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파병의 정치학

[파병반대 연속기고]ⓛ전쟁의 정치가 아닌 반전평화 운동의 정치를

지난 12일 이라크 파병연장안이 또 다시 국회 국방위원회를 통과됐다. 또 정부와 여당은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레바논 신규 파병도 추진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연장안과 레바논 파병안은 오는 15일 열릴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시되고 있다. 그간 운동진영은 이라크와 레바논 파병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철군'과 '파병계획 철회'를 한 목소리로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스스로의 약속도 저버린 채 또 다시 침략전쟁의 동조자로 나서길 자처했고, 보수정치권은 늘 그래왔듯 침묵한 채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 이에 <민중언론 참세상>은 반전평화운동에 지속적으로 결합해 온 활동가들로부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라크, 레바논 파병의 문제점과 향후 운동진영의 대응 방향 등을 3차례에 걸쳐 들어볼 예정이다. [편집자주]

15대 1

이라크 파병연장안이 지난 12월 12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통과되었다. 재석 16명 가운데 15대 1이라는 표결 결과였다. 정부의 파병연장안에 대해 열린우리당에서는 그동안 당론이라던 ‘2007년 임무종결’ 문구조차 집어넣지 않고 정부 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국방부장관은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문구에 명시하지는 못하지만 구두로는 내년에 철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로써 파병연장안은 14~15일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 통과 절차만 남았고 별다른 반발 없이 통과될 전망이다.

2003년 4월의 서희 · 제마부대 파병, 2003년 말 자이툰 부대 추가파병 결정, 2004년 말 파병연장, 2005년 말 파병 재연장에 이어 다섯 번째 파병(연장) 결정이다. 그러나 올해에도 파병연장은 파병에 대한 어떠한 제대로 된 평가나 사회적 공론화 과정도 없이 ‘묻지마’ 파병, ‘자판기’ 찬성으로 결정되었다.

정부나 열린우리당은 2300명의 자이툰 부대를 내년 4월까지 1200명 수준으로 감축한다고 하고, 내년에 철군할 것이라고 흘려 우리의 시야를 가렸다. 그러나 립서비스 수준에서 임무종결을 고려하겠다는 정부나, 스스로의 당론마저 배반한 열린우리당이 내년에 가서 말을 바꾸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국 내 반전여론으로 인해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하고, 국내에서도 철군 압력이 높아지자 저들은 임무종결 운운했으나 결국은 미국 정부와 한국 지배자들의 의도대로 ‘1년 더’라는 추잡한 결정을 한 것이다. 한편에서 한나라당은 이라크 파병의 충실한 ‘응원단장’이자 ‘박수부대’로서 권고적 찬성 당론을 정하고 정부의 결정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노무현 정권의 이율배반

파병연장 동의안은 파병연장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유엔 회원국으로서 전후 이라크의 신속한 평화정착과 재건을 지원하는 국제적 연대(連帶)에 동참함으로써 세계평화에 기여함은 물론, 이라크 정부의 요청, 다국적군과의 관계, 한·미 동맹관계 및 파병효과 제고 등을 고려하여 이라크에 파견된 국군 평화‧재건지원부대의 파견기간을 1년 연장하려는 것임.”

첫째, ‘전후 이라크’. 이라크는 전후가 아니다. 아직도 미군 중심의 점령군 하에서 전쟁이 지속되고 있고 최근에는 점령 정책이 초래한 종파간 갈등 때문에 저강도 내전 상황으로까지 진단되고 있다.

둘째, ‘신속한 평화정착과 재건을 지원하는 국제적 연대에 동참’은 없다. 미국의 침략과 점령을 도와주는 전쟁연대가 있을 뿐이지 평화연대는 없는 것이다. 점령 자체가 폭력과 갈등의 유발 요인이다. 그리하여 이라크 민중이 65만 명이 죽어갔고 수도, 전기, 가스, 교통, 교육, 의료 등 보편적인 공공서비스가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실업률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 아닌가.

셋째, ‘세계평화에 기여’는 최대의 헛소리다. 테러와의 전쟁 자체가 평화를 파괴해 왔고 지난 9.11 이후 5년 동안 세계를 증오와 갈등으로 몰아넣어 더욱 위험하게 만들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팔레스타인, 레바논에서 미국은 수천억 달러를 쏟아 부어 전쟁을 벌였지만 고통만 확산되었고, 미국의 위상은 높아지기는커녕 수렁으로 추락했다.

