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걸기]는 홈리스행동과 뜻을 함께하는 연대 단위의 소식과 연대 활동을 소개하는 꼭지입니다.
부양의무제란 무엇일까? 쉽게 말하자면 가족 중 빈곤한 사람이 있다면 생계보장의 책임을 직계가족(부모와 자식)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부양의무제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기초생활보장법 개정 연대집회나 기자회견에 참여하면서 부양의무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일 것이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부양의무제에 대해 알게 되면서 ‘나도 부양의무제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겠다.’라는 사실에 마음이 항상 불안하다. 나는 성인이 된 딸이 한 명 있다. 딸이 어렸을 때 가정불화로 이혼하면서 이십년 가까이 떨어져 지냈고, 아버지의 빈자리 때문에 힘들게 자라온 딸이다. 딸이 자라는 동안 나는 옆에 없었다. 그런 딸이 성인이 돼서 돈을 번다는 이유로 어떻게 내가 부양을 받을 수 있겠냐 말이다. 그럴 마음도 없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법 제도는 자식이 아버지를 부양해야 한다고 억지를 쓰고 있다. 다행히(?) 현재는 딸과의 오랜 단절을 이유로 수급을 받고 있지만 언제 어느 날 수급이 잘릴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과 초조함은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다. 그렇다. 우리나라는 천애 고아가 아니고서는 수급을 받기도 힘들거니와 받더라도 불안감에 떨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오히려 가난한 가족은 내 삶의 족쇄일 뿐이다.
2012년 8월 21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동아면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농성장을 차리기 위해 11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하면서 결국 광화문역 안에서 농성장을 차렸다. 농성장 앞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서명도 받고 엽서도 쓰면서 그렇게 2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앞으로도 광화문 농성장을 찾을 것이다. 나와 내 딸이 제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만나는 날이 올 때까지 부양의무제가 폐지될 때까지 열심히 싸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농성장 2년 문화제에 참여하면서 정말 많은 이들이 이 제도의 폐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정말 슬프고도 기대되는 문화제였다. 지난 2년을 버텨온 것에 대한 박수와 앞으로 남은 기간의 고단함이 느껴지지만 끝장날 때 까지 더욱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