럽게 지친 몸 잠시 좀 쉬었다 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부디 형보다 나은 아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