넷째, ‘이라크 정부의 요청, 다국적군과의 관계, 한·미 동맹관계 및 파병효과 제고’. 이라크 정부가 요청한다고 주둔할 필요는 없다. 더욱이 지금의 이라크 정부는 친미정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국적군과의 관계, 한․미 동맹관계 및 파병효과 제고’ 이 부분이 앞에서 언급한 온갖 미사여구 속에 감춰진 본질일 것이다. 즉 미군, 미국과의 관계나 한국 자본의 진출 여건 마련 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미국의 실패

냉전 이후 미국은 전쟁을 지속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불평등과 배제, 빈곤과 억압 때문에 불만이 터져 나오면 미국은 이를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과도한 군사력을 사용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혼란이 끝없이 계속되고, 군벌과 탈레반이 수도를 제외한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2만명의 미군, 3만명의 나토군은 병력을 더 요청하고 있다. 전 국토의 60%에 전기공급이 중단되었고 국민 80%가 식수공급을 못 받고 있다고 한다.

테러와의 전쟁 3대 전선 중 하나라는 레바논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을 앞세워 전쟁을 벌여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레바논 사람들이 죽고 나서야 전쟁을 일시 중단했다. 이스라엘이 재침략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테러와의 전쟁은 이주자들과 무슬림 공동체, 빈민층에 대한 억압도 포함하고 있다. 자본가들과 부자들, 지배엘리트들은 도전과 저항을 하는 이들을 위험세력으로 탄압한다. 미국의 ‘애국자법’을 필두로 전 세계에서 ‘테러방지법’류의 각종 법안이 제정되어 시민의 정치적 자유와 인권을 제한하고 무고한 이들을 영장 없이 구금하고 ‘새로운 기법’이라는 미명하에 고문을 정당화해 온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신자유주의적으로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의 실패이자 미국의 실패와 무능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부시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미국은 더 많은 군대와 무기가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팔레스타인, 레바논 전쟁에서 손을 떼고 군대를 철수시켜야 한다. 이라크에서 미군을 줄이고 재배치하여 신속기동군으로 만들어 미군기지에 장기주둔 한다면, 그것은 실패한 점령을 반복하여 더 큰 실패와 민중의 고통을 가져올 것이다.

운동의 전망

노무현 정권은 미국의 글로벌 대테러 동맹에 계속 동참하여 이미 추악한 전쟁과 폭력의 공범이 되었다. 왜 우리가 정의와 평화의 반대편에 서야 하나? 이미 미국과 영국, 자이툰 부대의 병사들은 쓸데없고 부질없는 전쟁에서 살아 돌아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을 뿐이다.

그 동안의 반전평화 운동의 끈질긴 제기, 이라크와 중동에서 지속되는 전쟁의 실패, 더욱 커지는 민중의 고통으로 인한 반감 등을 이유로 해서 세계에서는 이미 철군 여론이 대다수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최근 워싱턴포스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 국민의 69%는 전투병력을 완전 철군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파병연장에 반대한다는 입장이 90%에 달한다는 KBS 여론조사 결과가 있다.

이미 이라크 전쟁과 파병은 역사적이고 대중적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지지율이 바닥을 치는 미국과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역사와 민중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점령과 파병을 가능한 시기까지 고수할 만한 힘은 갖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운동의 정치는 계속 중요하다. 한미 FTA, 비정규직 개악법안, 노사관계로드맵, 평택 미군기지 확장 등 어느 해보다 많고 중요한 이슈들이 동시적으로 전개되어 파병반대에만 힘을 쏟기 어려웠다. 그러나 내년 이후를 전망해 보더라도 반전평화 운동을 더 넓고 깊게 일구는 것은 역량을 기울여야 할 과제다.

미국 반전평화 운동은 양대 전쟁정당에 확실한 제동을 걸기 위해 내년 1월 새로운 의회 개원에 맞추어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를 계획하고 있고, 3월 이라크 침공 4년에 즈음한 국제적 시위도 호소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14일 3시 국회 앞에서, 16일 3시 종각 앞에서 철군을 위한 행동을 이어나가고, 65시간 평화행동과 같은 자발적인 행동도 진행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낳은 이 전쟁과 빈곤의 시대에 세계의 민중과 함께 평화와 정의와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블루 오션’임을 믿어 의심치 말자. 운동을 확대하고 더 많은 이들이 행동으로 나서게끔 하자. 전쟁과 파병의 정치가 아니라 반전평화 운동의 정치가 압도하게 하자.
덧붙이는 말

정영섭 님은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로 파병반대국민행동 기획단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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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 파병 , 반전평화 , 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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