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싸움이기에 아직은 멈출 수 없습니다"

[인터뷰] 이매순 광주시청비정규직분회 조합원

지난 4일, 광주시로부터 집단해고를 당한지 200일째 거리에서 원직복직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광주시청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을 찾았다. 이 날, 하얀 소복을 입은 해고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철폐, 원직복직 쟁취’를 기원하며 108배를 광주시 서구 화정동 염주체육관 앞에서 진행했다. 당초 4일부터 3일동안 성화봉송로를 따라 7보1배를 한다는 계획이었으나, 광주시로부터 비서실장을 팀장으로 하고 경제통상국장, 자치행정국장, 여성복지국장 등 국장급을 팀원으로 하는 태스크 포스(TF)팀을 구성했다는 사실을 확인함에 따라 7보1배 대신 108배로 갑작스레 계획이 변경된 것이다.

  10월 3일 오전 9시, 공공서비스노조 광주전남지부 광주시청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광주시 서구 화정동 염주체육관 앞에서 '비정규직 철폐, 원직복직 쟁취'를 기원하며 108배를 진행했다.

108배를 마친 조합원들을 따라 광주시 신안동에 있는 노동조합 사무실로 이동, 200일이 넘게 싸움을 하고 있는 그/녀들의 삶과 투쟁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먼저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광주시청에서 일을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이매순 조합원

저는 공공서비스노조 광주전남지부 시청비정규직 분회 조합원 이매순입니다. 3월 8일에 집단해고 된 후 지금은 해고된지 200여일이 넘었습니다. 시청에서 청소미화업무를 하기 전에는 전업주부였습니다. 월급을 받고 일을 해본 직장은 시청에서 일한 것이 처음입니다.

따져보면 첫 직장에, 첫 노동조합에, 처음으로 집단해고를 당해본 거죠.

시청청사에서 일한 것이 첫 직장이라고 하셨는데, 시청에서는 주로 어떤 일들을 하셨습니까?

시청 청사에서는 주로 청소미화, 위생을 담당했습니다. 청사에 각 부서가 2004년 3월 말까지 이전을 완료했는데 그 이전부터 고용되어서 청사의 막바지 환경미화, 청소를 했습니다.

그 때 출근시간은 7시로 정해졌지만 퇴근 시간은 고무줄이었던 시절입니다. 8시에도 퇴근을 했다가, 밤 11시에 퇴근도 하고 그랬어요. 평균잡아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임금은 하루 8시간만 쳐줬구요.

사실 그 때는 하루에 8시간 일을 해야 하는 것도 몰랐습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나서야 알았죠.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8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은 이전완료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이것저것을 모르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또 노동조합을 해서 좋았던 것과 나빴던 것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세요.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노동조합에 가입하기 전)에는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월급이 많고 적음은 둘째 치고, 일이 힘들어서 8시간만 일을 해줄 것을 시청 청소담당 실무자에게 건의를 했었습니다. 당연히 우리의 요구는 받아드려지지 않았죠. 불만은 있었지만 누구하나 선뜻 나설 수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한번은 담당공무원과 용역회사 직원이 부당한 것을 지시했는데, 이를 거부하고 바른 말을 했던 동료가 시청에서 쫓겨나간 일도 있었습니다. 담당공무원들과 관리자에게의 눈 밖에 나면 작업장 배치와 지시를 내리지 않고 온종일 탈의실(지하실)에 앉자 있어야 했어요. 참다못해 그 동료는 자진해서 일을 그만 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말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또 당시에는 시청 회계과와 총무과 공무원들이 직접 작업지시를 했었는데, 저한테 시키는 대로 안한다고 “집에 가서 애기나 봐라!, 너희 집에 공무원이 한 사람이라도 있냐?, 쓸데도 없는 아줌마들 데려다 놓고...” 등 막말들을 서슴없이 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자연스레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을 했던 것 같아요.

노동조합을 생기고 나서는 상황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퇴근시간이 8시간으로 맞춰지고 우리 조합원들에게 했던 비인격적인 대우도 줄어들었죠. 또 회사에서는 최저임금법에 맞게 임금을 지급했습니다.

돌아보면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인간답게 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아니라고 당당하게 일하게 된 것... 그게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나이 어린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저 아들 같고 딸 같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민주노총 조합원들, 투쟁하는 장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다 동지라고 부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제가 무척 젊어진 것 같아요. 저한테는 대학생 동지들도 있답니다.(웃음)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 후회해 본적은 없습니다.

  광주시청 비정규직 해고자들은 지난 8월말부터 '원직복직 쟁취를 위한 시민선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기억하기도 싫겠지만, 3월 8일 광주시청 점거농성을 벌이다가 쫓겨났을 때의 심정은 어땠나요?

