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노숙인 등 복지법)은 제7조를 통해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로 하여금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 종합계획’(이하, 종합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종합계획’은 노숙인 등 복지의 중・장기 계획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종합계획에는 해마다 수립되는 연례 사업계획에는 담기 힘든 큰 그림, 개선 방향을 담게 됩니다. 올 해 복지부는 첫 종합계획을 수립할 계획으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노숙인 등 복지법이 제정된 지 4년, 시행된 지 3년 만이니 꽤 작업이 더딘 편입니다. 그러나 종합계획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지 도통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복지부가 ‘기밀’에 부친 채 작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홈리스행동은 우연히 ‘종합계획 안’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복지부가 6월 26일 비공개로 개최한 ‘노숙인복지시설협회 및 전문가 자문회의’에 “대외주의(대외비)” 형태로 제출된 ‘제1차(2015~2019)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 종합계획안’이 그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복지부의 종합계획안의 세부 내용을 소개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 짚어보려 합니다.
▲ 2011. 4. 7. 동자동 쪽방촌에서 열린 ‘홈리스 지원법 제정 현장설명회’ 모습. 민주적 절차를 누락한 올바른 정책은 불가능하다. |
홈리스 당사자 중에 노숙인 등 복지 종합계획안의 내용을 알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아니, 이런 계획이 수립되고 있다는 것, 나아가 이런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이가 있기는 한 걸까요? 종합계획안의 내용은 차치하고, 이것부터가 문제라고 봅니다. 정작 종합계획에 따른 정책의 당사자를 아예 배제한 채 조용조용하게 계획이 수립되는 것 말입니다.
법률은 종합계획 수립 시 미리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고, 사회보장위원회(※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기획재정부장관, 교육부장관, 복지부장관 등 30명 이내로 구성하도록 한 사회보장기본법에 따른 기구)의 심의를 거쳐 확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청회를 하라거나 정책 당사자, 시민사회의 의견을 들으라는 구절은 없습니다. 이렇게 법이 강제하지 않으니 복지부는 굳이 민주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꼭 법을 그렇게만 해석할 것은 아닙니다. 노숙인 등 복지법은 제3조를 통해 "민간단체와 협력"할 것을 규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한편, 복지부도 종합계획안을 통해 “분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민관 협력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진단하고 있습니다. 또한 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복지부의 연구 용역 보고서 역시 “노숙인 복지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은 민관협력이 발휘되어야 할 필요성이 크면서 또한 좋은 기회”이며 “비전통적 협력 대상인 노숙인옹호단체를 포함하는 것이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민관협력이 정부・지자체와 사업수행기관만으로 국한될 경우 위・수탁 관계에 따른 위계 성향으로 행정에 대한 견제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복지부는 종합계획 수립 과정을 통해 민주적 민관협력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통해 복지부가 지적하듯 분절적 체계를 극복했어야 합니다. 다행히 아직 종합계획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하루 빨리 복지부는 종합계획 최종안을 공개하고, 홈리스 당사자를 포함한 민주적 의견수렴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이름 값 못하는 종합계획
노숙인 등 복지법은 종합계획이 담아야 할 내용을 규정하고 있으나, 복지부의 종합계획안은 이를 다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첫째, 재정계획이 통째로 누락되었는데, 이는 이후 계획의 실현에 치명적 문제가 될 것입니다. 돈 없이 정책을 실행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노숙인 등 복지사업은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와의 협력이 중요하고, 지방정부의 재정투여가 상당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종합계획의 실행 가능성 여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의 사전 협의와 조율이 관건이며, 이에 있어 재정 문제는 가장 예민하게 다뤄질 것입니다. 또한 노숙인 등 복지는 구(舊) 부랑인시설(현, 노숙인 재활・요양시설)과 노숙인시설이 각각 국고보조사업과 지방이양사업으로 이원화 돼 있어 통합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종합계획에는 사업별 재정계획은 물론 분절된 두 재정체계의 통합방안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합니다.
둘째, “노숙인 등의 증감과 관련된 사회적ㆍ경제적ㆍ인구학적 환경 및 그 변화에 대한 전망”이 빠진 것은 중장기전망과 전략의 수립이라는 종합계획의 성격을 고려할 때 중대한 문제라 할 만합니다. 복지부도 지적하듯 그간 ‘노숙인 복지’의 문제가 “분절적・사후문제 해결 중심”이었다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노숙인 등의 증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각종 사회・경제적 상황들을 반드시 살펴야 합니다. 장기적 전망을 빼놓고 세워진 종합계획은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무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쪽방, 고시원… 이들에 대한 대책은?
