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전폭적 지지받으나 집권 프로젝트 난항 예고

한상진 현지 보고서, “미국과 이스라엘, 헤즈볼라 집권 용납할지 미지수”

지난 10일 레바논에 들어간 한상진 평화활동가가 전쟁으로 인한 레바논 피해상황과 헤즈볼라․레바논․이스라엘 군대 및 정부 등의 정세 동향을 개괄적으로 담은 1차 현지보고서를 보내왔다. 한상진 활동가는 현재 레바논에 체류하며, 현지 조사 작업 및 다양한 반전평화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한상진 활동가가 작성한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표면적으로는 종전이 되었지만 국경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측의 군사적 도발이 계속되고 있어 현재까지 양측의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1일에도 이스라엘 군은 레바논 국경을 넘어 소도시인 ‘타이베’ 인근에서 하루를 주둔한 뒤 철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스라엘, 무력 도발과 영토 침탈 일삼고 있어”

또 헤즈볼라 저항의 주요 거점지역인 레바논 남부의 ‘벤트 즈바일’ 도시 뒷산에는 이스라엘 군이 현재까지 주둔하고 있고, 지난 17일에도 헤즈볼라 무장요원들과 이스라엘 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는 등 국경을 침범한 이스라엘의 무력 도발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보고서는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국경 지역 상황과 관련해 “레바논 쪽 국경은 거의 국경 경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이스라엘 군이 원할 때는 언제나 국경을 넘어서 레바논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철수할 수 있는 상황이고, 이스라엘 쪽에서는 레바논 쪽 국경 인근에서 조금만 수상한 동향이 보이면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보고서는 이스라엘 측이 레바논 침공의 이유로 주장한 헤즈볼라에 의한 이스라엘 군 납치 설에 대해 “국경 상황에서 알 수 있듯 헤즈볼라가 국경을 넘는 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헤즈볼라가 국경을 넘어와 이스라엘 군인을 납치한 후 철수했다는 것 보다는 헤즈볼라 전투원이 국경을 넘어와 임무를 수행하던 이스라엘 군인을 체포했다는 헤즈볼라 측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보고서는 이스라엘 군의 국경 침범과 더불어 “이스라엘은 국경선의 일부 지역에서 철책선을 이동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레바논을 침공하면서 자신들이 제거했던 철책선을 다시 설치하는 작업을 하면서 헤즈볼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철책선의 위치 일부를 변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명백한 불법적 국경선 변경으로 영토 침탈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하실까지 완파, 소형 핵무기 사용 가능성 있어”

레바논 지역의 피해상황과 관련해 보고서는 “현재까지 약 20여개의 마을과 도시의 피해를 확인했지만,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레바논 정부는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레바논 전역에 걸쳐 1만5천여 채의 가옥이 파괴되었고, 약 1천2백여 명의 사망자와 약 4천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아직 건물 잔해 제거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건물 더미 속에 묻혀있던 사망자가 새롭게 발견되고 있고, 전쟁 복구 과정에서 무너진 건물더미에 다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특히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군의 폭격이 집중된 레바논 남부의 경우 교량의 약 90%가 파괴된 상황이라며 “나머지 파괴되지 않은 몇 개의 다리는 이스라엘 미사일이 빗나갔거나 이스라엘 군의 이동에 필요해서 파괴하지 않고 남겨둔 다리들로 보인다”고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또 보고서는 “파괴된 건물들 중 10여 층 이상의 건물들이 여러 채 있었고, 이들 건물의 지하실까지도 파괴된 점으로 미뤄봤을 때 소형 핵무기 사용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 이미 알려진 대로 이스라엘 군이 폭격에서 대량으로 살포한 집속폭탄(클러스트 폭탄, 공중에서 지뢰와 같은 소형폭탄 수백 개를 동시에 뿌리는 폭탄)으로 인해 하루 평균 4명꼴로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고, 제거되지 않은 집속폭탄으로 인해 주민들이 현재까지도 자유롭게 이동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레바논 정부 기능 상실, 민심 헤즈볼라로 완전히 기울어져

헤즈볼라와 레바논 정부의 휴전 후 동향과 관련해 보고서는 우선 “레바논 정부는 전쟁 기간 중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줬고, 현재도 이스라엘과의 국경통제 업무를 포기하는 등 정부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전쟁 이후 남부의 일부 지역에 정부군이 파견되었지만, 거의 하는 일이 없는 상황”이라고 국가 관리 기능을 상실한 레바논 정부의 현 상황을 전했다.

반면, 레바논 남부 도시 ‘벤트 즈바일’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헤즈볼라의 동향과 관련해 보고서는 “헤즈볼라는 남부지역 시아 무슬림지역 도시와 마을 대부분의 치안유지까지 담당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번 전쟁 이후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확대되어 기독교인들마저도 헤즈볼라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데 주저할 정도”라고 종전 후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헤즈볼라의 높아진 위상을 전했다. 또 보고서는 헤즈볼라의 영향력 확대에 따른 레바논 중앙정부 위축은 레바논 남부지역뿐만 아니라 수도인 베이루트에서도 확인된다고 덧붙였다.

전쟁 후 헤즈볼라로 완전히 기울어지고 있는 레바논 민심과 관련해 보고서는 “주민들은 헤즈볼라에 거의 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레바논 정부에 대해서는 실망을 넘어서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며 “베이루트 시내에서 만난 한 시민은 ‘레바논엔 정부가 없다’라고 단언했다”고 전했다.

“대 레바논 관계, 이스라엘 국내 정치 상황 변화에 달려”

보고서는 유엔결의안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군사적 도발 행위는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는 “이스라엘이 오는 22일까지 철수를 완료하겠다고 발표하였지만, 원할 때는 언제든지 국경을 넘을 수 있고, 그들이 스스로 받아들인 유엔의 휴전 결의안을 무시로 무시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철수 자체가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보다는 이스라엘 내부의 정치 상황이 향후 대 레바논 관계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현재 이스라엘 내에서는 전쟁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고, 에후드 올메르트 현 이스라엘 총리가 물러나고 다시 강경파가 집권할 경우 레바논에 대한 재침공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서는 점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헤즈볼라 집권 용납할지 미지수”

레바논 국내 정세와 관련해서는 헤즈볼라의 약진과 함께 향후 정국이 본격적인 파워게임에 돌입할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했다. 보고서는 “현재의 선거 제도 하에서는 헤즈볼라가 아무리 영향력을 확대하더라도 정권을 잡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정치 세력화를 추진하고 있는 헤즈볼라는 선거제도의 전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정파간 이해의 충돌로 인해 상당한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며 “또다시 시리아와 이스라엘 등 이웃 나라들의 개입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보고서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시아파 내부의 파벌들 간 그리고 수니파까지 헤즈볼라의 깃발 아래 뭉치게 되었기에, 만약 선거 제도가 바뀌게 된다면 시아와 수니로 나뉘면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슬림들이 기독교 세력에게 내줬던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선거제도 개편을 전제로 한 헤즈볼라의 집권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렇게 될 경우 친 이란계 시아파가 수니파를 끌어안으며 정권을 잡는 모양새가 되므로 중동지역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런 상황이 전개되는 것을 용납할지는 미지수고, 유엔 잠정군의 존재와 관계없이 또다시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해 들어올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