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글리벡을 둘러싼 공공의 적은 누구인가?

지난해 글리벡이 임상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만 해도 글리벡은 만성백혈병환자들에게 죽음의 나락에서 기적같은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시판을 두고 진행된 과정에서 글리벡은 더 이상 생명을 연장시키는 '희망의 신약'이 아니다. 어찌된 일인가?

글리벡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나?
글리벡은 1993년 노바티스가 미 국립암센터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시작한 후 정상세포는 공격하지 않으면서 백혈병을 발생시키는 유전자 P210 단백질의 작용을 억제시키는 약재로 인터페론 주사가 들지 않는 만성백혈병 환자들에게 복용시킨 결과 95%의 혈액에서 암세포가 없어지게 한 신약이다.

노바티스는 지난 2001년 5월 미 FDA의 승인이 났고,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6월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스위스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판매 허가가 났다. 문제는 글리벡의 약가.

노바티스는 6월 글리벡을 보험약재 등재 신청을 하면서 한 캅셀당 25,005원을 요구했고, 약재전문위원회는 처음에는 17,055원으로 보험약가를 결정했다. 그러나 노바티스는 특허권 등의 지적재산권을 거론하며 25,005원을 요구하며 가격 수용을 거부했다. 이후 노바티스는 지난해 10월 25,005원으로 시판하고 대신 환자본인부담금 30%를 부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보건복지부는 노바티스의 요구는 부당하다며 지난해 11월 17,862원에 보험약재로 강제고시 했다.


[copyleft - 공대위]


노바티스는 현재 이 고시가에 불응하고 시판을 중단, 지난해 12월 2일부터 약가 결정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만성백혈병 환자들에게 글리벡을 한시적으로 무상 공급하고 있는 상태다. 이 과정에서 노바티스는 지난해 11월 일부기간 동안 이지만 무상공급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글리벡 공급을 중단했고, 높은 약가와 보험 적용 등의 문제로 환자모임인 새빛누리회, 만성백혈병환자비상대책위(이하 비대위), 글리벡문제해결과 의약품공공성 확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가 꾸려져 약가 인하와 모든 환자 보험 적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기적의 신약'이 '죽음의 약'으로 둔갑한 이유는?
흔히 백혈병이라 불리는 만성백혈병(chronic myelogenous leukemia=CML)은 혈액세포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백혈구 수가 한없이 증가하는 혈액암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 만성기→가속기→급성기를 거쳐서 진행되고 만성기는 생명에 직접적인 위험이 없이 보통 3-5년간 지속되며, 만성기를 지나 가속기를 거쳐 급성기에 들어선 환자는 대부분 2-6개월 내에 사망한다.

현재까지 만성백혈병을 완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골수이식뿐이며, 만성기를 연장시키는 인터페론 주사제가 사용돼왔으나 부작용이 커 투여 환자의 20%는 중도에 사용을 중지하고 있다. 결국 현재로써는 글리벡이 항암치료가 어렵거나 실패한 만성백혈병에 투여할 수 있는 유일한 약제인 상황이다.

만성백혈병 환자들에게 절대적 신약인 글리벡이 죽음의 약으로 둔갑한 이유는 한 달에 수 백만원을 호가하는 높은 약값 때문이다.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백혈병 환자들은 글리벡을 하루에 4알에서 많게는 8알을 먹어야 한다.

현재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대부분의 만성기 환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돈은 월 3백만원에서 6백만원. 보헙이 적용되는 가속기, 급성기 환자도 다른 치료비를 제외하고 글리벡 약값만 매달 80만원에서 180백만원을 부함해야 한다. 정부는 현재 가속기, 급성기 환자와 인터페론 치료가 실패한 만성기 환자에 한해서 보험적용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환자들이 보험적용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치료를 위해서는 가정경제가 파탄나거나 그나마 파탄날 재정조차 없는 환자들은 생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25,005원, 노바티스만의 이상한 계산법
현재 글리벡의 유일한 공급자인 노바티스는 연구개발비 등을 이유로 글리벡 약가를 <25,005원으로 고수하고 있다. 대신 환자 본인무담금 30%를 부담할 의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글리벡의 가격이 정부안대로 17,862원이든, 노바티스가 제시한 25,005원이든 본인부담금 30%를 제하면 노바시스의 실질 판매수익은 별반 차이가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노바티스가 무상공급을 실시하면서까지 25,005원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가?

노바티스는 글리벡에 대해 전세계 단일 약가 정책을 주장해왔다. 전세계 동일 약가정책이 각계의 비난이 높아지자 노바티스 측은 올 초 34,000원에 등재된 일본의 예를 들며 전세계 동일한 약가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시판이 결정된 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등은 모두 25000원 선에서 약가가 결정됐고, 유통마진에 차이가 있는 일본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거의 동일한 가격을 결정됐다.

노바티스가 우리나라 약가를 인하하지 않는 데는 동일 약가 정책과 함께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는 스위스 다음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글리벡 시판이 결정됐다. 이 때문에 한국의 약가는 이후 다른 나라와의 협상 과정에서 노바티스 측이 원하는 가격을 고수하기 위한 중요한 근거가 된다.

더욱이 한국과 같은 중진국 시장이 글리벡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한국의 약가는 노바티스 측으로서는 더욱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비대위 측의 지적이다.

25,005원, 정당한 요구인가?
노바티스는 글리벡에 대한 특허권을 가진 유일한 공급자다. 그렇다면 노바티스가 주장하는 대로 연구개발에 들인 비용과 특허권 등을 볼 때 25,005원이 정당한 요구일까?