법률은 ‘노숙인 등’을 거리와 노숙인 복지시설에 있는 분 뿐 아니라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 정하고 있습니다. 쪽방, 고시원, 찜질방, 여인숙 등지에 사는 홈리스가 대표적이겠죠. 이들의 규모는 2011년 복지부의 조사결과 20만 명을 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복지부의 종합계획안은 “전체 노숙인 등의 수는 약 1.2만여명”이라며, ‘노숙인 등’의 규모를 거리와 노숙인 시설 입소인으로 일방 축소하고 있습니다. 실제, 거리와 시설 이외의 20여 만 명에 달하는 ‘노숙인 등’은 종합계획안 전 영역에서 배제되고 있습니다.
쪽방만을 예로 들어 봅시다. 쪽방은 노숙인 등의 자구적 거처로 활용됨은 물론 임시주거비 지원 사업, 결핵환자 투약관리 사업 등 정책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쪽방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대책, 쪽방의 장점에 대한 장기지속방안에 대해서는 기존 정책에도, 복지부의 종합계획안에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습니다. 고시원 등 여타 노숙인 등의 거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복지부가 세우고 있는 종합계획은 20만 명이 넘는 홈리스들을 사각지대에 두겠다는 것으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복지부는 노숙인 등의 대다수에 해당하는 다양한 주거취약계층을 포함하는 종합계획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성, 청소년, 장애 홈리스에 대한 계획의 부실
종합계획안은 ‘노숙인시설체계의 전문화’ 과제의 하나로 여성, 청소년 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노숙인에 대한 보호 강화를 제시하였습니다. 구체 수단으로는 1) 사생활 공간을 최대 배려할 수 있는 시설 및 운영기준 마련, 2)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노숙인에 대한 상담보호활동 강화 및 여성 노숙인 전용 일시보호시설 설립이 제시되었습니다. 노숙인시설의 전문화, 유형화, 사생활보장 등 주거기능의 강화는 그간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문제입니다. 여성 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이들에 대한 지원 역시 그간 지원체계가 누락했던 과제로 시급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복지부의 계획이 이에 대한 대책이 될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첫째, ‘여성 노숙인’에 대한 보호 강화는 상담 및 일시보호시설 설치로 충분할 수 없습니다. 여성성에 대한 고려는 여성만을 위한 별도 시설 설치만으로 실현될 수 없고 주거, 의료, 고용, 급식, 복지서비스지원 등 전 영역에 걸쳐 고려되 어야 합니다. 홈리스 여성의 특성과 현실에 기초해 현재의 지원체계 전반을 개편하지 않는 이상 여성 홈리스는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청소년 홈리스에 대한 대책 역시 미흡합니다. 청소년에 대해서는 상담활동을 강화할 계획이나, 상담 이후 어떤 지원을 하겠다는 건지 계획이 없습니다. 현행 노숙인 등 복지법은 시행규칙을 통해 ‘18세 이상’으로 지원 대상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법령으로 지원 대상을 제한하고 있음에도 복지부는 법 개정을 위한 계획을 빼놓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노인, 장애인 등 다양한 특별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대책 역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현행 지원체계는 이들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현재 이들은 무장애주택으로 공급되는 쪽방, 고시원 등의 염가거처가 없어 임시주거지원의 사각지대에, 거동과 돌봄에 대한 지원이 없어 급식과 같은 일상생활과 시설이용에 있어 불리함을 겪고 있습니다. 종합계획은 당연히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담아야 마땅합니다.
실효성 없는 주거지원 대책
종합계획안은 주거지원사업 강화 방안으로 1) 주거지원사업 물량의 확대, 2) 민관협력을 통한 지원주택의 확대, 3) 취약 노숙인에 대한 주거우선지원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체정책을 들여다보면, 개선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종합계획안은 노숙인 등에게 공공임대주택을 매년 100호 공급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이는 확대가 아닌 축소입니다. 2007년, 국토부는 ‘쪽방・비닐하우스 거주가구 등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 지원대책’을 통해 연 평균 약 860호를 공급할 계획(2012년까지 5,173호 공급 계획, 실 공급=2,913호)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매입‧전세임대주택 공급물량의 15%를 주거취약계층에게 공급하도록 2013년,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이 개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복지부가 왜 현실에도 미달하는 목표를 계획으로 제시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임시주거지원은 ‘취약노숙인’ 우선과 같은 선별적 지원이 아닌 모든 노숙인 등에게 공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노숙인 등 복지지원체계가 시설 중심에서 주거중심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임시주거지원은 노숙인 등에게 쪽방, 고시원 등 염가거처를 한시적으로 지원하여 사례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효과가 입증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극히 일부 지자체에서, 자체 재정으로 실시함에 따라 공급량과 사례관리 인력 부족의 문제 또한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종합계획은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함은 물론 시설이 아닌 임시주거를 통해 홈리스 상태를 벗어나려는 이들 모두에게 공급되도록 해야 합니다.
