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부터 청년 담론은 한국 사회 공론장에서 주요 의제로 대두됐다. 청년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세대론과 계급론이 교차하며 경합해 왔다. 청년 문제는 교육, 부채, 고용, 실업, 주거, 복지 등 사회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서 나타나는, 후기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이 세대에 집중적으로 응집돼 표출되는 사회문제였다. 하지만 이 현상을 해석하는 주류 관점으로서 ‘세대론’은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계급적이며 정치적인 문제로 다루지 않고, 노동과 자본의 관계 속에서 해석하지 않았으며, 문화적 관점이나 세대 간 착취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 X세대나 MZ세대라는 불분명한 기호적 호칭, 동시대적 문제를 겪고 있는 동시대인들임에도 ‘미래 세대’, ‘후속 세대’라고 부르며 마치 아직 오지 않은 세대인 것처럼 칭하는 표현들이 그런 관점의 사례다. 이에 대한 비판과 반성 속에서 청년 문제에 계급적 관점을 도입한 사회학적 연구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세대 내 계급 격차를 확인해 주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청년 세대 내 계급 격차가 크다는 사실을 주로 통계학적으로 입증하는 양적 연구들은 다른 세대 집단 연구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아동 집단 내에서도 계급 격차는 존재하며, 노인연령에서도 계급과 빈부의 격차 및 차별은 확인된다. 전 세대, 전 연령대에서 계급 차별은 존재한다. 소위 ‘수저론’을 유의미한 통계학적 결과로 도출해 내는 것(양적 연구)과, ‘흙수저’의 실태를 파악하는 조사들(질적 연구)과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들은 세대 내 차별을 드러내는 데는 기여했지만 이 문제가 자본주의 체제의 변동 및 내적 동학과 어떻게 결부돼 있는지 밝히지 않는 한 결과적으로는 큰 틀에서 세대론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한편 일각에는 계급론의 관점에서 세대론을 전면 부정하는 좌파적 관점도 있다. 하지만 ‘세대(generation)’는 역사와 사회 속에서도 탄생한다. 또 정치적 역동 속에서 같은 말이지만 그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청년 세대’란 말에는 생물학적 연령대와 문화인류학적 집단과 정치적 표상이 모두 혼재돼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지금 청년 세대는 후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세대이며, 이들의 삶은 현 체제의 구조적 문제와 재생산 문제를 동시에 드러내는 장이다. 알랭 바디우는 〈참된 삶〉에서 현재 청년 세대를 성인이 되지 못한 채로 계속 연장된 아동기로 살아가야 하는 세대로 설명한다. 성인으로 진입하는 관문을 봉쇄당한 세대라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어떤 문명권에서나 발견되는 성년기의 통과 의례들, 즉 이제부터 너는 아이가 아니라 어엿한 어른으로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누린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공인되는 절차로서의 의례는 근대 자본주의에서 학교 졸업이나 취업, 결혼식 등과 같은 생애주기별 관문들로 대체됐다. 그런데 그 사회적 관문들이 현세대에게는 봉쇄되거나 그런 기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 나이 정도가 되면 누구나 통과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이었던 관문들이 지금은 그 자체로 넘기 힘든 장벽이 됐다. 이전 세대가 나이 듦과 함께 자연스럽게 성취해 가던 것들의 목록이 지금 청년에겐 포기해야 할 것들의 목록이다. 포기의 목록은 삼포, 사포, 오포를 넘어 육포, 칠포, 팔포까지 계속 늘어난다. 과거의 청년이 성인기의 시작이었다면 지금은 아동기의 말단에 위치한다. 베이비붐 세대는 20살이 되면 어른으로 대접받았지만 지금 청년들은 20살에도 ‘애들’로 취급된다. 