당시에는 제대로 말도 못해보고 쫓겨난 것이 서럽기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되돌아보면 ‘내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권력에 아부하는 언론을 보면서 말이죠. 정말 권력 앞에 개인의 힘은 물거품 같은 것이었습니다. 언론의 보도 행태가 너무 서원했습니다. 그 추웠던 3월 8일, 우리들이 힘없이 시청에서 쫓겨나도 언론 들은 그저 진실을 왜곡한 채 시청의 입장만을 되풀이 했었습니다. 시민의 눈과 입을 대신해야할 언론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없는 것과 매한가지였습니다.

쫓겨난 억울함보다 그런 것들이 더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그 때 세상과 이 사회에 대해서 많이 알았던 것 같아요. ‘광주시에서 박광태 시장은 뭡니까! 대통령 아니 왕입니다!’

공공서비스노조 시청비정규직 조합원들은 해고된 이후, 그 힘든 원직복직 투쟁 속에서도 다른 투쟁 사업장을 방문하고 연대하며 지지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이렇게 힘든 가운데 다른 투쟁사업장을 연대하고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각종 연대 투쟁을 진행하면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통해서 바라본 이 사회의 모습은 어떠했는지요?

돌아보면 참 많은 투쟁사업장을 찾아갔고 연대했던 것 같습니다. 순천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의 투쟁, GS칼텍스 해고자들의 투쟁, 인화학교 대책위, 우리와 비슷한 청주대 청소여성노동자들의 투쟁 등 참 많이 돌아다닌 것 같아요.(웃음)

사실 해고되기 전에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연대 투쟁하러 가자고 하면 싫었어요.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막상 내가 해고를 당해보니 연대가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우리는 법도 모르고, 자본가들처럼 돈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있는 것은 몸 뚱아리밖에 없어요. 힘도 없고요. 노동자들의 연대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알았죠. 그래서 투쟁하는 지금, 우리는 더욱더 열심히 연대하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매번 우리를 연대하러 오는 민주노총 조합원 동지들에게 늘 하는 말이지만, 원직복직 돼서도 우리를 불러만 주면 우리는 꼭 연대하러 달려갈 것입니다!

  3월 8일 광주시청에서 쫓겨난 후 현재까지 아침 출근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10월 1일 아침 출근선전전을 광주시 서구 운천저수지 사거리에서 진행하고 있다.

비정규법이 시행되면서, 이랜드 사건이 터졌잖아요. 전에는 우리만 힘든지 알았는데 이랜드-뉴코아의 젊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서 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좀 많이 살아 자식들이 다 커서 딸린 식구들이 적어요. 그런데 이랜드-뉴코아의 젊은 노동자들은 한 가정의 가장이고, 엄마고, 아내고 며느리... 1인 3,4인의 역할을 해야 하면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그것을 보면 우리들은 행복한 투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몸도 힘든데 (가족의)모든 것이 걸려 있어서...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의 미래인 것 같아서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면서 제가 든 생각은 이래요. 이 사회의 자본가들이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간다고 생각합니다. 절반은 바라지도 않지만, 자본가들이 80~90%의 몫을 가져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못살겠다고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노동자도 자본가가 없으면 살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본가도 노동자가 없으면 살수 없어요. 자본가들이 내줄 것은 내주고, 들어줄 것은 들어줘야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데모하는 노동자들이 자기 뱃속 채우려고 한다고 하지만 문제의 발단은 자본가들의 과도한 제 욕심 채우기에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해요.

광주시에는 투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오히려 노동조합과 조합원을 상대로 고소고발, 접근금지 가처분신청 등을 하면서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양에 탈을 쓴 늑대입니다.’ 협상하자고 하면서 뒤에서는 수없이 고소고발을 하고 있습니다. 시청 출입에 대한 접근금지 가처분신청으로 인해 조합원의 상당수가 50만원의 벌금이 떨어졌습니다. 한 달에 70만원 받았던 우리들에게 50만원이 말이 됩니까? 없는 사람들한테 50만원씩 받아서 어디다가 쓰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벌금이 무서워서 시청 앞에서 출근선전전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부 조합원들이 법원의 접근금지 가처분으로 인해 시청근처에서의 아침 선전전조차 할 수 없었다. 사진은 9월 12일 연대단위(조선대학생들)와 아침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8월말부터 ‘광주시청 비정규직 원직복직을 위한 1만인 선언운동’을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광주시의 이곳저곳을 다니시면서 시민과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고 하는데요. 반응은 어떤가요?

우리들은 매일같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는 광주시청 청사 근처에서 출근선전전을 하고 있고, 점심 때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광주시의 거점지역을 찾아가서 선언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또 매주 목요일에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인화학교 대책위와 함께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어요. 일주일이 짧습니다.

