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3주 그리고 2일...

[김인아의 당장멈춰] 폭력과 상처투성이의 임신과 낙태

(스포일러 경고: 영화를 보실 분들은 나중에 읽어주세요. )

4개월, 3주 그리고 2일.

의미심장한 제목이다. 4개월 3주가 하나로 묶이면서 어떤 기간을 인지하게 하고 그 이후에 붙은 2일이 의미의 깊이를 더하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영화가 루마니아 차우세스쿠 정권시절, 낙태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던 198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과 루마니아를 영화의 신대륙으로 떠오르게 한 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본 것은 다행이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영화를 봤다면 그 고통이 더 컸을 터.

[출처: http://www.4months3weeksand2days.com/blog/]

영화는 ‘고마워’라고 한 마디를 하는 여학생 가비타와 그 말을 조용히 듣는 또 한명의 여학생, 오틸리아를 비추면서 시작한다. 오틸리아는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잰 걸음으로 1987년의 루마니아 거리를 돌아다닌다. 무슨 급한 사정이 있는지 남자친구를 만나서 돈도 빌리고, 초대 받은 가족 모임에 못 갈 지도 모르겠다는 말도 전하고, 호텔방을 예약하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동분서주한다. 방에 남아 있던 가비타는 여행을 가는 사람처럼 트렁크에 짐을 싸고 월요일에 있을 시험 준비를 위해 노트를 가지고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다.

‘고마워’라고 이야기한 그 순간이 낙태를 둘러싸고 두 여성간의 연대가 형성되는 시점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은 영화가 시작하고도 한참이나 지난 후, 불법 낙태 시술자가 ‘이전에도 해 본적이 있냐?’고 묻는 순간이다. 영화는 이렇게 의문을 해결하고 그 의문을 불안으로 바꿔가며 긴장감을 높인다. 불법 낙태시술자인 남성은 두려움에 떠는 여성에게 친절한 설명을 하기는커녕, 낙태 시술비를 이유로 두 여성의 몸을 차례로 탐하고 척 보기에도 비위생적이고 위험해 보이는 낙태 기구와 시약을 가비타의 몸에 삽입한다.

가비타가 혼자 있는 게 걱정되기도 하고 기분도 더러웠지만 남자친구와의 선약을 지키기 위해 가족 모임에 간 오틸리아에게 남자친구는 꽃도 사오지 않았다며 화를 먼저 낸다. 불안한 오틸리아를 사이에 두고 의사여서 어느 정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친지들은 오틸리아 부모님의 학력을 묻고, 담배를 권했다가 피우려고 하자 예의가 없다고 욕이나 해댄다. 남자친구는 ‘임신하면 어떡하냐’라는 오틸리아의 질문에 결혼을 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안일한 대답을 하고 오틸리아는 ‘나는 평생을 복잡한 감자요리나 하면서 살고 싶진 않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돌아와 가비타의 유산된 아이를 건물 옥상에 갔다 버리고 다시 두 여인은 배고픔을 느끼며 호텔 식당에 마주 앉는다. 하지만 그들의 식탁으로 전해진 것은 결혼식 피로연을 하고 남은 음식들이었다. 온갖 동물의 내장으로 요리된 음식을 바라보며 그녀들은 다시는 이것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한다. 그녀들에게 있어서 어쩌면 평생 가장 끔찍한 날로 기억될 그 날은 그렇게 끝난다.

이렇게 자세하게 줄거리를 언급하는 것은 이 줄거리 각각이 관객에게 특히, 여성에게 큰 고통과 불편함, 그리고 공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오틸리아가 강간을 당하면서까지 가비타를 돕는 이유는 그저 자기도 나중에 어찌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자친구가 도와줄지는 불확실하지만 ‘확실히’ 가비타는 도와줄 것이기 때문이다. 가비타보다 현실적이고 똑 부러지는 오틸리아가 본인도 어찌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비단 피임약이 암시장에서만 거래되는 루마니아의 현실 때문만이 아니다. 오틸리아가 위험하다고 해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기어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야 마는 남자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출처: http://www.4months3weeksand2days.com/blog/]

