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대책회의는 ‘임금삭감 대타협’으로

전경련 회장 시작부터 '임금 삭감' 거론

정부와 노사정위원회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가 당초 취지대로 사회적 대타협을 만들기 보단 시작부터 '임금삭감 대타협'으로 결론날 가능성이 커졌다.

3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비상대책회의)가 발족했지만 애초 제안대로 고용문제나 사회안전망 논의보다는 임금 삭감문제가 최대 현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민주노총이 불참 의사를 밝혀 실제 파급 효과도 미지수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

비상대책회의를 공동으로 제안한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정부가 경제위기 대책을 발표하지만, 취약계층은 더욱 늘어나고 있어 노동단체도 국민에 가까이 다가갈 시기”라며 “일자리 나누기로 고용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면 열린 마음으로 대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비상대책회의를 통해 경제위기 극복의 실마리를 마련하고 위기극복 과정에서 취약계층에 대한 논의를 해 나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장 위원장은 마음을 열었지만 사용자 단체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논란은 비상대책회의 의장으로 이세중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선출하고서 발족 선언문을 검토하면서부터 불거졌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일자리라는 것이 회사가 있고, 경제가 살아있고, 일자리가 따른다는 원칙을 생각한다면 자연적으로 임금 삭감을 고려 안 할 수가 없다. (선언문에) '임금 삭감'이 따르는 것이 분명히 있어야”라고 말해 임금 삭감에 방점을 찍은 경제계의 참석 의도를 드러냈다.

이세중 의장은 “노사가 고통분담을 통해 위기를 분담하자는 모임의 취지를 본다면 구체적인 합의문 채택 과정에서 조석래 회장님의 의견이 다소나마 어떤 형태로든 담길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고 밝혔다. 선언문에서는 임금 삭감이라는 용어를 안 써도 합의문을 만드는 논의에는 '임금 삭감'이 주요 대목으로 등장할 것임을 시사했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조 회장의 의견을 듣고 “생산직은 잔업을 안하면 30-50%의 임금이 줄어든다”고 전제하고 “우리가 여기서 얘기 할 수 있는 부분은 고용부분에서 어떻게 일자리를 나눌지를 포괄적으로 논의해서 실업대란에서 다함께 빠져 나오자는 것”이라고 대책회의 취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장 위원장은 “임금 삭감은 사회지도층이 먼저 모범을 보여주셔야 설득력이 있으며 그런 부분은 앞으로 실무회의 차원에서 진지하게 논의하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임금 삭감 문제가 실무 논의에서 나올 수밖에 없게 됐다.

김천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장도 “사람을 자르지 않고 월급을 줄여서 세 사람 월급으로 네 사람이 나눠 서로 돕는 기업부터 물건을 사주려고 한다”고 말해 임금삭감을 전제로 한 일자리 나누기에 무게를 뒀다. 발족 첫날 회의부터 일자리 나누기의 전제로 임금삭감이 공공연하게 얘기됐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은 이번 비상대책회의 발족을 놓고 “이런 회의체가 서구나 유럽일반에서 먹혔던 건 자본이 노동자에게 던져줄 물적 토대가 있었기 때문인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노동자의 저임금 따먹기 경쟁을 주로 해오던 터라 타협을 통한 양보의 실효성이 없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고용문제, 청년실업, 비정규 문제가 터져 나오는 속에서 사회적 저항과 불만, 불안을 잠재우는 틀을 모색하는 분위기가 강할 것이며 진정성보다는 다독거리는 역할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 교수는 이어 “한국노총 입장에서는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겠지만 그 기대는 얼마 안 가서 깨질 공산이 크다”고 밝혔다.

  비상대책회의 대표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세중 비상대책회의 의장,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 이영희 노동부 장관,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민주노총 참석하지 않으면 갈등이 생긴다"

이날 비상대책회의 참석자들은 민주노총의 불참에 유감을 표하고 민주노총의 참가를 최대한 독려하자고 입을 모았다. 엄신형 한국기독총연합회 대표회장은 “위기극복이 목적인데 민주노총의 참석을 이뤄내지 못하면 계속 갈등이 생긴다. 민주노총이 참석하면 갈등은 해결될 것”이라고 민주노총 참석을 설득하라고 주문했다. 독자적인 투쟁계획을 내 놓은 민주노총 없이 노사민정이 모여 봐야 갈등조정이나 사회통합에 큰 실효성에 없기 때문이다. 김대모 노사정위 위원장도 “민주노총이 지속적 설득에도 참여결정을 못했지만 참여하도록 적극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이수영 경총회장은 “민주노총이 못 오신 것은 유감이지만 곧 오실 것이라 믿고 싶다”며 민주노총 참가를 아쉬워하면서도 민주노총의 주장에는 선을 그었다. 이수영 회장은 “앞으로 많은 일자리가 없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 고용이나 일자리, 실직 방지 등이 제일 중요하다. 그 외 노동문제나 사회문제가 많지만 이 자리에서는 그런 대화를 피하고 일자리와 고통분담 논의만 축소해서 했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밝혔다.

진영옥 민주노총 직무대행은 이날 오전 11시 기자회견에서 “경제위기만 논의하는 그런 테이블이 아니라 모든 노동 사안에 대해 논의하는 진정성 있는 테이블을 꾸리고 의제제한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재벌들이 갖고 있는 유보금 중 10%만 풀어도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했다. 임금 삭감이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먼저 강조했다. 회의 틀과 의제가 바뀌지 않는 한 민주노총 참가는 불가능하다.

비상대책회의는 3일 발족 선언을 시작으로 4일부터 5차에 걸친 실무위원회에서 각 참여기관의 입장을 조율, 오는 18일에 본회의를 열어 최종 합의문안을 채택하고 23일 오전 10시에 합의문을 발표한다. 20일 동안 예닐곱번의 회의로 나올 합의문이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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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 임금삭감 , 고통분담 , 일자리나누기 , 노사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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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상철

    전경련의 태도로 보았을 때, 민주노총의 불참은 '노사민정 대책회의'의 본질이 '임금삭감'에 촛점이 맞춰져 있는데, 굳이 나가서 들러리 설 필요가 없다는 판단인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