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옥란열사추모문화제 강제해산 | ![]() | ![]() |
3월 26일은 장애해방 운동가 고 최옥란 열사가 산화한지 2주기가 되는 날이다. 가난한 여성 장애인 수급권자였던 최옥란 열사는 지난 2002년 기초생활보장법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수급권을 반납하며 명동성당 농성을 진행하다 아쉬운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최옥란 열사의 장례식은 생전에 가장 열심히 투쟁했던 공간인 세종문화회관과 명동성당에서 노제를 지내지 못하고 치뤄 져야 했다.
그리고 다시 2주기 추모제... 열사의 투쟁을 기리는 이들은 '최옥란 열사 추모사업회'를 만들었고 2주기가 되는 날 '장애인 차별철폐'를 선언하며 2년 동안 치루지 못한 노제를 추모 문화제와 함께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노제는커녕 추모 문화제 조차 야간 집회는 불법이라며 막무가내로 막았다.
이날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은 오전 10시부터 무대를 쌓기 시작했으나 경찰은 무대를 부숴 버렸고 무대 없이 문화제는 진행되었다. 7시경 노제를 위해 가져온 만장은 사용 할 수도 없었다.
거대한 세종문화회관의 돌기둥 앞에 만들어진 초라한 무대. 장애인들은 이날만큼은 그럴 듯한 무대도 쌓아보고 노제도 지내 열사의 한을 풀어 주고 싶었던 거다. 하지만 단 네 개의 조명과 행사를 알리는 조그만 현수막, 그리고 오른편에 조그맣게 걸린 최옥란 열사의 얼굴만이 유일한 무대 장치였다.

그렇지만 장애인들은 경찰에 의해 초라해져 버린 문화제를 꿋꿋하게 진행했다. 열사를 기리는 영상과 시 낭송, 젠, 류금신씨의 노래가 이어졌다. 그렇게 문화제가 진행되는 사이 경찰은 무려 세 번이나 박경석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공동기획단' 집행위원장에게 해산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추모문화제는 계속 진행되었다.
8시경 결국 종로 경찰서는 정말 해괴한 짓을 저지르고야 만다. 바로 몇 미터 안 되는 곳에서 진행되는 비장애인 촛불문화제는 그대로 둔 채 장애인들의 추모문화제에는 경찰력을 동원해 해산을 시도한다. 한 발짝 한 발짝 경찰의 군화발과 방패는 200여 참가자를 향해 조여들고 급기야 완전히 둘러싸 버린다. 그리고 그 안에는 100여명이 경찰에 둘러싸여 강제해산을 강요당한다.
만약 장애인들이 촛불을 들고 문화제를 했다면 촛불 문화제라고 봐줬을까? 아마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경찰은 유독 장애인 집회만큼은 원천봉쇄, 강경대응의 원칙을 고수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노제도 못 지낸 것이다.
무대 같지도 않던 무대는 완전 철거되고 세종문화회관 앞 땅 바닦은 아수라장이다. 경찰에 갖힌 100여명은 그래도 굴하지 않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밤이 지새도록 농성을 할 것이라고 의지를 다진다.

애초 이날 추모 문화제가 끝나면 고건 국무총리에게 장애인 차별 철폐를 위한 정책요구안의 조속한 실천 약속을 촉구하기 위한 노숙농성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문화제에 함께 했던 인권운동 사랑방 박래군씨는 경찰이 추모 문화제를 해산하려는 상황에 대해 한마디 물어보니 "집시법은 오늘처럼 경찰이 계속 자의적으로 하게끔 법자체가 되어 있다"며 "경찰이 봐서 불법이어도 열어줄수도 있고 해산시킬 수도 있도록 멋대로 판단해도 되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연행이 시작되었다. 경찰은 먼저 비장애인 남성참가자들을 강제로 연행한다. 연행된 참가자들은 인근에 준비중이던 경찰버스에 태워졌다. 스크럼을 짜고 버티던 참가자들이 하나 둘 연행되어 간다. 세종문화회관 앞은 비명과 고함으로 아수라장이다. 둘러싼 경찰병력 너머로 어느새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경찰은 시민들의 눈과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서도 무차별 연행을 멈추지 않는다. 이어 여경들이 나서 비장애인 여성 참가자들을 하나 둘 뜯어내기 시작한다. 여성 참가자들은 남성들보다 더욱 강하게 스크럼을 짜고 여경에 맞서 싸우지만 역부족이다. 그리고 장애인들에 대한 연행이 시작된다. 박경석 집행위원장, 장애여성 공감 박영희 대표 그리고 장애인 집회 취재 마다 보아왔던 낯익은 장애인들이 모두 연행 되어간다.

경찰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인을 연행하지 않으면 이날 투쟁은 밤새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장애인들이 노숙 농성한다면 밤새 싸워야 하는 것을 아는 경찰은 앗싸리 다 잡아가 버린 것이다.
이날 총 82명이 연행되었다. 그중 한 장애인은 연행과정에 다쳐 병원에 후송되었고 82명의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은 총 열 한개의 경찰서에 분산 수용되었다. 결국 최옥란 열사가 죽은지 2년이 되어도 노제는 어려운 일이다.
참 오늘 언론사 기자도 연행되어 경찰버스 안 까지 끌려 들어갔다. 그 기자는 끌려가면서도 몇 번이나 기자라고 밝혔지만 막무가내로 차에 태웠다는 것이다. 후문에 의하면 오늘 추모제 책임을 맡은 사람은 종로경찰서 정보과장이라고 한다. 새로온 신임 정보과장이라는데 상당히 원칙적인 인물이었다. "방해하면 무조건 연행해" 원칙은 완전하게 지켜졌다. [용오기자]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