낙태가 불법인 나라여서 그녀들의 고통의 여정이 더 어렵고 험난했겠지만, 임신과 낙태를 둘러싸고 여성들이 겪는 고통은 비슷하다. 작년 국회에 제출한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2006년 15~44세의 임신한 기혼여성 중 특히 임신부의 19.2%가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낙태를 한 여성들의 56.5%는 피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을 했다. 임신중절의 이유가 현재의 모자보건법상 합법적이었던 경우는 15%에 그쳤으며 나머지 85%는 자녀를 원하지 않거나, 자녀 터울 조절, 경제적 곤란 등의 사유로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기혼자를 대상으로 한 자료라서 한계는 있지만 이는 피임이란 것이 여전히 불확실한 도구임을 보여주기도 하는 한편, 기혼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5중 1명은 낙태라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낙태는 비단 여성의 몸에 위해를 가할 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커다란 상흔을 남긴다. 가비타가 받은 불법 낙태 시술처럼 4개월이 넘은 아이를 유산시키는 것은 자궁이 정상적으로 수축하지 않아 과다 출혈로 사망하거나 그 과정에서 감염이 돼서 패혈증으로 사망하거나 그런 시술이 자궁을 심하게 손상시켜 영구 불임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방법이다. 오틸리아가 남자친구의 집에서 불안에 떨면서 가족들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 남자친구와 실랑이를 하는 동안 나는 너무나도 불안했다. 오틸리아가 돌아갔는데 가비타가 죽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병원에서 제대로 낙태를 하더라도 그 위험은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러한 육체적 고통은 정신적 고통과의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여성을 괴롭힌다.

작년 이명박의 "근본적으로 낙태를 반대하지만 아이가 불구로 태어난다든지 하는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는 발언이 문제가 됐을 때, 나는 그의 장애인에 대한 관점도 심각하다고 생각했지만 낙태에 대한 과정에 절대 공감 못 할, 또는 공감하려고 애도 쓰지 않을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대통령 후보라는 자가 낙태가 여성의 몸과 마음에 얼마나 위험하고 큰 고통인지 전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마 한국의 대부분의 남성들이 이런 경우 오틸리아의 남자친구나 이명박과 비슷하지 않을까? 자신의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결혼이라는 일방적 방식으로 책임을 진다고 하거나 회피를 하는 방식 말이다.

나는 남성들이 여성의 낙태의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절대’ 남성의 몸에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 때문이다. 가비타의 이야기처럼 결국 책임(?)은 여성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이 그 고통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순간, 그리고 오틸리아의 남자친구와 같이 어설프게 결혼으로 책임을 지겠다며 여성의 의견에 반하는 섹스를 하는 순간 그것은 낙태라는 상황 자체보다 더 고통과 커다란 상처로 여성에게 돌아올 수 있다. 그나마 괜찮은 남성이라면 본인이 절대 공감하지도 믿음을 주지도 못할 것이라는 한계를 곱씹고 과정을 공감하고 어떻게든 도움이 되기 위해 여성의 의지를 살피고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임신을 이유로 여성의 삶이 무엇으로 부터든 억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하는 것은 그 어마어마한 후폭풍이다. 가비타가 아이를 가지고 있었던 4개월과 3주, 그리고 유산의 과정을 포함한 2일간의 관계의 단절과 고통과 괴로움은 40년 3달 2주 이상의 상처와 고통으로 남는다. 2일간을 함께 한 오틸리아 역시 그 이상의 괴로움을 피부 곳곳에서 기억하고 느낄 것이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안전한 섹스를 하는 것, 여성의 의사를 절대적으로 존중한 관계를 갖는 것, 그런 일이 생길 경우 도망가고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위해 노력하고 그 자리를 지키려고 애쓰는 것. 이것이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이라는 폭력적인 임신과 낙태의 경험을 안 할 수 있게 만들고 그 파도의 높이를 최소화 할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다.
덧붙이는 말

김인아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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