평등사회를위한민중의료연합(이하 민의련)등이 글리벡 특허자료 등을 근거로 계산한 바에 따르면, 글리벡 한 알의 생산원가는 845원이다. 이는 노바티스가 요구하는 약가의 30분에 1에 수준에 불과한 가격으로 글리벡이 시약 등으로 다른 회사에 공급할 시에는 최소 90분의 1 가격으로 줄어든다.

사실 글리벡은 노바티스만이 개발한 고유한 신약이 아니다. 글리벡은 백혈병 환자들의 탄원으로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고, 보통 15년이 걸리는 개발기간을 3년으로 단축, 2상 임상실험 만으로 시판이 허가됐다. 이 덕분에 글리벡 임상실험은 거의 전적으로 공적자금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고, 연구비 지원 등 막대한 세금혜택을 누려왔다.

민의련 등은 글리벡 약가와 관련, 의약품의 약가는 해당국가의 GDP 등과 비례해 ‘환자가 부담할 수 있는 비용’으로 결정 되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글리벡 시판약가는 시판예정 7개국 GDP와 비교해 보면 가장 높은 가격이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이하 건약)의 이성미 차장은 "의약품 가격은 해당국가의 환자들이 실질적으로 구매가능한 가격으로 결정되야 한다. 이 약을 통한 환자들의 실질적인 치료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선진 7개국 수준의 25,000원은 글리벡이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무상공급의 이면, 고도의 정치적 공세
한국노바티스는 지난 12월부터 한시적으로 무상공급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무상공급이 하루 이틀, 길게는 일주일까지 지연되며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비대위, 공대위 등을 중심으로 무상공급이 노바티스가 요구하는 약가를 고수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은 "노바티스가 12억원의 손해를 감수하며 인도적 차원에서 무상공급을 한다고 하지만 원가로는 4백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며 “노바티스는 실제로 내려야할 약가 인하는 유보한 채 무상공급으로 국내외 여론을 유리한 고지에 점하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사실상 무상공급은 현실적으로 환자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에 환자들과 정부가 노바티스를 상대로 한 공격적인 대응이 어려운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더욱이 노바티스는 정부고시가를 거부하고 무상공급을 함으로서 독립국가의 관련법을 무시하고 독자적 행동을 벌이면서 초국적 제약자본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병 키운 후에 치료하라는 정부
한편 정부는 이번 글리벡 문제를 대응하면서 국민건강에 대한 책임과 의지부족을 여실
히 드러냈다. 보건복지부는 글리벡 허가 당시에는 인터페론의 부작용 등을 들어 투약범위를 만성기 환자를 포함한 모든 만성 골수병 환자로 결정했으나 5개월 만에 미 FDA 승인기준 등을 언급하며 만성기 환자 중 인터페론 불응자로 결정해 대부분의 만성기 환자들을 투약범위에서 제외시켰다.

더욱이 정부는 글리벡 보험적용 대상자를 가속기와 급성기, 인터페론 불응자로 제한했다. 이에 대해 비대위 강주성 대표는 “글리벡을 통해 완치 가능성이 있는 만성기 환자를 보험에서 제외시킨다는 것은 병을 키운 다음에 치료하라는 말과 같다”고 지적한다. 현재 일본을 비롯해 글리벡 시판이 결정된 모든 국가들은 모든 만성기 백혈병 환자에게 보험적용을 하고 있다. 실제로 만성백혈병 환자의 80%가 만성기 환자임을 고려해 볼 때 정부의 결정은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또한 지난해 본인부담율과 관련해 김원길 보건복지부장관이 희귀 난치성 질환자에 대한 본인부담율을 20%로 낮추겠다고 약속했지만 만성백혈병은 18세미만의 환자에게만 이를 적용시키고 성인환자는 재정부담을 이유로 제외했다. 만성백혈병은 대부분이 만성기 환자들이고 40-50대 환자들이 많다. 이들은 모두 발병 전 경제주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본인부담율과 보험적용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약값인하, 전 환자 보험적용 등으로 글리벡문제 해결 필요
무엇보다 글리벡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약값 인하와 전체 환자에게 보험적용을 해야하는 것이 급선무다. 건약의 이성미 차장은 “글리벡이 특허에 의한 시장 독점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선진국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가장 높은 가격으로 결정됐다. 이는 비 선진국 국민에게는 구매가 불가능한 가격이고, 중진국 시장의 첫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약가 인하는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한 보험적용과 관련해 글리벡 권위자 여의도 성모병원의 김동욱 교수는 “만성기 환자를 글리벡으로 치료하려는 의사가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약을 투여할 수 없게 된다면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무시되는 일이고, 더욱이 헌법에 보장된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와 건강권, 필수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을 제한하는 처사”라며 모든 환자들에게 보험적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편 현재 환자들과 공대위를 중심으로 글리벡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약가 인하를 위한 행동과 함께 만성기 환자 보험적용을 위한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으며, 특허권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특허 발명을 실시할 수 있는 강제실시 등을 추진하고 있어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2000. 12

만성골수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소식이 환자들에게 전해짐

2001. 4. 20

희귀의약품센터, 선정된 CML 환자들에게 시판 전 치료기회 제공

2001. 5. 10

글리벡 미 FDA 승인

2001. 6. 14

글리벡 희귀의약품 지정

2001. 6. 28

노바티스, 한 캅셀당 25,005원 보험약재 등재 신청

2001. 8. 8

노바티스, 약가인하 대신 빈곤층 환자 무상공급 제안

2001. 10. 15

노바티스, 약가인하 대신 환자본인부담금 부담 제안

2001. 11. 16

식의약청, 글리벡 적응증에서 만성기환자 삭제

2001. 11. 19

보건복지부, 글리벡 약가와 보험범위 강제고시

2001. 11. 27

일부 환자 글리벡 투약 중단 발생

2001. 12. 2

노바티스, 한시적 무상공급 실시

<글리벡 진행 과정>

이진숙기자 kokoree@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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