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찬 기운이 도는 10월 24일 늦은 밤. 홈리스야학 교사 7명과 노숙, 다방, 폐지수집 도우미 3명이 ‘야학교사 현장 체험’을 위해 모였다. ‘야학교사 현장 체험’은 일주일에 한 번 수업으로 만나는 학생들의 살아온 발자취를 하나하나 들여다 볼 수는 없는 교사들인지라 그들이 겪었거나 아니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삶의 한 부분을 체험이라는 틀을 빌려 경험하기 위한 자리이다. 하루뿐이었지만 각각의 체험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모아 보았다.
노숙 체험 후기
- 걸림돌 / 한글교실
서울역 롯데 마트에서 박스를 챙겼다. 1호선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박스를 들고 서 있는 한음님과 나를 쳐다본다. 시청역에서 내려 화장실부터 들린다. 광화문 지하도에서 주변 화장실은 꽤 먼 거리다. 프레스센터 앞, 잠시 앉아서 한음님과 담배를 피웠다. 어린 시절과 고향 이야기, 최근 지내시는 이야기들을 묻고 또 들었다. 한쪽에서는 C&M 케이블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텐트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광화문 지하도.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고, 사방에서 들이치는 바람이 쌀쌀하다. 박스를 깔고 그 위에 돗자리를 깔고, 얇은 이불을 덮었다. 한음님은 금세 코를 고신다.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뒤척이다, 갑자기 요동치는 배를 틀어쥐고 화장실을 찾아서 시청 거리를 내달렸다. 시청역 화장실은 셔터가 굳게 내려있었다. 서울시청 지하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화장실을 나와 보니 광장 앞에 세월호 참사로 숨진 아이들의 영정이 휑하게 놓여 있었다. 광화문 지하도로 돌아와 다시 바닥에 누웠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새벽 6시. 아직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하룻밤의 체험은 끝이 났다.
다방 체험 후기
- 망치 / 스마트폰 촬영교실
내가 간 곳은 ‘×× 휴게실 다방’이라는 곳이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실내는 어둑어둑했고 사람들은 곳곳에서 자고 있었다. 하룻밤을 묵는 가격은 4,000원이었고 몸을 누일 수 있는 긴 소파, 얇은 담요, 음료 한 잔을 받았다. 큰 TV가 있어 잠이 오지 않으면 영화를 볼 수도 있었다.
결코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불편하진 않았다. 하지만 다방에서 보낸 하룻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발 뻗고 잘 집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나는 하루하루 잘 곳을 찾아다녀야 한다. 다방에서 본 사람들처럼. 한데 노숙을 하는 장소들에도 ‘급’이 있다. 물론 급을 결정하는 건 지불능력. 7,000원이면 찜질방, 5,000원이면 만화방, 4,000원이면 다방 신세다. 그마저도 없으면 거리에서 자야 한다. 단돈 몇 천원의 차이로 뜨끈한 욕탕, 딱딱한 소파, 칼바람 부는 거리가 결정된다. 현실은 블랙코미디보다 더 무섭고 우습다.
폐지수집 체험 후기
- 가을 / 권리교실
날이 차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한파가 불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목을 칭칭 싸매며 겨울신발을 허겁지겁 찾는다. 그러나 이내 몸은 으슬으슬 춥고 목은 칼칼하다.
아직은 몸도 마음도 가벼웠던 10월 24일. 홈리스 행동 교사체험을 하게 되었다. 서울역을 떠나 광화문, 북창동, 명동을 지나 다시 서울역으로. 지나온 길 가로등 밑에 쌓여있던 박스와 캔들, 술에 취해 허우적대던 사람들, 자신이 모은 박스라며 건들지 말라던 아저씨와 이렇게 힘들게 모아도 이렇게 돈이 안 되는 구나… 놀라던 신입교사, 늦가을 추위에 웅크리고 누워 계시던… 새벽이 있었다.
4시간 정도 정신없이 폐지 수집을 했을까? 자본주의 시대. 우리들의 결과는 10,300원. 누군가의 폐지를 줍고, 누군가의 한 끼 식사를 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몸과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마음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