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에 살으리랏다

대추리, 빈집 점거로 공동체 지키기 위한 불씨 일어

  '인권지킴이네 집' 내부 수리 중인 인권활동가들/권회승 기자

"누군들 가고 싶어 가겄어? 잘 가라 했어"

7일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황새울 들녘이 내려다 보이는 2층 주택, 전날 대추초등학교를 경찰, 국방부 직원, 용역철거반원으로부터 온몸으로 막아낸 인권활동가 10여 명이 집수리에 부산하다.

마당에서는 어설픈 몸짓으로 톱질을 하고, 한쪽에서는 위험해 보이는 다 깨져나간 유리 창문을 정리하고 있다. 또 2층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남정네 4명이 숨을 몰아쉬며, 어디선가 주워온 냉장고를 옮기고 있었다. 실내의 방문과 집기들이 다 부수어져 있었지만, 집은 지은지 얼마 안 된 듯 때깔이 반지르르하다. 게다가 실내는 족히 20명은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큼직하고, 마당은 ‘가든파티’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1달 전까정 이장이 살던 집이여. 지은 지도 얼마 안됐어. 곱게나 나가지. 왜 나가면서 다 부수고 나가는겨” 떠난 이들의 야속함에 연신 혀를 차던 김양분 할머니는 “이 집이 마을에서 제일 좋은 집 중 하나여. 봐봐 다 말짱하잖여. 여기 마당에서 열리는 과일만 먹고 살아도 배가 부르다 했어”라며 집주인도 아닌 이가 때 아닌 남의 집 자랑을 한다.

미군기지 이전문제로 마을이 두 동강 나기 전까지만 해도 김양분 할머니는 이 집의 주인네 식구들과 함께 논도 일구고, 고기도 굽고 했을 터이다. 내 집, 내 땅은 아니지만, 고향을 등지고 떠난 이들에 대한 얄궂은 마음이 가득할 터인데 김 할머니는 “그래도 어쩌겄어. 누군들 가고 싶어 가겄어? 내가 잘 가라 했어. 가서 잘 살라고, 그리고 생각날 때 놀러오라 했어..”라며 말끝을 흐린다.

  한신대 학생들이 머물고 있는 '한신대하우스' 전경/권회승 기자


  예술가들의 공간인 '들사람들'/권회승 기자

빈집점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작은 몸짓

이곳 대추리에는 오랜 싸움 끝에 땅과 집을 두고 떠나는 이들의 집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총 140여 가구 중 70여 가구가 협의매수를 했고, 현재 25가구 정도가 이사를 가 빈집으로 방치되어 있다. 이 집도 그 중 하나였고,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흉물스레 방치되어 있던 집을 ‘무단’ 점거한 것이다. 이 집의 현관에는 ‘인권지킴이네 집’이라는 문패 아닌 문패가 붙어있다. 인권단체로 구성된 인권단체연석회의 소속 단체 활동가들이 앞으로 이 집에서 공동생활을 할 예정이다.

최근 대추리에는 ‘인권지킴이네 집’처럼 방치되어 있던 빈집이 사람들의 온기로 하나둘 채워지고 있다. ‘빈집점거운동’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국방부로 넘어간 집들을 허락 없이 꿰차고 앉은 객들은 굳이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려 하지 않았다.‘인권지킴이네 집’ 수리를 하고 있던 배여진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는 “보시다시피 이 집 전망이 정말 좋거든요. 지평선 넘어 해가 지는 광경은 장관이에요. 미군기지 때문에 이런 곳을 두고, 주민들이 한분한분 떠나고 있어요. 너무 안타까워요. 우리라도 이 자리를 지켰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인권지킴이네 집’ 인근 빈집에서 올 초 부터 살고 있는 동소심 활동가는 “군사주의, 그리고 그 폭력에 의해 아름다운 이 마을의 공동체가 깨지고 있다”며 “대추리 빈집에 들어와서 사는 것은 군사주의에 반대하고, 깨져가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작은 몸짓”이라고 설명했다.

  동소심 활동가가 머무는 집의 보일러실?, 이 집은 직접 아궁이에 불을 지펴 난방을 한다/권회승 기자

동소심 활동가에 따르면 현재 대추리에 있는 10여 곳의 빈집이 외부 사람들에 의해 ‘점거’됐다. 그 중에는 오아시스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태춘 씨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점거한 ‘들사람들’, 평화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의 집, 한신대 학생들이 머무는 ‘한신대하우스’ 등 다양한 사람들이 대추리의 빈집 곳곳에 머물고 있다.

또 ‘인권지킴이네 집’처럼 현재 수리와 공사가 진행 중인 집도 여러 곳 있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빈집들은 대부분 집 구조는 그대로이나 내부가 흉물스럽게 부수어진 채 방치되어 있다. 동소심 활동가는 그 이유에 대해 “국방부에서 빈집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지 못하게 하도록 나가는 사람들에게 집을 부수라고 지침을 내리고 있다”며 “얼마 전에는 국방부에서 빈집을 무단 점유할 경우 처벌하겠다는 계고장을 붙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빈집점거운동은 대추리 주민들에게도 큰 위안이 되고 있었다. ‘인권지킴이네 집’ 수리를 도우러 온 한 할머니는 “우리 마을 지켜준다는데, 너무너무 좋고, 고맙지. 어제까지 사람이 살던 집이 다 부수어진 채로 내버려져 있는 데 을씨년스럽지 않컸어”라며 “그래도 이네들이 오니까 사람 사는 것 같고 좋잖여. 고맙지, 암 고맙고말고”라며 활동가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권회승 기자

대추리에서 죽으리랏다

그러나 빈집을 점거한 이들, 그리고 대추리 주민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미 땅의 소유권은 국방부로 모두 넘어간 상태이고, 국방부는 영농행위 봉쇄와 강제철거를 곧 진행할 태세다. 동소심 활동가는 “버티는 데 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데 까지 주민들과 함께 이곳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김양분 할머니는 이보다 더 단호했다. 김 할머니는 ‘끝내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면 어떡할 생각이냐’는 물음에 “죽을껴”라는 외마디 답변을 내놓는다. 김 할머니는 “난 못 나가, 가긴 어딜 가? 21살에 시집와서 여서 47년을 살았어. 여가 내 죽을 곳이여, 난 아무데도 안 갈껴”라고 말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인권적인 측면에서 평택투쟁은 아무런 동의 없이 제 나라 백성을 삶의 터전에서 내모는 반인권적 국가 정책에 저항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빈집점거운동에 대해 “거리에서의 투쟁도 중요하지만, 생활로 이겨내는 부분도 중요하다”며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주민들과 함께 생활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

빈집점거운동과 같은 인권·평화활동가, 학생들 그리고 전쟁에 반대하고 공동체를 지키려는 모든 사람들의 작은 몸짓이 대추리를 지켜낼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일명 나눔공작소(재활용품센터). 빈집 거주자들이 필요없는 물건을 이곳에 두면,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다 쓰게 된다/권회승 기자

  '한신대하우스'. 창틀과 문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 달았다/권회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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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 주한미군기지 , 대추리 , 빈집점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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