선언운동을 하면서 광주시민과 노동자들을 만날 때 반응은 따뜻합니다. 힘내서 꼭 시청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힘이 납니다.

그런데 가끔씩 서운할 때도 있습니다. 한번은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에 가서 선언서명을 받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나가는 조합원들이 ‘왜, 소복을 입고 우리 회사에서 저러고 있나?’ 하면서 듣기 거북한 말을 했습니다. 이해는 되지만 왠지 그렇게 툭, 뱉는 한마디에 상처가 되더라구요. 다른 곳에서 듣는 싫은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우리와 처지가 같고 한배를 타고 있다는 민주노총 조합원에게서 나온 말이어서 더욱 크게 들렸나 봅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일부입니다. 우리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고 함께 투쟁하고 있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더 많이 있답니다.

투쟁이 장기화 되면서 참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은 없는지요? 그리고 힘들어하는 다른 조합원들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생계유지 문제가 힘들긴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많은 조합원들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이 가장 걱정입니다. 투쟁이 길고 지치다보니 짜증도 많이 내고, 조합원들끼리 사소한 것 갖고 다투고 틀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서로들 표현하는 법이 서툴러서 그런 것 같습니다. 더욱더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 앉아는 법을 배워야겠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는 함께 해고되고, 함께 지금껏 투쟁했던 조합원들이 하나둘 떠나갈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문제로 시작했다가 풀리지 않고 떠날 때, 거짓말 안하고 가슴이 쓰리고 아프고,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그 때가 가장 힘들었죠. 24명으로 시작했는데, 6명의 동지들이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오히려 이런 힘든 과정에서도 조합원들을 지지하고 지원하고 있는 조합원의 가족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데모하러 다닌다면서 다들 가족들을 못 챙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1박 2일로 투쟁하고 돌아오는 이 늙은 엄마들을 이해해주는 가족들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는 해고 이후 투쟁하면서 온 가족이 모여서 한 끼 식사하는 것이 어렵거든요.(웃음)

  광주시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이제 해고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원직복직을 바라며 시민들이 다음의 아고라에서 시민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래도 조합원들을 보면 힘이 넘치시는 것 같은데, 그 힘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처음에 해고될 때는 나 하나의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싸움을 했습니다. 그런데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계속해서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면서 우리들의 할 일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단지 광주시청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의 아들, 딸들의 미래요. 후배들의 현실임을 알았죠. 자식들을 대학까지 그 많은 돈을 쏟아 가르쳐 놔도 1년, 2년 계약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이겨서 복직한다면 그들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의 물꼬를 광주시청과 같은 공공기관에서부터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때문에 어려운 조건에서도 계속해서 투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지막으로 광주시청이나, 광주시장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나요?

광주시장이나 시청에서 우리이야기를 들어줄 때가 두 번 있어요. 광주시장이 비리혐의로 구속되어서 재판을 받고 있을 때, 탄원서를 써줄 것을 부탁하며 찾아왔었죠. 그리고 광주시장 선거를 나서면서 한 표를 부탁한다고 찾아왔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3월 8일 쫓겨날 때, 우리가 그토록 이야기하고 싶었던 시장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남들이 하지 않는 더러운 일을 한다고 우리를 하찮게 생각해서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어요. 그렇게 서럽지만은 않았을거고 지금까지 투쟁도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광주시청에서 함께 일하고 광주에서 살지만 박광태 시장이 챙기는 직원도 아니었고, 박광태 시장이 주인으로 모신다는 광주시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있으면서도 없는 그림자, 서러운 맨 밑바닥의 비정규직이었습니다.

박광태 시장님! 원직복직 다 떠나서 제발 작은 소리도 귀담아 듣는 시장이 되어주세요! 그러면 당신은 역사에 길이 빛나는 시장으로 칭송받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구요!!

광주시청비정규직 문제 이번 달까지 해결책 마련

시청 비정규직 조합원과의 인터뷰를 마친 다음 날인 10월 5일, 광주시와 민주노총광주본부와 광주 시청비정규직 문제와 지역의 제반문제와 관한 합의가 있었다.

1. 광주지역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사항
① 광주시청 청소용역 해직자 문제
② 광주지역 비정규직 문제해결

2. 한미FTA 손배소 관련 고소고발에 관한 사항

3. 민주노총 광주본부 사무실 명도소송에 관한 사항

4. 노동복지회관 건립에 관한 사항

5. 인화학교 정상화에 관한 사항

민주노총광주본부는 위 현안들의 해결방안 마련을 위해 10월말까지 광주시와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으며, 협상시한인 10월말까지 계획된 투쟁일정을 잠정 유보하기로 했다. 더불어 만일 광주시가 10월말까지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지 못한다면 이후 강력하게 투쟁할 것임을 밝혔다.
이번 기회를 통해 광주시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108배 염원’이 뜻대로 이루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