그조차 점점 연장돼 20대에서 30대까지(2030) 청년기가 늘어났다. 30년을 살고도 자기 삶을 책임지고 타인을 돌보며 살아갈 수 있는 ‘어엿한 어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신체적으로 성인이 되고, 법적으로 성인의 나이에 도달한다고 한들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과거의 어린이들은 빨리 커서 어른이 되기를 바랐지만 오늘의 청년들은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렵다. 우리는 이런 청년 세대가 어디서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필립 에리아스는 〈아동의 탄생〉에서 ‘아동’을 근대 세계에서 새롭게 생겨난 개념으로 설명한다. 현재와 같은 아동 개념은 집과 공장을 분리하는 자본주의적 산업 시스템과 부르주아 핵가족 속에서 형성됐다. ‘청소년’과 ‘청년’ 개념도 마찬가지다. ‘1318’ 세대도 아동기와 청년기 사이의 시간을 세대화한 개념이다. 예전에는 사춘기를 지나고 나면 성인기에 접어든다고 봤지만 교육기간이 연장되면서 청소년기도 연장됐고 노동 시장 진입도 더 늦어졌다. 다음에는 청년기가 하나 더 생겨났다. 그리하여 오늘날 청년은 독립적 주체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자’가 아니라 계속 ‘유예되는 자’로 사회 속에 위치한다. 한편 인턴십과 아르바이트, 단기계약직, 현장실습과 등에서 보이는 ‘청년 노동’의 현재적 착취 형태는 초기 자본주의의 아동노동 착취가 후기 자본주의적으로 변형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동시장은 청년을 미숙한 노동자로 호명하며 임금을 삭감하고, 금융시장은 청년을 법적 성인으로 호명하며 부채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지운다. 이렇게 청년을 세대로 관리하고 위치를 할당함으로써, 자본은 노동시장 진출 시기를 유보시키고, 거대한 노동력의 잉여를 창출하며, 이를 통해 노동통제와 비용감축을 달성한다. 또한 세대 간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애초에 고용을 봉쇄한 기업과 사회의 책임을 노-노 갈등으로 전가한다.
이러한 세대 문제는 정치적으로 위험한 선택과 결과로 연결되기도 한다. 여성혐오, 외국인혐오와 함께 극우정치의 부상이 자본주의적 위기와 결부된 것처럼, 청년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시장에서 청년 진입에 대한 인클로저와 그에 따른 노동 잉여화는 청년 세대의 우경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일본에서 버블 붕괴 이후 나타난 청년 세대의 좌절과 무력화, 우경화 현상이나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 국가 시스템이 붕괴된 이후 IS가 청년들을 충원한 방식이 이념적 숭배나 강제 동원이 아닌 고용과 직업 보장의 형식이었다는 점은 주의해서 볼 지점이다. 반대의 경향도 물론 가능하다. 오늘날 청년 세대는 좌절과 분노가 응집된 만큼 저항의 폭발력을 내재하고 있는 집단이기도 하다. 청년들이 전면에 나서고 주도적 역할을 했던 2019년 홍콩 시위와 라틴 아메리카 반신자유주의 투쟁은 그러한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시위 현장으로부터 세계로 전송돼 유명해졌던 문장들 -“우리는 이 세계에 아무런 몫이 없다”(홍콩과기대 벽면), “우리는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칠레 산티아고 빌딩)- 은 같은 현실을 겪고 있는 전 세계 청년들의 목소리를 반영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청년 정치’란 말은 이와 같이 기존 체제에 저항하는 청년들의 정치세력화 의미보다는 ‘제도 정치권 내의 청년 분파’와 같은 의미로 일반적으로 통용돼 왔다. 진보정당의 개혁을 요구하고 선언하는 청년 정치인들의 출범식에 다양한 현장의 사회운동 활동가나 청년 노동자가 아니라 다른 기성 정당의 청년 대표성을 상징하는 정치인들이, 청년 정치의 대표자로 초대받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출현 방식은 그동안 애매모호하게 정의됐던 ‘청년 정치’의 개념을 재규정하며 실천적으로도 청년 정치의 계급 전선을 가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제 청년 정치인들은 답해야 할 것이다. 당신들이 말하는 청년들은 어떤 청년들인가? 당신은 어떤 청년들의 대표인가?
