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이 넘어 정년이 다 되었지만 그녀는 장애인들을 만나고 그네들을 안전하게 택시에 실어 원하는 목적지 까지 데려다주는 ‘장애인콜택시 운전사’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녀는 운전‘봉사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운전 ‘노동자’ 권경숙 씨이다. 그녀는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 권경숙 장애인콜택시지회 조합원 |
그녀는 2004년 9월 1일부터 장애인콜택시 운전을 시작해 2007년 12월 28일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사실 그녀는 2007년 9월 4일 “키 놓고 나가라”는 관리자의 말로 이미 해고를 경험했다. 이유는 15분을 지각했다는 이유다. 지노위의 부당해고 판결 이후 2007년 12월 28일, 복직 되었으니 출근하라는 관리자에 말에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나갔지만 그 날 그녀는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계약해지 되었다.
우수 운전원 표장, 무사고운전 영년 표창장. 그는 이 표창장을 볼 때 마다 마음이 뿌듯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일한 대가였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계약해지 통보였다. 그는 서울시 장애인콜택시 탄생과 함께 운전‘봉사원’으로 일해 온 운전‘노동자’ 오만택 씨다.
그도 두 번째 받은 계약해지 통보였다. 계약해지 이유는 “운전 직종 어디서도 해고사유가 되지 않는” 속도위반 1회와 “몸이 아파 어쩔 수 없이 차를 차고지에 입고시키지 못한 것”, “손님이 없어 차를 끌고 이리저리 다닐 수밖에 없었는데” 차량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것과 휴게시간을 이용했지만 근무시간 내 조합 활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지노위의 판결에 권경숙 씨와 출근했지만 그도 같은 날 계약해지 되었다.
이들과 함께 계약해지 된 동료들은 5명이나 된다. 모두 공공노조 장애인콜택시지회 조합원들이었다.
▲ 오만택 장애인콜택시지회 조합원 |
“2007년 9월에 지각을 두 번 했어요. 근데 한 번만 경고를 주더라구요. 9월 4일 지각한 날, 갑자기 관리자가 키를 놓고나가라고 하더라구요. 지각 때문에 자른다면 안 잘릴 사람 없다고 하니까. 이사장님 직인이 찍힌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사장님 좀 만나야 겠다고 뛰어 올라갔죠. 이사장님은 안계시더라구요. 너무 억울해서 지방노동위원회에 판정을 요구했어요. 결국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구요. 이제 복직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빨리 연락이 오더라구요. 그 날이 작년 12월 28일이었어요. 그래서 도시락 싸가지고 갔죠. 근데 출근해서 차 키를 달라고 하니까. 차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내민 것이 12월 31일부로 계약만료가 됐으니 계약해지라는 통지서였어요” 권경숙 씨의 말이다.
“31일까지는 3일이라도 시간이 있으니 일 할 수 있도록 차 키를 달라고 했더니 차가 없다는 거예요. 애들 데리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는 거냐 했더니 두 말 할 여지도 없다고 하더라구요. 너희들 법 좋아하지 않냐. 계약해지 하려면 최소 한 달 전에 통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하면서 통지서 보내라고 하니까 집으로 통지서가 왔더라구요. 앞장에는 12월 28일부로 복직한다는 것이 써 있었고, 뒷장에는 12월 31일부로 계약해지 한다고 써있었어요. 저는 재계약 심사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이미 11월에 계약심사를 마친 상태였거든요. 근데 갑자기 12월에 복직자들을 대상으로 다시 심사를 해서 계약해지를 결정했더라구요.별 다른 이유가 없으니까 계약기간 만료라는 이유를 만들려고 복직도 1월에 안하고 12월 말에 시킨 거더라구요” 오만택 씨의 말이다.
“하루라도 더 일하고 싶었다”
그들의 말에는 억울함이 묻어 있었다. 그들은 하루라도 더 일하고 싶었다. 설사 계약만료 시점이 3일 밖에 안 남았더라도, 그 기간이라도 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설공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수 운전자 표창장도, 무사고 운전했다고 받은 표창장도 그저 한 장의 종이일 뿐이었다.
그들은 “내가 해고되더라도 내 뒤에 일할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 오만택 조합원이 서울시설공단으로부터 받은 표창장 |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공단 측에서는 확인서를 쓰라고 했어요. 그래서 썼죠. 근데 그게 다 모여서 계약해지의 이유가 되더라구요. 속도위반 1번 한 거 공단에서 벌금 내줬으면 말을 안 해요. 그것도 다 내가 냈어요. 확인서 써준 거 가지고 이렇게 발목을 잡으면 어떡하냐고 따지니까 어떤 사람은 미안하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얼른 차 놓고 가라고 하더라구요. 사람과 사람이 일하는 거잖아요. 수료증도 받고, 우수 운전자로 표창 받으면 뭐해요. 확인서도, 가산점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오만택 씨의 말이다.
“정년이 얼마 안 남았어요. 그래서 뭐 그냥 그만 둘 수도 있지만, 이렇게 부당한 일 말 안하고 가면 젊은 사람들이 와도 이런 대우 받을 거잖아요. 그래서 같이 얘기하고 싶고 널리 널리 알리고 싶어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함께 했어요” 권경숙 씨의 말이다.
“장애인을 위해, 사회에 공헌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했는데...”
이사장을 만나러 이사장실에 찾아간 14일, 그들에게 돌아온 것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불법행위”라는 딱지였다. 노조 측은 이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공문을 수차례 보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답변 한 번 듣지 못했다.
노조는 같은 날 연 기자회견에서 기자회견문을 통해 “95만 원의 운행보조금으로 유류비는 물론이고 크고 작은 차량관리까지 직접 해야 하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도 장애인을 위해, 사회에 공헌하는 일을 맡고 있다는 자부심만으로 일 해왔다”라며 “그러나 동료운전자가 산재를 당해도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노조를 설립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을 통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해고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다”라며 “우리는 공단에 15분 지각 등이 얼마나 특별한 사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하고, “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까지 무시하면서 오로지 계약해지만을 고수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투쟁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며 “850만 비정규직과 우리의 아들, 딸들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결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