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들 혹은 웃음과 피부색의 혼성들

[고길섶의 쿠바이야기](1) - 쿠바노스의 얼굴들

  /고길섶


2006년 가을에 쿠바에 다녀왔습니다. 내가 보고 느낀 바들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나는 단순히 관광객으로서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놀면서 그들의 삶을 느껴보고자 했습니다. 몇 회가 될지 모르겠으나 조금씩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부안에서 배워야 할 것들도 많이 있어 보입니다. <필자>

쿠바에 머물면서 언제부턴가 나도 몰래 그이들의 얼굴 사진들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그이들 얼굴사진을 다 모아 감상하다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합니다. 그이들의 포즈가 십중팔구 아주 자연스럽게 환하게 웃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나는 내 얼굴을 누가 찍을 때 웃는 모습으로 찍히려 해도 부자연스럽고 잘 안됩니다. 볼테기 살이 치켜지며 주름을 만들어내 어설퍼보입니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의 인물 사진들은 자못 진지해진 표정으로 굳어 있습니다. 얼굴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움직이지 않는 얼굴은 실패작입니다. 고뇌의 표정으로 피사체가 된다 해도 멈춰 있는 게 아니라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그의 얼굴은 그 생애의 살아있는 서사가 됩니다. 고뇌하는 얼굴을 표현하기도 어렵지만 환하게 웃는 얼굴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웃는다는 것은 말 건네기이며 소통하자는 것입니다. 어쩌면 쿠바 사람들은 그걸 자연스레 터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이들의 웃는 모습은 연기가 아니라 활력입니다.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웃음들, 미치도록 정겹게 하는 표정들, 도대체 그게 궁금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가능하도록 한 건지...

  /고길섶


하나의 얼굴이 개인의 서사라면, 그 얼굴들이 모아지면 공동체의 문화사가 보입니다. 쿠바는 서양 사람으로서는 1492년 콜럼버스가 인도로 착오해 처음 ‘발견’되었으며, 그 이후 스페인의 오랜 식민지를 거쳤습니다. 이 역사 속에서 그이들의 인종 혼성사를 보아야 합니다. 어느 통계를 보면 쿠바는 전체 주민의 약 51%가 뮬라토(흑인과 스페인계 백인의 혼혈), 약 37%가 스페인계 백인, 약 11%가 흑인입니다. 치노(chino)라고 불리는 중국인들도 1% 정도 있는 모양입니다. 19세기 중반부터 이주해갔다 합니다. 조선인은 1905년 멕시코로 이주한 1035명 중 270여명이 1921년 쿠바로 이주하여 지금은 700여명 정도가 한인의 피를 이어받고 있답니다. 인디오는 안타깝게도 오래 전에 전멸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래전에 "흑인들아, 다가오지 말라!"를 뜻했던 선인장 닮은 아따하네그라 나무 울타리. 이 울타리는 지금도 간혹 보인다. /고길섶


여기서 나는 재미있는 인종 혼성의 문화를 봅니다. 우선 백인색과 흑인색 사이 피부색의 농담이 황갈색 계열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백인색과 흑인색의 뚜렷한 인종경계 구분이 없이 뮬라토라는 혼혈인종을 통해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을 드러냅니다. 물론 인종의 자유가 있기까지는 1959년 쿠바혁명이라는 역사적 조치가 있었기에 가능했을겁니다. 1950년대에만 해도 쿠바는 피부색이 분열의 이슈거리였고, 좋은 일거리를 거의 갖기 어려웠고, 엘리트클럽에의 진출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혁명 이전에는 어떤 곳은 백인들만 거주하는 지역도 있었습니다. 쿠바에는 선인장을 닮은 아따하네그라라는 나무로 된 울타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울타리의 뜻은 “흑인들아 다가오지마라”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합니다. 팔마 소리아노라는 지방에 갔을 때 안내해준 자동차 운전수가 설명하더군요. 지금은 그저 울타리일 뿐이지요. 그러나 쿠바혁명은 인종차별을 철폐합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면, 아이들이건 어른이건, 서로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끼리도 포옹하고 기쁘게 인사하며 잘 어울리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여러 인종의 아이들이 어울려 놀 때는 정말 깜찍합니다. 물론 인종차별적 요소들이 전혀 없지는 않는 모양입니다만, 인상적인 것은 “모두를 위한 평등”의 기치 하에 정부의 노력으로 인종차별의 잠재의식적인 벽을 허물어 왔다는 것이며,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조성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고길섶


인종주의는 보통 백인들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다른 종류의 인종주의를 말하고자 합니다. 동종의 인종 내에서도 인종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쿠바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바로 우리 한국사회를 말합니다. 처지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하하고 업신여기는 집단적 무의식이 바로 한국판 인종주의입니다. 가령 조선족이나 북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을 포장한 무시나 간혹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개그 표현들에서 공공연히 나타납니다. 그게 바로 내 안의 혹은 우리 안의 인종주의겠지요. 쿠바 사람들에서는 적어도 그런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전통적 의미의 인종주의 소멸은 동종 내 인종주의의 소멸로 이어져야 비로소 완전한 인종주의의 철폐가 아닌가 합니다. 쿠바 사람들의 얼굴들에서 나는 조심스레 상상해봅니다. 그 환하고 따뜻하게 웃는 표정들의 기원을 말입니다. 열대기후 탓의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인종차별의 철폐라는 사회체제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요.

  /고길섶

덧붙이는 말

고길섶의 쿠바이야기는 부안21과 동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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