한국에서 청년 정치란 말은 그 말이 처음 탄생할 때부터 태생적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청년 정치’라는 말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87년 민주화 이후 김영삼·김대중이 대표하는 양김 정치 진영으로 민주화 운동 경력의 학생운동 출신들이 영입되면서부터다. 이전까지는 정치인들에게 청년이라는 것이 특별한 상징자본이 되지 않았으며, 진보성을 상징하지도 않았다. 김영삼, 김대중 두 정치인도 젊은 나이에 정치를 시작했지만 그들은 청년 정치인으로 불리지 않았다. 후보단일화 실패로 87년 직선제 투쟁의 성과를 노태우 정권에 고스란히 넘겨주었던 양김 진영은 ‘젊은 피 수혈론’이라 부르며 경쟁적으로 청년들을 영입했고, 이들을 구태 보수정치인들과 대비되는 진보의 상징으로 활용하면서, 청년은 정치 개혁의 상징이 되기 시작했다. 권력 내에 청년 지분이 할당된 것도 그때부터다. ‘발탁’과 ‘영입’이란 형식이 청년들의 정치 진출 루트로 일반화한 것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다. 공천권에 기반한 가부장제적 정당 구조는 이런 패턴을 고착화했고, 원로 정치와 청년 정치를 보호-피호 관계로 만들었다. 정치권에서만이 아니다. 시민사회 운동의 영역에서도 자원과 네트워크를 가진 ‘선배’가 ‘후배’를 ‘끌어주고’ 신참 후배가 선배를 지지하고 ‘따르며’ 성장하는 관계와 이런 사적 친밀감 속에서 공적 비판을 불가능하게 하는 방식이 나타났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등장한 청년 개념은 90년대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달라진다. 이전의 청년이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인식됐다면 지금의 청년은 국가와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젯거리’다. 80년대까지 청년은 ‘청년-학생-운동’이라는 용어의 결합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학생운동이나 대학생으로 표상됐다. 대학 진학률이 20%대에 불과했지만 ‘청년’이란 상징은 주로 대학생의 전유물이었고, 다른 쪽에는 더 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청년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대학생은 본격적인 사회 진출 사이에 있는 특별한 시간과 공간으로서 청년기를 향유하는 이들이었다. 한편에는 학생운동으로 상징되는 청년-학생 문화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 등 당대의 ‘청년 문화’로 상징되는 것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대학생 문화’였다. 심훈의 상록수에서 나오는 계몽주의적이고 우국지사적이며 엘리트적 면모의 청년상이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신입생 필독서로 읽었던 80년대까지 이어졌고, 군부 독재의 정치적 억압 속에서 정치적으로 저항적이고,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으로 개방적이고 일탈적인 문화적 지향을 가진 청년(대)학생 문화가 이 시대 청년을 규정했다. 청년은 진취적이고 모험적이며 진보적인 존재로 상징됐다.
청년의 자기의식과 사회적 규정에 균열이 생긴 것은 90년대 몇 가지 중대한 사건을 거치면서다. 청년 학생 노동자들의 분신 투쟁으로 자유주의 정치권력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 이어졌던 91년 민중항쟁 국면에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과 박훈 서강대 총장의 배후조종설, 김지하가 조선일보에 투고한 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결정적으로 총리 후보자로 내정된 정원식 외국어대 교수 계란 투척 사건은 나라를 염려하는 우국지사적이고 주체적인 청년상을, 조종받아 행동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철없는 청년의 이미지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됐다. 96년 연세대 사태는 학생회와 학생운동 전체를 폭력집단화해 사회운동의 중요한 동력이었던 학생운동을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키고, 학생자치 활동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하는 결정적 분기점이 됐다. 이런 90년대를 거치면서 학생운동은 주도권을 상실하고, 청년 세대는 문화적 소비 집단으로 재창조된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2000년대부터 ‘청년-노동자’ 문제가 점차 표면에 등장했고, 이는 ‘청년-실업’, ‘청년-부채’, ‘청년-빈곤’, ‘은둔-청년’ 등 주로 부정적 결합 용어로 나타났다. 이때부터 가난과 청년과 노동자가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이기 시작했다. ‘가난한-청년-노동자’의 표상 반대편에서는 ‘성공한-청년-창업가(기업가)’가 나타나고 있었다. ‘청년-학생-운동’이란 결합용어로 상징된 80년대 청년의 진취성, 개방성, 도전 정신을 물려받은 것은 능력 있는 청년을 상징하는 ‘기업가 정신’이었다. 좌파적이고 계급적인 가치를 내포한 ‘진보’라는 정치적 개념은 ‘혁신’이라는 경제·기술적 개념과 종종 호환되고 혼용됐다.
