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에서 세상읽기]는 점점 고통스러워져 가는 ‘세상’을 고발하고, 새롭게 만들어갈 ‘세상’을 꿈꾸는 꼭지입니다.
무연고 시신 38구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1987년부터 1988년까지 2년간 형제복지원 출신 무연고 시신 38구가 부산시립공원묘지에 가매장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27년만에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보상 근거를 담은 특별법이 발의됐습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록은 형제복지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1987년 신민당 진상조사에서 밝혀진 수용 인원과 513명의 사망 인원(1975~1987년) 숫자가 전부였는데, 아마도 밝혀지지 않은 죽음은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밝혀지지 않은 죽음을 가능하게 한 것은 1975년 부랑인의 단속과 사후조치를 담은 내무부(안행부 전신) 훈령 410호였습니다.
거리에서 사라진 부랑자들
최근에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화제가 되면서 90년대를 추억으로 떠올리는 일들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1990년대 신문기사를 찾다가 ‘부랑자 거리서 사라진다’는 제목의 기사를 발견했습니다. 1990년, 봄철을 맞아 부랑인들이 배회, 노숙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남에 따라 4~5월 두달 동안 경찰과 합동으로 사회복지과 공무원들이 특별단속을 실시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24시간 단속활동을 벌여 연고가 없는 경우에는 은평구 구산동에 있는 시립갱생원, 동작구 대방동 부녀보호소, 경기도 용인군 영보자애원 등 수용시설에 수용한다고 했습니다. 그해 겨울에도 부랑인 일제단속으로 1천75명을 수용했다는 기사가 남아있습니다. 서울시에서는 그해 말, 거리에서 노숙하다 숨진 채 발견된 사람이 102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들 중 25명은 4살 미만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해 한편에서는 전세값 폭등으로 두 달 사이에 서울, 대구, 부산, 성남에서 15명이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의 죽음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는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엔 우리 둘이서”
가난한 부부가 아이들을 방에 가둬두고 일을 나간 뒤 아이들이 불장난을 하다 목숨을 잃은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정태춘은 <우리들의 죽음〉이라는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이 노래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동안 아이들의 죽음은 계속되었습니다. IMF 위기 이듬해인 1998년에는 여중생 4명이 동반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유서에는 알코올 중독, 병원 입원, 밀린 공납금 등의 낱말이 어지럽게 적혀 있었습니다.
2005년에는 경기도 의왕시에서 홀로 지내다 개에게 물려 숨진 아홉살 아이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신용카드 남발로 무수한 신용불량자가 쏟아지던 2003년, 인천에서는 세 자녀와 엄마가 동반 자살했습니다. 하루하루 끼니를 잇기 위해 친정집에서 쌀을 구해야 하는 지독한 생활고에 지친 34살의 엄마는 살려달라고 발버둥치는 두 딸, 아들과 함께 자살을 택했습니다. 3장의 카드로 돌려막기하며 생활해왔던 엄마는 결국 카드대금이 연체되고,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누구도 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6명의 죽음
동자동에서는 올해 들어서 6명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밝혀지지 않은 죽음, 노래로 남게 된 죽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 뒤에 또다시 6명의 죽음이 숫자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