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너머’ 행동 매뉴얼로 업그레이드, 랄랄라~

[월드컵 너머 연속기고](1) - 월드컵 일방주의의 반역을 시작함

독일 월드컵의 편안한 시청을 위해 방글라데시 한 대학생들은 본부와 투쟁해 시험 기간을 7월로 연기시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인․민들은 값비싼 위성 수신료에 반대하는 공동투쟁을 펼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영국에서는 한 호텔이 소위 월드컵 기간 중 ‘축구과부’들을 위한 특별 서비스를 내놓았다. 신문의 스포츠지면을 잘라낸 채 제공하고, 축구중계 대신에 <더티 댄싱>과 같은 DVD를 튼다. 종업원이 축구에 관해 발설이라도 하면, 호텔 측은 그걸 엿들은 투숙객에게 샴페인을 벌칙으로 내놓는다. 깜찍하다. 예약이 쇄도하고 있단다.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한걸음 나아갔다. 월드컵 이야기에 질린 여성들의 반역이 시작되었다. ‘월드컵은 지옥으로나 가라!’ ‘축구로부터 자유로운 네덜란드를 위한 여성’ 모임이 오렌지 색 축구 광기의 남성 호르몬들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선 것이다. 축구중계로 가득 찬 텔레비전을 고발했다. 그래서 이들이 내건 열 가지 조건 중에는 월드컵중계 한 시간 당 <섹스 앤 시티>와 같이 여성이 즐겨 시청하는 드라마를 트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발랄한 발상, 적극적 공모가 재미있다. 이렇게 월드컵은 반드시 보편적인 스포츠가 아니다. 특히 자본이 주도하고 남성가부장적 국가(주의)와 결탁한 현대의 월드컵은 더욱 그렇다.

지금 현재 한국사회에서 ‘월드컵’은 한 마디로 말해 제어불능의 권력으로 작용한다.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다. 보편의 열정을 가장해 모두를 전체의 광기로 불러 내세운다. ‘국민’으로 호명하고, ‘광장’으로 동원한다. 서울시청 앞터 사용권을 독점한 ‘SK 텔레콤 콘소시엄’, 이에 동참한 KBS, MBC, <조선일보>의 치밀한 작업내용이다.

완장이 설치는 광장은 더 이상 광장이 아니다. 앉을 자리, 서 있을 자리가 지정된 광장, 울타리가 쳐지고 다녀야 할 통로가 지정된 광장을 아무도 광장이라 부르지 않는다. 광장에서 시민은 자율의 아름다운 미덕을 발휘하나, 강제된 공간에서는 오히려 변덕을 부린다. 통제규율의 불쾌함에 대한 보복이다. 그래서 쓰레기가 나뒹군다. 가나와의 평가전 이후 시청앞 풍경을 두고 <세계일보>는 ‘거대쓰레기투성이의 응원현장’이라고 비꼬았다. 그렇다. 제어 없는 자본의 논리가 날뛰는 곳에, 일방적 상업주의가 판을 치는 곳에 거대한 쓰레기 더미만 남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아무리 구멍 난 잔디를 매일매일 땜질하고 그 전면에 화려한 무대를 설치하며, 짧은치마 입은 소녀들을 내세워 태극기를 휘둘러대도 피할 수 없는 게 쓰레기의 잔해다. ‘대한민국 만세’의 구호를 떠나갈 듯 내지른다 해도 덮을 수 없는 게 산적한 오물의 운명이다. 이렇게 광장은 금방 쓰레기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

어찌 이 뿐이겠는가? 광기의 쓰레기는 신문과 방송이라는 다중의 광장, 공적영역에도 철철 넘쳐흐르고 있다. 구토증 나는 진물이 일상으로 잔뜩 베어들고 있다. KBS 본관에 내걸린 대형 걸게 사진들, MBC 스포츠국 복도를 도배한 홍보포스터들은 월드컵에 미친 이 땅의 ‘공영방송’들의 정신상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지난 가나전은 월드컵 대표팀의 평가전이 아닌, 중계 방송사들의 양보할 수 없는 평가전에 불과했다. 국가연주 때 꽹과리를 친 응원단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응원에 열중하다 보니 상대방 국가가 연주되는지 몰랐다고 변명했다. 수긍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찌 이들만 탓할 수 있겠는가? 이토록 우리의 의식, 모두의 눈과 귀를 멀게 한 주범은 대체 누구인가? 시도 때도 없이 응원의 꾕가리를 쳐대는, 자발적 열기를 넘어 몽환의 광기로 전체를 애국의 응원판으로 내몰고 있는 당사자는 누구인가? 지겹도록 ‘대한민국’을 호명하는 기관은 누구인가?

합리적 여론광장, 민주적 언론광장, 카니발적 문화광장의 기능을 망실한 방송사들이 아니던가? 수구신문들과 함께. ‘붉은악마’가 상업주의적 변질을 반성하고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한국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등이 ‘월드컵 광풍’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진지하게 성찰하기 시작했을 때, 공영방송사들은 자본과 권력, 선전과의 공고관계를 여전히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인․민의 자발성이 부재한 응원은, 에너르기의 역동적 발동이 없는 월드컵응원은 축제가 아니다. 놀이는 선전을 모른다. 놀이 자체를 위하지 않은 것은 전부 가짜다. 상품이고 신화다. 우리를 물구나무서게 만드는 판타스마고리아다. 공권력에 침탈당하는 노동자들을, 협상에 들어간 한미FTA를, 길거리에 내몰린 KTX 여승무원들과 평택주민들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다. 그런 쓰레기로 득실대는 서울시청 앞은 선전무대에 불과하다. 월드컵에 집착하는, 몰입을 선동하는 공영방송이 바로 그 거짓광장의 모퉁이를 턱하니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유희의 시간, 해방된 축제의 공간을 허하지 않는 나쁜 방송이다. 아무리 현란한 스펙터클의 기술을 구사해도, 자본의 배후, 선전의 본성을 감출 수 없다. 이후를 어떻게 감당할 건가? 황우석 사태를 통해 배운 게 정말 아무 것도 없는가? 월드컵 중계방송은 끝나도 복잡현실은 계속된다. 스스로 허접한 쓰레기로 취급되고 싶지 않다면 광기를 빨리 접으라.

텔레비전이여, 우리를 제발 쓰레기 난잡한 후진 공연의 관객으로 내몰지 마시압. ‘월드컵 너머 캠페인’ 행동 매뉴얼을 스스로 업그레이드시키라. 월드컵과 편히 놀고자하는, 광장 즉 공적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월드컵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사태를 책임지고자 하는 보통시민의 통첩이다. “새벽잠 떨치고 분연히 일어나 월드컵을 넘어서자!”는 게릴라전이 신나게 다가온다. 진정한 카니발적 발상, 전복적 놀음이다. 랄랄라~
덧붙이는 말

전규찬 님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민중언론 참세상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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