혁신주의는 기술 혁신과 경영 혁신을 통해 성장 위기에 대응하는 자본의 전략에서 나온 개념이지만 전사회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것으로 끊임없는 교체하는 생산주기와 교체주기의 단축’, 현재의 문제를 원인에서 해결하지 않은 채로 계속 새로운 것으로 해결하는 ‘새로움으로의 도주’라는 신자유주의 이성을 전파해 왔다. 과거의 인턴직은 회사가 사원을 뽑은 후 적응시키고 교육하는 기간을 뜻하는 개념이었지만, 지금 상시화한 청년 인턴 노동은 신제품을 싼값에 수시로 교체하며, 쓰고 버리는 수단이다. 이런 혁신주의를 정치에 도입할 때 가장 큰 오류는 지켜야 할 가치와 버려야 할 가치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낡은 것으로 분류해서 한데 묶어서 폐기하는 것이다. 진보정치와 보수정치를 모두 극복한다는 구호도 마찬가지다. 극우가 보수를, 신자유주의 세력이 진보를 참칭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왜곡된 한국 정치 구도를 개혁하려면 보수·진보를 낡은 정치로 한데 몰아 버린 후에 ‘새 정치’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과거의 진보주의, 진보정치를 제대로 비판하고 반성하면서 진보의 가치를 이념적으로 실천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이 과정이 생략되면, 정치 혁신이란 것도 공허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체적 젊음은 상품이자 자본이며 특권이다. 부자는 빈자보다 더 오래 젊고, 더 오래 건강하다. ‘청년’의 특권화는 정치에서도 나타난다. 80년대 ‘청년 학생’은 청년이란 이름으로 청년 노동자를 감췄다. 학생운동이라 말하지만 실은 ‘대학생 운동’이었고, 이는 고등학생 운동과 청소년 운동을 비가시화했다. 대학생이라 말하지만 ‘386’이라는 이름으로 세대 호칭을 독점하고 민주화 세대를 대표한 이들은 실은 ‘명문대’라 불리는 소수 상위권대 학생이었다. 지금 청년 정치는 어떤 청년을 대변하고 대표하고 있는가. 청년이란 이름을 자기 자본으로 사유화하고, 특권화해 온 구세대의 청년 정치인들과 얼마나 치열하게 결별하고자 하는가. 이전 세기의 청년 정치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기꺼이 보수와 합당하고 자본과 협력하는 것을 통 큰 화해 정치나 담대한 결단으로 정당화하고 미화하면서 청년 세대를 정치에서 이반시켰다. 우리는 어떤 청년 정치를 원하는가. 권력 내부의 상징투쟁과 인정투쟁을 통해 지분을 확장할 것인가? 아니면 삶을 박탈당하고 그것을 되찾고자 하는 청년 세대의 체제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사회운동과 정치적 요구로 조직하면서, 그 속에서 자양분을 얻고 힘을 키우면서 정치적으로 세력화할 것인가. 보수 반혁명에 가세해 자유주의적 전향의 물결이 세대를 넘어 번창하고 있는 이러한 시기에, 청년 정치는 어떤 청년의 어떤 정치가 돼야 하는가. 이제 ‘청년’에 대해서도, ‘청년 정치’에 대해서도, 다시 근본적으로 묻고 반성하며 재정립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