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올 9월부터 내년 12월 까지 적용될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있다. 현재까지 세 차례에 걸쳐 전원회의가 개최되었고, 24일과 28일 두 차례 회의를 남겨두고 있다. 매년 그래왔듯 올해도 노동자위원들과 사용자위원들의 흥정과 공익위원들의 ‘훈수두기’가 한창이다.
현재 법정 최저임금은 시급 2,840원, 월 641,840원이다. 64만 원, 고려대에서 청소용역노동자로 일하는 방전식 씨가 하루 9시간 씩 한 달을 꼬박 일하고 받는 임금이다. 2005년 서울에서 64만 원으로 한 달 나기가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또 그가 땀 흘려 일한 노동의 가치가 64만 원 밖에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지난 달 27일 열린 제 2차 임금수준전문위원회에서 사용자위원들은 시급 2,925원, 주 40시간 기준 월급 611,325원(44시간 기준 661,050원)을 요구안으로 제출했다. 사용자위원들이 제출한 요구안은 전년 대비 3.0% 인상된 것으로, 사용자위원들은 최근 3년간 섬유, 고무 등 한계저임금업종 노동생산성증가율 평균치 3.0%를 요구안의 근거로 삼았다.
반면, 노동자위원들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5인 이상 사업체 상시고용노동자 월 통상임금의 50%인 시급 3,900원(주 40시간 기준 한 달 815,100원)을 요구안으로 제출했다. 노동자위원들 요구안의 인상률을 굳이 따지자면, 전년 대비 37% 인상안이다. 결국 사용자위원들과 노동자위원들이 제출한 요구안의 격차가 무려 34%, 시급기준으로 1천 원 가까이 나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공익위원들은 17일, 인상범위 7.5%-13.5%의 조정안을 내놓았다. 공익위원들은 24일 열릴 4차 전체위원회까지 노사 양측이 수정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저임금은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이라는 목적으로 지난 1988년 처음 시행되었다. 그러나 그간 과연 최저임금제도가 얼마만큼 그 취지에 걸맞는 역할을 해왔는지 의문이다. 매년 최저임금 결정은 임금교섭과 같은 형태로 노사 양측의 줄다리기와 ‘몇 % 인상이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동자·사용자·공익위원들 각각 9명 씩 동수로 구성되어있다. 노동자위원들과 사용자위원들이 동수인 상황에서 실질적인 결정권은 공익위원들이 가지기 마련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심의가 시작되면 노사 양측이 요구안을 내고, 교섭을 벌이다가 마지막에 가서 표결을 한다. 이때 공익위원들이 조정안의 범위 내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그 해 최저임금은 결정된다.
노동계는 최근 3년간 통상임금의 50%를 요구안으로 내걸고 교섭을 진행해왔지만, 단 한 번도 그 목표가 실현된 적은 없다. 노동계가 교섭을 잘 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그 ‘교섭’ 자체에 있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자본가들이 베푸는 ‘시혜’가 아닌 노동자라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권리’이다. 과연 노동자들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가 27명 위원들의 교섭에 의해 좌우될 성질의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OECD가 적용하는 저임금노동자의 기준(상용직 노동자 중위임금의 2/3)에 따르면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의 규모는 7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또 통계청에 따르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125만 명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최저임금이 결정되면 노사 양측 모두 호들갑을 떠느라 정신이 없다. 사용자들은 ‘몇 %나 올랐다’고, 또 노동계는 ‘부족하지만 지난해에 비해 몇 % 올랐다’식의 생색내기에 바쁘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인상률’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권리를 확정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여러 가지 제도적 보완들이 필요할 것이다. 지난 4월 최저임금법 개정안에 포함되지 못한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 또 그 이전에 결정기준 역시 단순히 통상임금의 50%가 아닌 실질적인 생계비를 고려해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은 결정방식 하에서는 ‘최저임금 현실화’는 요원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한 청소용역노동자가 한 달을 일하고 받는 돈 64만 원. 그의 노동의 가치가 과연 64만 원 밖에 되지 않는가? 이 물음에 대해 누가 답을 해주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저임금노동자인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최저임금이 곧 현장에서 저임금 책정의 근거로 작동되고 있는 현실을 잊어선 안 된다. 최저임금이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는 법적·제도적 토대가 되고, 사용자들에게는 저임금 노동착취의 정당성을 제공해 주고 있지는 않은지?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 실질적으로 그 정당성을 노동자들 스스로가 승인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