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법이 만든 ‘악몽’

이랜드 사태, 기간제한 마저 무력화된 비정규법이 원인

'사용사유제한' 빠진 비정규법이 비정규직 보호?

이번 이랜드 그룹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은 이미 예상되었던 싸움이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만든 비정규법의 시행이 그 예고였다.

  작년 11월 말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법은 이미 악몽을 예고하고 있었다./참세상 자료사진

비정규법이 ‘법안’일 당시부터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 학계, 시민사회 세력들은 ‘사용사유제한’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자가 사용할 때 불가피하게 일시적이고 단기적인 일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사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비정규법은 기간제한만 둔 채 국회를 통과했다. 결국 모든 영역과 모든 업무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지난 13일 노동부와 한국노총, 경총이 함께 ‘비정규직 보호법의 안착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 발표 당시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사용사유제한을 도입하면 더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사회적으로 수용 불가능 한, 합리적 주장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정부의 입장은 이상수 노동부 장관도 “계산원 업무는 필수적인 것인데 외주화하는 것은 너무하다”라고 말한 뉴코아, 홈에버의 계산원 노동자들의 외주화와 대량해고로 돌아온 것이다. 뉴코아의 경우 외주화로 35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되었으며, 이로 인해 정규직도 전환배치 되는 등 고용불안에 휩싸이게 되었다. 사용사유를 제한하지 않은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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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한도 무력화, 차별시정은 직무급제로 회피

또한 기간제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는 비정규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비정규직 노동자가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라며 이를 근거로 비정규법이 비정규직 ‘보호’법이라 선전했다.

그러나 결과는 2년이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 2년이 되기 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단해고로 돌아왔다. 홈에버의 경우 21개월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했으며, 2년 이상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사측은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회피하기 위해 ‘직무급제’를 들고 나왔다. 홈에버는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 천 여 명 중 521명을 ‘정규직화’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는 정규직화가 아니었다. 직무급제에 응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동안 일 해온 기간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재채용의 방식을 채택해 팀장과 점장의 추천을 받지 못하면 직무급으로 전환은 불가능했다. 또한 별도의 임금체계를 갖는 또 하나의 ‘직군’일 뿐이었다.

이는 금융권을 시작으로 공공부문으로 퍼지고 있는 ‘분리직군’의 한 형태이다. 이는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 단체들이 비정규법의 차별시정 조항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널리 알리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경총은 “2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에 대해 아무런 규정이 없다”라고 말하며 직군분리를 홍보했다. 얼마 전 발간된 ‘경총 임금연구 여름호’에서는 ‘직무급체계의 설계와 운영’이라는 글을 통해 직무급 설계와 운영 방법에 대한 글을 싣기도 했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분리직군에 대해 “문제는 정규직으로 하면서도 일정한 업무 형태를 직업으로 묶어서 거기에 속한 사람들은 임금을 덜 준다든지 하는 경우”라며 “이렇게 해서라도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은 그나마 용인될 수 있다고 보며 ‘약간의 변칙수단’을 쓰는 것은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수영 경총 회장, 이상수 노동부 장관,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왼쪽부터)이 합의문을 읽고 있다. [출처: 노동부]

결국 스스로 ‘약간의 변칙수단’이라고 인정했듯이 홈에버에서 진행되고 있는 직무급제는 ‘변칙’이다. 사용자가 반칙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사용자의 반칙 때문에 홈에버에서, 뉴코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일자리를 빼앗겼다.

그러나 직무급제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지난 13일, 노동부와 경총, 한국노총이 발표한 ‘비정규직 보호법의 안착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에서는 “노사정은 공동의 노력과 부담을 통해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상호 노력하며, 직무에 걸맞는 임금체계 개선 등에 적극 협력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노사정이 합의했다는 합의문에서도 직무급제를 용인하고 오히려 확산시킬 것을 ‘합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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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법인데 시행되는 날 비정규직 해고?”

이런 문제점 때문에 비정규법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여론이 높다.

민교협, 교수노조, 비정규직교수노조, 학술단체협의회는 오늘, 공동 기자회견에서 “진정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면 어떻게 그것이 시행되는 바로 그날, 이랜드 그룹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일터에서 쫓겨 났겠는가”라며 “우리는 비정규직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양산만 하는 비정규직 보호법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주장이 옳다고 본다”라고 지적하고,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때 그 사유를 제한해야 하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등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동일한 시간동안 동일한 일을 하고도 차별을 받는 것은 부당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