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13일 발의한다고 밝혔다. |
민주노총은 정부 발표가 나자 즉각 성명을 내고 “모든 노동자를 저임금 빈곤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비정규직법 개악 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기간연장은 비정규직을 영원한 비정규직으로 고착시키고 전체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법 제정 당시부터 비정규직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 비정규직법 개정안에서 그동안 사용자가 요구해온 규제 완화를 대폭 수용했다. 기간제노동자와 파견노동자의 사용기간을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늘렸다. 노동계가 가장 반발하는 부분이다. 사용기간을 늘리면 올해 7월 이전에 정규직 전환을 준비하던 기업조차 비정규직으로 그대로 유지할 공산이 크다. 이 외에도 기간제한을 받지 않는 단시간 노동의 범위를 주 15시간에서 20시간 이하로 완화했다. 파견범위 역시 현행 32개 업무에서 시행령을 고쳐 업종에 대한 규제를 더푼다. 그러면서 불법파견업체에 대한 단속 강화라는 원칙적 대책만 내놨다.
기업이 요구해온 규제는 대폭 풀었지만 차별시정이나 정규직 전환을 이끌어내는 유인책은 미미하다. 차별시정과 관련 정부는 차별시정신청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린 것 외에는 별 대책이 없다. 5인에서 300인 미만 기업이 정규직으로 전환 시 사업주 부담 사회보험료의 50%를 2년간 지원하는 게 전부다. 비정규직 고용대책이라고 거창하게 발표했지만 비정규직 사용의 남용을 막는 규제를 푼 것 외에는 노동계가 요구해 왔던 대책들은 대부분 반영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고용대책, 대부분 립서비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이번 대책을 놓고 “기업의 요구대로 비정규직을 더 활용하거나 확대하도록 했지만 고용개선 조치는 미사여구만 담은 주변적 조치만 내놨다”고 설명했다. 김성희 소장은 “정부가 4년으로 사용기간을 연장해 비정규 고용을 위험에 빠트리면서 내놓은 대책들은 전부 립서비스 수준”이라며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나타냈다. 정부가 불법파견업체를 강력히 단속하겠다는 것도 “이미 노동부가 불법파견을 조사한 수 천 건의 자료부터 공개하고 엄하게 다스리면 되는 일”이라고 진정성을 의심했다.
일자리 유지대책으로 내놓은 사회보험료 50% 감면도 “임금의 50%도 아니라 큰 전환요인도 아니고 원래 정규직 전환을 안 하려는 기업에는 효과가 없다”고 설명했다. 김성희 소장은 “이런 조치를 지속하면 비정규직이 처한 문제는 더욱 열악한 상황으로 가게 된다”고 경고했다.
민주노총도 “정규직 전환 중소기업에 대한 사회보험료 감면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비정규직의 고용위기에 진정성이 있다면 정규직화의 길을 막는 기간연장이 먼저가 아니라 세제지원, 직접지원 등 고용안정정책을 먼저 수립하라는 주문이다. 우문숙 민주노총 대변인은 “사용자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기간연장으로 2년 더 계속해서 비정규직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 몇푼의 사회보험료 인센티브로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리가 없다”고 정부대책을 비난했다.
민주노총은 “용역전환과 같은 비정규직 법 악용사례가 나타나는데 원청 사용자성을 비정규법에 명확히 명시해야 하며 법을 악용하는 사용자에 대한 감시감독과 처벌을 강화하고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지원정책을 더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당과 정책연대로 비정규법 개정을 논의해오던 한국노총도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을 강행 추진하는 노동부 장관과 이를 지지하는 정치인은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노총은 “4년으로 기간연장을 할 경우 현재 정규직 전환계획을 갖고 있던 사업주들조차도 그 계획을 포기할 것이며 4년이면 비정규직 채용 및 교육연수 비용의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전환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한국노총은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연장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촉진대책은 아무런 실효를 거둘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고용기간연장은 정규직으로 고용할 인력까지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후 사정을 봐가며 정규직 전환을 저울질하는 식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