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님을 땅에 묻질 못하겠습니다
민중의 하제 희망으로 올려 세울지니“

민중의 스승 김진균 선생 ,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에 안장


"지금 우리들의 네 귀퉁이는
몽땅 끊겨 있습니다

악랄한 자본 축적이
역사 진보로 둔갑하고
거짓 경쟁에서 이기면
영웅도 되고 스승도 되고
문화 예술은 가진자의 도락이요
학문은 이긴자의 쓸모로 강요되는

이 허무의 한복판에 떡하니 나서
학문할 바, 창조할 바, 세계진보의
실체를 디리대던 선생이시여

밤을 찢어발기는 싸움은
한 점 이슬로 남는다더니
그냥 그렇게 한 점 이슬로 가시는 겁니까

하지만 우리들은 님을
땅에 묻질 못하겠습니다
이 시대의 이정표, 민중의
하제 희망으로 올려 세울지니
님이시여 정말 원통합니다"
-백발이 하얗게 서린 백기완 선생은 고 김진균 선생의 마지막 길에 이렇게 조시를 읊었다.



민중의 큰 스승으로 그 자신이 민중의 삶을 살았고, 남한 민중운동의역사와 함께 투쟁하셨던 고 김진균 선생의 민주사회장이 17일 오전 10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렸다. 영결식에 앞서 오전 8시 30분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을 마치고 선생이 노동자 민중들과 함께 투쟁하며 싸웠던 대학로 주변 도로를 돌아 노제가 진행되었다. 생전 선생이 언제나 그윽하게 보여주시던 그 미소 그대로의 대형 영정과, “민중의 빛으로 살아오소서” “진보의 한길”등 30여개의 검정색과 흰색만장을 앞세운 노제 행렬은 대학로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80년 군부독재에 의한 해직, 그리고 복직, 민교협공동의장, 전노협 고문, 전노협후원회공동의장, 한국 산업노동학회회장, 사회진보연대 대표,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 민중연대 공동대표, 민주노총 고문 등등 영결식 시작과 함께 서관모 교수가 소개한 김진균 선생의 약력은 남한 민중운동의 역사나 다름없었다.

잠시 후 선생의 생전의 육성이 울려 퍼지자 영결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둘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장암 수술 후에도 열정적인 활동을 해 오시고 정년퇴임 후에도 남한 진보운동의 과제를 끊임없이 고민하던 그런 음성이 마로니에 공원에 울려 퍼졌다.

손호철 민교협 공동의장은 “세월이 흐르고 소위 민주정부들이 들어서면서 적지 않은 원로운동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체제에 포섭되고 보수화 되고 있을 때, 선생님은 오히려 갈수록 진보적이 되어 가시며 꿋꿋이 외로운 진보운동과 함께 해 오셨다”면서 “선생님은 훌륭한 운동가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스승, 훌륭한 선배, 훌륭한 동지, 훌륭한 친구, 무엇보다도 훌륭한 인간이셨다”고 밝혔다. 손호철 공동의장은 또 “우리 모두가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위해, 모든 억압과 착취, 차별과 배제가 없는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또 다른, 작은 불나비가 되어 불을 향해 돌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전노협 고문, 전노협 후원회 공동의장이라는 이렇게 짧게 한마디로 약력에 나와 계시지만 어머님 아버님 같은 선생님과의 아름다운 추억이 없는 노동자는 없다”면서 “해직교사 10년 동안 선생님이 계신 곳은 정말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었고 선생님은 항상 꼭 계실 곳에, 있어야 할 곳에 그렇게 계셨습니다“라고 조사를 전했다.

민중연대 정광훈 의장은 “김진균 선생님은 내 땅에 진보의 씨앗을 뿌리고 가셨습니다. 노동자 농민 빈민, 민중들은 역사의 끝인 역사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편히 가소서”라고 짧막한 조사를 남겼다.

민중가수 최도은씨는 선생이 생전에 그렇게 환하게 웃으시며 좋아하던 노래 “불나비”를 아쟁가락에 맞추어 느리게 편곡하여 조가를 불렀다. 최도은씨가 끝없이 눈물을 흘리며 불나비를 부르는 동안 장내는 다시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러나 보내는 이들은 마음이 아파도 영결식장 한 가운데 놓여진 김진균 선생의 영정은 생전의 모습처럼 미소 짓고 있었다.



이어 헌화가 이어지고 영결식에 참가한 300여명의 하객들은 국화꽃을 선생의 영전에 바치며 선생을 기렸다. 영결식이 끝난 후 하관식은 마석 모란공원에서 진행되었다.

하관식에서 홍근수 목사는 “61세 그보다 긴 족적을 땅속에 묻고 가는 우리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소 짓는 그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이나마 실현된 것은 이 땅의 민중운동 때문이었고 그 투쟁의 한가운데에 선생은 항상 계셨다”며 조사를 전했다. 김진균 선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는 자리는 ‘불나비’처럼 살아간 고인의 뜻을 다시 한번 기리고 다짐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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