의료지원의 문제
복지부는 노숙인에 대한 현장의료지원체계의 지역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고, 만성적 거리노숙인에 대한 의료접근성이 미비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노숙인 등의 의료 문제에서 접근성 향상이 최우선 과제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정책은 실질적인 효용이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첫째, 복지부는 현행 254개소인 노숙인 지정병원을 2019년까지 264개소로 확대 운영하겠다고 합니다. 또한 현재 공공의료기관 만으로 구성된 노숙인지정병원의 제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숙인 의료지원을 위한 공공-민간의 협약 체결을 통해서 민간 의료기관과의 협력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264개소의 의료기관으로는 노숙인의 의료접근성을 강화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264개소 중에서 보건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노숙인 등이 이용 가능한 의료기관의 수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지방정부가 사전에 지정한 1・2차 의료기관의 이용을 강제하는 제도를 폐지하고, 국민건강보험에 요양기관으로 등록된 모든 1ㆍ2차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게 바꿔야 합니다.
둘째, 만성적 노숙인(정신건강, 알코올) 등에 대한 의료지원을 강화해야 합니다. 복지부는 지역 정신보건사업 대상으로 노숙인을 명시하고,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통해서 사례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대책에서는 지역 정신보건사업과 어떠한 방식으로 연계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는 "중독문제가 있는 노숙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의 자활을 위한 상담, 치료, 재활지원 서비스 제공"을 사업목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나, '노숙인 등 취약계층 중독관리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기관은 전국 50개소 중 6개소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정신보건사업 내 사업 대상으로 노숙인을 명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지역 및 광역 정신보건사업과 노숙인 등 지원체계와의 연계방안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제시되어야 합니다. 또한 국가정신보건사업계획, 지역보건의료계획과 노숙인 등의 정신건강 증진 계획의 연계 방안도 반드시 마련되어야 합니다.
셋째, 노숙인 1종 의료급여의 선정기준을 완화하고 보장성을 확대해야 합니다. 현재 노숙인 1종 의료급여가 포괄하는 이는 833명(전국, 2015. 1월 현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621명(일시보호시설 이용자)은 1개월 단위의 시한부 의료급여 자격이 부여될 뿐입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설입소자 조건, 3개월 이상 해당 조건, 1개월마다의 갱신 조건(일시보호시설 입소자에 해당) 등의 장벽을 폐지해야 합니다. 더불어 비급여, 식대 등 본인부담비용지원, 간병지원, 치과 의료비 지원과 같은 보장수준의 향상 방안도 반드시 마련되어야 합니다.
고용지원의 문제
종합계획안은 기존 노숙인 고용정책의 문제를 직업훈련 프로그램 부족, 노숙인시설의 고용지원 연계기능 부진으로 진단하고, 1) 고용능력이 있는 이에 대한 직업능력 향상 및 고용연계 강화, 2) 노동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이에 대한 ‘공공 일자리’ 제공 활성화 대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복지부는 고용노동부, 지자체의 직업훈련 프로그램과 고용이 연계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고 하나 구체계획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노숙인 등의 경우 과거 직업력, 학력, 연령 등의 불리함으로 직업훈련을 통한 취·창업이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또한 직업훈련 기간 동안의 생계대책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교육 참여 자체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종합계획안은 이에 대한 대책은 누락한 채 취업성공패키지 등 기존 대책을 열거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둘째, 종합계획안에는 그간 노숙인 등 일자리 정책의 주요 개선 과제로 제기되었던 지속적인 참여, 적정 급여, 단계적 일자리 대책에 대한 내용은 전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그 외에도 종합계획안은 식품위생법 상 집단급식소 규정을 따르도록 한 ‘급식시설’ 대책을 누락하는 등 많은 허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편, 홈리스 당사자의 경험을 통해 볼 때 이 글에서 지적한 문제들 역시 본질에 비켜나거나 비현실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복지부가 직접 종합계획을 들고 나와 설명하고, 홈리스 당사자의 의견을 받아 수정하는 자리가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법률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세우는 계획, 계획 따로 실행 따로인 계획을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행사의 이름이 토론회건 설명회건 공청회 건 큰 상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홈리스 당사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곳에서 열렸으면, 말잔치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의견을 반영하는 자리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