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는 최근 홈리스를 대상으로 한 급식을 제한하거나 금지하기 위한 시도들이 확산되고 있는 미국의 상황을 정리한 전국홈리스연합(National Coalition for the Homeless, http://www.nationalhomeless.org)의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2013년 이후 한 해 동안 미국 전역에서 21개 도시가 급식을 중단시키거나 제한하기 위해 법률을 도입하거나 지역사회에 압력을 가하는 조치들을 취해왔습니다. 이외에 다른 10개 도시들도 동일한 과정을 밟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제한 조치들을 준수하지 않는 단체나 사람들은 무거운 벌금을 내야 하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조치들은 홈리스의 범죄화라는 흐름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 비둘기(홈리스)에게 먹이를 주지마세요. 감사합니다. |
급식을 제한하거나 축소시키는 방식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홈리스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단체나 개인에게 공공장소나 시설의 이용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홈리스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단체나 개인은 공원이나 기타 공공장소에서 급식을 제공하는 경우 허가를 받거나 서면으로 동의서를 받아야 하며, 급식을 이용하는 인원수에 근거하여 장소나 시설 이용에 대한 비용을 받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엄격한 식품 안전에 대한 규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4개 도시에서는 식품 안전에 근거하여 급식을 제한하는 법률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런 법률에서는 급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충족시켜야 할 다양한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용 가능한 화장실을 구비해야 하며, 손을 씻을 수 있는 기구를 갖춰야 하며, 주거용 건물로부터 일정한 거리 이상 떨어진 곳에서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들이 있습니다. 이런 제한으로 인해 외부에서 급식을 제공하는 민간단체는 실내 장소로 전환할 것을 요구받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지역사회에서 님비 현상을 조장하여 압력을 가해 급식을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상인들이나 주택소유자들은 급식을 제공하는 단체나 개인들에게 압력을 가하거나 소란을 일으켜 급식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장소를 옮기거나 중단시키도록 압박하고 있습니다.
급식이 홈리스 상태를 유지하게 만든다?
홈리스와 급식에 관해 회자되는 많은 편견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편견 중 하나는 급식이 홈리스 상태를 유지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홈리스에게 급식을 제공하지 않으면 홈리스는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급식을 제공함으로써 홈리스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여러 단체나 개인들이 홈리스에게 급식을 중복해서 제공하는 것은 음식 낭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급식을 제공하면서 교통을 방해하거나 쓰레기가 양산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
미국 전역에서 식품/영양 지원의 필요성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어림잡아 미국인 6명 중 1명은 매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홈리스와 극빈곤층으로 한정해도, 끼니를 거르는 상태는 너무나 흔한 경우가 되어 버렸습니다.
민간단체에서 제공하는 급식은 홈리스들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홈리스 이외에도 몸이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어려운 다양한 사람들의 경우 가까운 지역에 분포한 민간단체의 급식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절한 음식물이나 영양분을 제공받지 못하면 심각한 의료적 문제들(빈혈, 치아 질환, 위궤양, 위장질환, 심혈관 질환, 고혈압, 급성 및 만성 감염질환, 당뇨병 등)로 고통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홈리스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
사람들이 홈리스 상태에 처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홈리스 상태에 처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거나 적절한 소득을 얻거나 안전하고 저렴한 주거 공간에서 스스로를 돌보며 사는 것을 가로막는 무수한 장벽들이 홈리스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며, 홈리스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결코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급식이 홈리스 상태를 지속시키는 이유가 될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정반대로 홈리스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 중에 한 가지가 식사 혹은 먹을거리입니다.
급식 프로그램으로 인해 홈리스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저렴한 주택의 부족, 일자리의 부족, 정신 건강과 신체적 장애 등 다양한 차원의 원인으로 인해 홈리스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차원의 접근방법이 필요합니다.
급식을 제한하면서 식품/영양 지원 예산도 삭감하는 연방 정부
미국의 급식 제한/중단 조치를 보면서, 한국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여러 가지로 고민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민간 차원에서 제공하는 실외급식을 규제하지는 않습니다. 식품위생법상 집단급식소에 대한 규정이 존재하며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이것은 사회복지시설이나 공공기관 등에 해당하는 내용이며 실외에서 제공되는 급식 프로그램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민간단체가 외부에서 제공하는 급식의 문제점으로 인해 한국에서도 실내급식소가 생겨나고 있지만,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실외가 아닌 적절한 장소에서 급식을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나 식품 안전에 대한 규제와 같은 경우 일정 정도 타당한 부분들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홈리스들에게 제공되는 먹을거리가 안전하고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관리가 필요하지만 이러한 부분에 대한 관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급식 제한/중단 조치와 관련한 내용을 살펴보면 공공장소나 시설 이용을 제한하거나 소규모 민간단체는 결코 충족시킬 수 없는 시설과 제약조건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급식을 중단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또한 연방 정부의 식품/영양 지원 프로그램 예산은 지속적으로 삭감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할 때 이러한 조치들이 홈리스의 범죄화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홈리스의 적절한 식품/영양 지원에 대한 고민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급식 형태가 아니면 음식을 조리해서 먹을 수 없으며, 식당을 이용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민간 차원의 급식 프로그램을 제한하면서 정작 정부의 지원을 확대하지 않는다면 홈리스들의 건강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은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