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사유화에 맞선 남아공 COSATU 총파업
2001년 8월 29일과 30일, 이틀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우리의 민주노총에 해당하는 COSATU(남아프리카 노동조합회의) 주도로 ANC(아프리카 민족회의) 정부의 공기업 사유화 계획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있었다.
수백만명의 노동자가 참여한 사유화 반대 총파업
이날 총파업에는 COSATU의 200만 조합원을 비롯하여 50만의 조합원을 가진 또다른 노총 NCTU가 적극 동참하는 등 수백만명의 노동자가 참여했다. COSATU에 따르면 남아공 전체 노동자의 60% 정도가 총파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날 전국 곳곳에서는 총파업과 함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 요하네스버그 35만, 더반 30만, 프레토리아 30만 등 시위에 참여한 인원만 1백만명을 훨씬 넘어섰다. 이날 시위에는 여러 비정부 기구들, 학생 조직들, 반세계화 행동그룹들이 적극 동참했다.
남아프리카 공산당(SACP) 또한, 비록 ANC 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당원들이 사유화와 신자유주의 경제 프로그램에 동조하고 있지만, 당 차원에서는 총파업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표방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투쟁에서 형성된 3자 동맹
잘 알려진 바대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지난 17세기 무렵부터 20세기 후반까지 극단적인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이 사회 전체를 지배해 왔다. 인구의 16%에 불과한 백인들만이 선거권을 갖고 모든 권력을 행사하는 철저한 백인우월주의 사회였다. 남아프리카 유색인(대부분은 흑인) 민중들은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위해 줄기찬 투쟁을 계속했다. 특히 20세기 후반에는 ANC(아프리카 민족회의)를 주축으로 수십년에 걸쳐 가열찬 투쟁이 전개되었다. 1990년 ANC의 지도자 만델라가 27년만에 석방되고 ANC가 합법화된 이후, 1994년 모든 인종이 참여하는 총선거를 쟁취하여 63% 득표로 압도적으로 승리함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투쟁은 역사적인 승리를 쟁취했다.
COSATU는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위한 오랜 투쟁에서 SACP와 더불어 ANC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자 동맹세력이었다. 1994년 ANC의 집권 이후에도 ANC-COSATU-SACP의 3자 동맹은 ANC정권을 떠받치는 기본 축이었다. 실제 ANC정부의 장관들 가운데 상당수가 COSATU 출신으로 SACP 간부를 거쳐 ANC정부에 진출해 있다.
그러나 3자 동맹은 ANC정부의 정책이 점차 신자유주의 기조로 굳어져 감에 따라 점점 위기에 봉착해 왔다.
대표적으로 ANC정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GEAR(성장·고용·재분배정책)라는 거시경제 정책을 추진해 왔는데, 이는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대대적인 공기업 사유화, 공공부문 지출삭감, 재정 적자에 대한 엄격한 제한, 연금지급액 삭감, 기업세 인하 등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1999년 ANC가 두 번째 총선에서 67%의 지지를 얻어 다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무렵까지만 해도, COSATU 내에서 ANC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불만은 수면 위로 공공연히 표출되지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유산을 철폐시키는 투쟁에서 ANC와 공동전선을 펼쳐야 한다는 인식이 COSATU의 활동가들을 지배했던 것이다.
99년 총선 이후 신자유주의 본격화 ― COSATU도 태도변화
하지만 1999년 두 번째 총선 승리 직후부터 ANC정부의 신자유주의 기조가 심각하게 본격화되자, COSATU의 태도 또한 빠른 속도로 변화했다.
1999년 8월 24일 COSATU는 공공부문 노동자 60만명이 참여한 대중파업과 시위를 전개했다. COSATU가 대규모 파업과 시위에 나선 것은 ANC 집권 이래 처음이었다.
당시 파업은 노조가 6개월의 협상끝에 최저선으로 설정한 7.3%의 임금인상률(실질물가상승률 8.2%)마저 정부가 거부한 것이 직접적인 배경이었다. 여기에 운송부문 공기업 Transnet에서 2만7천명이 해고된 데 이어, 통신·철도·광산부문 공기업에서 5만명을 감원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투쟁에 불을 붙였다.
