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발표된 쇠고기 추가협의 결과는 한국의 검역주권을 보장한다는 양국 공동성명을 외교 문서(letter)로 확인하는 데 그쳤다. 협정문은 바뀌지 않아 즉각 수입중단 조처에 대한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는 데다 광우병 위험이 높은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과 동물성 사료금지 조처에 대한 대책이 없어 논란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광우병대책회의는 이날 전면 재협상을 주장하며 오는 22일과 24일 대규모 촛불문화제를 열겠다고 선포했다.
광우병위험물질(SRM) 미국과 동등 기준 적용키로..'30개월령 이상' 언급 없어
한미 양국은 쇠고기 추가협의를 통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GATT 20조와 WTO SPS 협정에 따라 건강 및 안전상의 위험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할 권리를 인정하는 선에서 한국의 검역주권을 보장하기로 했다. 양국은 또 미국이 수출용 쇠고기에 대해 내수용과 동일한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 규정을 적용하기로 합의, 척추의 횡돌기·측돌기, 천추 정중천공능선(소 엉덩이 부분 등뼈의 일부) 등이 수입 금지 SRM에 새로 추가됐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이같은 내용의 "서한 교환 형태로 쇠고기 협상에 대한 보완 조치를 취했다"고 20일 밝혔다. 양국은 서한에서 미국이 SRM 규정을 위반할 경우 한국 검역당국이 협정문 23조(해당물량 반송 및 검사비율 증대)와 24조(2회 위반 시 검역 중단)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할 권리가 있음을 재확인했다.
당초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한국이 즉각 수입 중단조치를 할 수 있도록 추가협의를 통해 명확히 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날 드러난 협의 결과는 기존 수입위생조건 합의 내용을 재확인하는 데 불과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미국의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를 하향 조정할 경우에만 수입을 중단'토록 한 협정문 5조는 그대로 유지됐다. 문제가 된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 허용이나 동물성 사료금지 조치에 대해서도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
김종훈 본부장은 "진전된 내용이 없지 않냐"는 기자들의 질의가 빗발치자 "양국이 합의한 사안은 합의 그대로 신뢰를 바탕으로 지켜져야 한다"며 '재협상 불가' 원칙을 천명했다.
협의 서한이 고시에 명문화될 수 없어 구속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는 "저는 명문화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서한은 양국 장관급 인사가 서명한 상당한 효력이 있는 문서이며, 서한 내용을 농림부 고시에 반영할 방법에 대해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GATT 20조를 원용하려면 미국의 광우병 발생에 따른 우리 국민의 건강 위협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지적에 "입증 책임이 우리에게 있고 상대국과의 견해가 다를 수 있다. 협의를 통해 해결되지 않는다면 분쟁을 할 수도 있다"고 말해, 광우병 위험이 미국과의 무역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야권과 시민사회단체 일제히 비판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이날 정부의 추가협의 발표에 대해 "검역주권 회복도 안전성 담보도 불가능하다"고 비판하며 "재협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촛불문화제를 이어가고 오는 22일과 24일에는 대규모 촛불문화제를 열 것"이라고 경고했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협정문 5조는 그대로 둔 채 GATT 20조, WTO SPS 협정이라는 애매모호한 근거로 검역주권을 회복했다고 볼 수 없다"며 "광우병 위험이 높은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선진회수육(AMR), 곱창, 혀 수입 문제가 시정되지 않으면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정부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야당들도 일제히 정부를 비난했다. 차영 통합민주당 대변인은 "한 마디로 실망스럽다. 국민적 우려를 전혀 불식시키지 못한 면피용 조치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이어 "여론무마용 미봉책은 국민들의 더 큰 분노를 초래할 것이며 전면적인 재협상이 아닌 어떤 결과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정부 발표는 검역주권을 실질적으로 회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통상마찰 등 더 많은 문제점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하며 "미국 광우병 발생으로 우리 국민의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해 GATT 20조는 전혀 검역주권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17대 의원과 18대 당선자 전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별도문서로 미국과 약속했다고 하지만 서한교환을 통한 보완조치는 신사협정에 불과한 것으로 국제법적 구속력도 없다"면서 "기만적인 추가협의로 국민을 속이려는 정부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재협상 관철을 위한 장외투쟁을 선포했다.
이지안 진보신당 부대변인도 "정부 추가협의 발표로 '국면전환-여론무마용 시간벌기쇼'라는 사실만 재확인하게 됐다"며 "장관고시 연기나 추가협의 등은 모두 한미FTA 비준을 위한 예고된 수순밟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