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브라더상 수상 : 주민등록번호제도, 정통부, 삼성SDI

22일 '2005 빅브라더상' 시상식 열려


국민의례와 지문인식으로 시작된 ‘2005빅브라더상’ 시상식

“국민의례에 앞서 참석자 확인이 있겠습니다. 참석해 주신 귀빈들께서는 오른쪽 팔거리 위에 다섯 손가락을 찍어 지문을 입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C187번 분은 장갑을 벗고 손가락을 찍어 주세요”

때 아닌 ‘국민의례’와 ‘지문인식’, 한 해 동안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가장 침해한 기업과 정부그리고 그들이 추진한 사업의 ‘공로’를 치하하는 자리인 빅브라더상 시상식은 가장 ‘빅브라더스러운’ 방식으로 시작됐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2005 빅브라더’ 시상식이 23일 오후 7시부터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 아트홀에서 진행됐다. 이날 시상식에는 사회단체 회원과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해 한 해 동안 프라이버시 침해에 ‘헌신한’ 이들의 노고를 기렸다.

  힙합그룸 '실버라이닝'의 공연

수상자가 단 한명도 참석하지 않은 이날 시상식은 영화제 시상식을 패러디한 꽁트 형식으로 꾸며졌다. 시상식장 안에는 경찰복장을 한 스탭들이 참석자들에게 주민등록증 제시를 요구하며, 불심검문 벌이는 등 이날 시상식은 곳곳에서 ‘빅브라더 사회’를 풍자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주민등록증 제시를 요구받은 한 참석자는 “이거 왜 이래, 나 인권단체 회원이야”라고 너스레를 떨어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약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이날 시상식은 각 부문별 시상을 비롯해 문화공연으로 채워졌다.

2005빅브라더상 수상자, ‘주민등록번호제도’, ‘정보통신부’, ‘삼성SDI' 선정

이날 시상식의 첫 수상부문이었던 ‘가장 끔찍한 프로젝트상’에는 예상대로 ‘주민등록번호제도’가 선정됐다. ‘가장 끔찍한 프로젝트상’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가장 심각하게 위협한 사업이나 제도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수상 트로피는 주민등록증의 ‘이름 모델’로 자주 등장하는 ‘홍길동’씨가 대신 받았다. 홍길동 씨는 수상 소감을 통해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너무 기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구청마다 내 주민등록번호가 다르다. 나도 제대로 된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싶다”며 “나도 ‘민증까서’ 나이 확인하고, 수표에 이서하고, 인터넷 성인사이트에도 가입하고 싶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가장 끔직한 프로젝트상'을 대신 수상한 '홍길동'씨가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날 상을 받은 주민등록번호제도는 심사위원단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검찰과 경찰의 신원확인 유전자DB 구축 사업이 경합을 벌였으나, 심사위원단은 주민등록번호제도의 상징성에 손을 들어 주었다. 심사위원단은 “시행된 지 30년이 된 제도이며 이미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시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없지는 않았으나, 프라이버시 침해에 있어 주민등록번호제도의 상징적 지위를 감안할 때 첫 번째 빅브라더상의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특별상인 ‘내귀에 도청장치 상’은 2005년 최고의 화제작 ‘X파일’의 주연을 맡은 바 있는 국가정보원이 받았다. 당초 국가정보원은 후보 공모에서 후보로 추천되지 않았지만, 심사위원단의 강력한 추천에 의해 특별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정부기관에 수여하는 ‘가장 가증스러운 정부상’에는 인터넷실명제와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한 정보통신부가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은 “지난 2003년에 이어 올해 또다시 인터넷 실명제를 추진하면서 익명의 권리를 말살하고 있고, 연구용 생체정보 DB를 구축하기 위해 법적 근거도 없이 3천 6백명의 지문정보와 2천여 명의 화상정보를 수집했다”며 “개인정보 보호의 책임을 자처하면서도 정작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인터넷의 자유를 말살하는 여러 가지 정책을 펴 온 명실상부하게 ‘가증스러운’ 정부기관”이라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특별상 '내귀에 도청장치상'을 수상하고 있는 국가정보원


한편, 네티즌들 온라인 투표로 결정하는 ‘인기상’에는 강력한 후보였던 삼성SDI와 성진애드컴을 제치고 검경의 ‘신원확인 유전자DB 구축사업’이 선정됐다. 빅브라더상 홈페이지에서 진행된 네티즌 투표에는 총 589명이 참여했고, 이중 검경의 신원확인 유전자DB 구축사업은 17%인 104표를 받았다.

'가장 탐욕스러운 기업상‘에는 ’삼성SDI'가 아닌 ‘유령’이

이날 마지막 수상부문이었던 ‘가장 탐욕스러운 기업상’은 ‘삼성SDI를 떠도는 유령’이 받았다. 삼성SDI는 노조 설립 활동에 관여한 전현직 직원 12명에 대해 지난 2003년부터 2년간 휴대폰 위치추적을 한 의혹을 받아왔다. 이날 수상자가 ‘삼성SDI'가 아닌 ’삼성SDI를 떠도는 유령‘인 이유에 대해 심사위원단은 “검찰은 위치추적을 직접 실행한 ’누군가‘를 밝히기 어렵다는 이유로 6개월 만에 수사를 중단하여 유령의 소행으로 몰고갔다”며 “당초 삼성SDI가 후보로 추천이 되었으나 삼성SDI의 관련성이 검찰 수사에 의해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유령‘이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또 심사위원단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검찰의 무능력과 불성실까지 결합된 사건이고, 위치추적이라는 신기술이 개입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것에 주목해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진행된 2005빅브라더상 시상식은 다산인권센터,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위원회, 언니네트워크, 지문날인반대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함께하는시민행동 등이 공동 주관하고, 빅브라더상 조직위원회가 주최했다.

빅브라더상 조직위원회는 이번 시상식을 위해 지난 달 31일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각 부문 후보를 공모했고, 정보화·인권·법률 등 각계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엄중한 과정을 거쳐 심사했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단에는 도강호 서울대 이공대신문사, 박근서 대구카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안태윤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이인호 중앙대 법대 교수, 전웅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 조지혜 언니네트워크 대표, 지승훈 오이지소프트 대표이사, 하승창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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