이후 크고작은 투쟁이 거듭되었지만 ANC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특히 사유화 정책이 지속되자 2001년 8월말 COSATU가 ANC정부의 사유화 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총파업을 조직했던 것이다.
심각하게 전개되는 ANC정부의 사유화 정책
실제로 ANC정부는 공기업 사유화를 엄청난 강도로 밀어붙이고 있다.
2001년 8월말 당시까지, 사유화의 결과로 이미 10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부문의 일자리 축소는 실업의 급격한 증가에 크게 공헌했다. 공식적인 실업률은 95년 15%에서 99년 25%로 증가했으며, 실질 실업률은 4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유화는 또한 공공부문에서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공격을 동반해 왔다. 학교 부문에서 사유화는 1994년부터 시행되어 확대되어 왔다. 이제 부자들은 비싼 수업료를 내고 도시 근교에 있는 큰 학교에 보낸다. 반면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빈민가 학교나 시골 학교에는 교실도 충분하지 않고 심지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사유화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부터 추진되어 왔는데, 그 결과 오늘날 인구의 16%가 이용하는 사적 건강보험에 36억 란트가 소요되는데, 이는 공적 건강보험에 소요되는 32억 란트보다도 많은 액수다. 몇몇의 도시에서는 수도공급마저 사유화되었는데, 이는 가격인상과 서비스 악화로 귀결되었다. 예를 들어 더반 시에서는 수도요금이 28% 인상되었다. 요금인상은 단수로 이어지고, 이것이 콜레라의 확산으로 이어지자 사람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회사(Telkom) 사유화로 기본요금과 국내전화요금이 인상되자 가난한 사람들은 전화를 아예 끊어야 했다. 99년 이후 국내전화요금은 40% 인상되고, 부유한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국제전화 요금은 35% 인하되었다.
전기·철도·통신 등 모두 “사유화” ― ANC에 맞선 COSATU의 투쟁 격화 예상
2001년 8월 총파업의 핵심은 전력 사유화 반대 투쟁이었다. 정부가 전력공급의 30%까지 사유화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의 전기회사 Eskom은 그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값싸게 전기를 공급해 왔는데, 이제 정부는 전기회사가 이익을 내서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것인데도 말이다.
소웨토에서는 6만 세대가 총파업이 벌어지던 그 겨울(남아공은 8월이 겨울)에 전기공급을 중단해야 했다. 정부 관계자는 20% 정도 요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많은 전문가들은 사유화로 50% 정도까지 요금인상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ANC정부는 2002년부터 시작하여 향후 5~7년 사이에 전기회사 Eskom, 철도회사 Spoornet, 운송회사 Transnet, 통신회사 Telkom, 군수산업체 Denel 등 국영기업들을 매각하여 180억 란트(45억 달러)를 벌어들이기를 희망하고 있다.
ANC정부 각료들 “사유화 지속” ― 총파업 비난
사유화 반대 총파업을 전후하여 ANC정부의 장관들은 COSATU와 그 지도자들을 맹렬히 비난했다. 3자 동맹의 일원으로서 무책임하다는 논리였다. 8월 23일 ANC정부의 관계 장관들 다섯명은 파업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26일에는 파업을 비난하는 전면광고를 신문에 실었다. ANC정부는 사유화 정책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노동조합들이 정부의 성명을 비난하고 COSATU의 주장을 지지했다. 가장 강력한 반응은 남아프리카 지방자치체 노동조합에서 나왔다. “정부는 어리석게도 우리 노동자들이 세계은행과 GEAR 정책에 순한 양처럼 희생당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GEAR로부터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은 오로지 외국 컨설턴트, 다국적 기업, 극소수 부자들 뿐이다.”
총파업이 끝난 직후, 산업장관 알렉 어윈은 “파업이 실패했다”면서 ANC정부는 공기업 구조조정과 사유화 정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ANC정부의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COSATU의 투쟁은 갈수록 격렬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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